특별기고

혁신의 열쇠 - 소재가 미래다

혁신의 열쇠는 우리 사회 및 산업 전반에 걸쳐 다양한 혁신의 키워드와 마인드에 대해 조망하는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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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무더위가 시작되는 6월이 왔습니다.

오늘도 각자 맡은 분야에서 여름보다 뜨거운 열정으로 더 나은 미래 창조에 매진하고 계시는 기술·경영인 여러분께 격려의 말씀을 전합니다.

최근 날씨만큼이나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대한민국의 경제 화두는 ‘성장한계론’입니다.

지금까지 경제성장의 축을 이뤄왔던 완제품 중심의 제조업이 성장한계에 직면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우리나라의 주력산업인 스마트폰은 시장 포화로 성장이 둔화되고 있고, 철강·정유, 자동차·조선해양도 2003년에서 2009년 사이 모두 중국에 시장점유율을 추월 당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이런 성장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을까요? 해답은 소재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불휘 기픈 남간 바라매 아니 뮐쌔, 곶 됴코 여름 하나니”라는 용비어천가의 구절이 있습니다.

뿌리 깊은 나무는 어떠한 환경에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꽃도 아름답게 피고 열매도 탐스럽게 맺습니다.

나무가 한 국가의 경제를 의미한다고 하면 꽃과 열매는 성장이고, 뿌리는 제조업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한국전쟁 이후 급속한 성장을 추구해 온 우리나라는 성장의 근간이 뿌리인 제조업에 있다고 보고 이 부분에 역량을 집중해 왔습니다.

성장의 한계가 올 때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한 해법 또한 제조업을 강화하는 것이었습니다.

때로는 잔뿌리를 쳐내는 선택과 집중을 통해, 때로는 다른 좋은 나무의 뿌리를 접붙이는 외부 수혈을 통해 나무의 성장을 이어 왔습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우리는 정작 성장을 위한 가장 중요한 본질을 놓치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나무가 뿌리를 내릴 수 있는 진정한 기반이자, 성장에 필요한 양분을 공급해 주는 원천인 토양, 즉 소재에 대한 경쟁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못한 것입니다.

배고프지만 않으면 좋겠다던 성장 초기 상황을 감안하면, 개발하는 데 짧아도 10년 이상이 걸리는 소재보다는 값싼 노동력을 활용한 가공산업 위주의 발전을 추구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선택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한 그루의 나무가 자라서 또 다른 나무를 만들고 큰 숲을 이루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넓고 비옥한 토양이 필수적입니다.

지금이라도 우리가 소재사업을 강화하지 않으면 미래의 후손들은 한글사전에서는 더 이상 ‘성장’이라는 단어를 찾을 수 없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나마 2000년대에 들어서 소재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정부 및 산학연 차원에서 부품소재사업을 집중 육성하고 있는 것은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정부는 지난 2001년 전 세계에서 유일한 부품소재특별법을 만들고 지난해까지 14년간 4조 원의 R&D 비용을 이 분야에 투입해 왔습니다.

이런 노력을 바탕으로 2014년 우리 소재부품사업은 무역흑자 1,079억 달러로 사상 처음 1,000억 달러를 돌파하기도 했습니다.

1997년 처음으로 34억 달러 흑자를 실현한 이래, 17년만에 흑자규모가 30배 이상 증가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 면면을 들여다 보면 아직 가야 할 길은 멀기만 합니다.

이제 범용 소재부품산업의 경쟁력은 선진국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로 성장했지만, 여전히 주요 소재부품의 원천·핵심 기술은 선진국에 상당히 뒤쳐져 있기 때문입니다.

탄소섬유소재나 OLED발광 소재는 선진국 대비 60% 수준에 머물고 있고, LCD 관련 핵심 소재는 아직도 98%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또한 이름만 들으면 알만한 세계적인 기술력을 갖춘 소재 기업의 육성도 시급한 문제입니다.

제조업 강국인 독일과 일본에는 소재 관련 강소기업의 성공스토리가 넘쳐 납니다.

독일의 자동차 핵심부품 강자 ‘보쉬’와 플라스틱 고정용 나사 등으로 신시장을 개척한 ‘피셔’ 등은 경쟁사를 압도하는 독점적 기술력을 바탕으로 세계시장을 움직이고 있습니다.

일본 또한 미국 보잉사의 ‘B - 787’을 그들의 ‘준(準)국산기’로 부를 정도로 스미토모정밀·도레이 등 첨단 소재 분야의 세계적인 기술력을 갖춘 기업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소재는 과거로부터 세상을 움직여 온 원동력이었습니다.

‘석기 - 청동기 - 철기’로 이어지는 선사시대에는 ‘소재’ 자체가 시대를 구분 짓기도 했고, 남보다 경쟁력 있는 소재를 보유한 집단이 세상을 주도하기도 했습니다.

현대에도 소재는 더욱 정밀화 첨단화 되어 쉽게 눈에 띄지는 않지만, 역시 가장 밑바탕에서 강력하게 세상을 움직이고 있습니다.
 
이미 세상에서 유일무이한 독보적인 기술력을 보유한 소재 기업들이 존재하고 있고, 만약 이들이 오늘부터 생산을 멈춘다면 세계 경제도 그 성장을 멈출 수 밖에 없는 지구촌 시대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저의 꿈은 제가 몸담고 있는 LG화학을 ‘R&D가 강한 세계적 소재기업’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만약 이 꿈이 실현되고, 우리나라에 훌륭한 소재기업이 많아지게 된다면 이로 인해 대한민국은 세계시장을 선도하는 중심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대한민국이 멈추면 세계도 멈추고, 대한민국이 뛰면 세계도 뛰게 만들 수 있는 경제의 바탕, 소재에 우리의 미래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