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ISSUE 01

01 - 환자 중심의 이면을 보다, HAPPINNOV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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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진 실장
삼성서울병원 혁신지원실

oliver.kim@samsung.com


환자가 행복한 의료혁신이 “HAPPINNOVATION(해피노베이션)”이다. 해피노베이션은 크게 두 개의 축을 근간으로 한다.

그 한 축은 의료의 질이다. 아무리 친절하더라도 이에 걸맞은 치료 결과를 낼 수 없다면 사상누각에 불과하다.

또 한 축은 환자의 경험이다. 경험의 가치가 높아질수록 치료 효과도, 행복지수도 올라간다.

문제는 기존의 진료과 체계로는 환자중심 진료를 구현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그래서 환자 행복이라는 가치는 영원히 도전해야 할 북극성과 같은 것이다.



친절해진 병원들,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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팽팽했던 공급자와 소비자 간 균형점이 소비자 축을 향해 이동하고 있으며 병원 또한 예외가 아니다. 환자에게 주도권이 넘어감에 따라 피부에 가장 와 닿는 변화는 병원이 친절해졌다는 것이다.

일례로 2014년 국가고객만족도 상위 10개 기관에 무려 4개의 병원이 포진하고 있다. 호텔과 병원이 더불어 상위권을 싹쓸이 한 것이다.

주목할 점은 2004년 같은 조사에서 상위 10위권 이내에 속한 병원은 1개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호텔이야 서비스업을 대표하는 업종이니 이해가 되지만 병원들의 약진에 대해서는 고개를 갸우뚱하는 이들이 많다.

국가고객만족도를 비롯한 주요 만족도 평가에서 다수 병원들이 상위에 포진된 데에서 알 수 있듯이 이제 환자 만족과 친절은 병원의 경쟁력을 평가하는 중요한 척도가 되었다.

그러면 병원은 환자를 과연 얼마나 이해하고 있을까?

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것이기는 하지만, 이를 가늠할 수 있는 흥미로운 사례가 있다.

포천지가 선정한 200대 기업에게 ‘당신 기업은 고객이 원하는 제품이나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습니까’라고 물었더니 80%가 ‘그렇다’고 답했다.

반면, 이들 기업의 고객들이 ‘나를 이해하고 있다’라고 답한 비율은 8%에 불과했다.

환자의 니즈에 대한 포천지 200대 기업들의 착각이 이러한데 병원과 환자 간 시각 차는 오죽하겠는가. 여전히 병원은 환자의 마음을 모를 수 있다.


유연함과 뻣뻣함

“병원이 환자의 숨은 니즈를 읽어 낸다는 것”

오랜 대기로 인해 지쳐버린 환자를 어떻게 케어해야 할지 골머리를 앓고 있기에, 환자 중심이라 할 때 첫 번째로 짚어 보는 숙제가 대기시간이다.

우선 예약부터 발목을 잡는다. 선도적인 대학병원의 경우 한 두 달 기다리는 일은 다반사고, 소위 명의의 반열에 오른 교수는 1년 이상 기다려야 겨우 진료를 받을 수 있다.

오랜 인내의 예약대기를 거쳐 진료를 받게 되지만 의사 선생님을 만나기 위해서도, 검사를 받기 위해서도, 입원을 위해서도, 심지어는 돈을 내기 위해서도 대기를 거듭한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가장 먼저 떠올릴 수 있는 방법은 대기시간을 없애는 것이다.

환자를 더 많이 보고, 환자에게 할애된 진료시간을 칼같이 지키고, 무인수납기를 이곳 저곳에 설치하는 조치들이 그것이다.

안타깝게도 이러한 노력은 다른 문제를 야기하기 십상일 뿐 아니라, 근본적인 해결책도 되지 못한다.

기껏 환자 진료를 늘리더라도 적절한 검사시설이 뒷받침되지 못하면 환자들이 검사실 앞에서 길게 늘어서는 풍경이 펼쳐지기 일쑤다.

제한된 자원으로 어느 한 쪽을 해결하면 다른 한 쪽에서 문제가 불거지는 일종의 ‘풍선효과’ 때문이다.

하지만 생각을 바꿔보자. 과연 대기시간을 줄이는 게 능사일까? ‘오늘은 병원 가는 날’이라며 아예 하루 일정을 빼놓은 분들의 대기시간도 ‘0’으로 줄여야 할까.

별다른 일정이 없음에도 환자들이 병원을 빨리 벗어나는 게 좋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분들이 병원에서 알차게 시간을 보낼 수 있다면, 그때도 대기시간이 길다고 불평할까? 똑같이 지나가는 시간이지만 사람과 질환에 따라 그 가치는 달리 느껴진다.

그렇기에 누군가에게는 기다리는 시간을 줄여주는 것이, 또 누군가에게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하는것이 더 나을 수 있다.

우리가 만약 환자의 마음을 읽어낸다면 제한된 자원을 비대칭적으로 사용하기 위한 단초를 찾아낼 수 있고, 이러한 단초들은 환자를 감동시키는 경험과 직결된다.

환자 중심 진료의 첫 번째 원칙은 병원이 줄 수 있는 것이 아닌, 환자가 원하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자, 이제 물어보자.

‘우리는 그들의 마음을 읽어내고 있습니까?’


친절과 배려

“병원이 친절이라는 한계를 넘어선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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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원들이 도열하여 환자에게 깍듯이 인사하는 것으로 아침을 시작하는 병원.

이 병원은 백화점의 친절 서비스를 접목한 사례로 매스컴에 소개되었고, 이곳의 서비스를 배우기 위한 벤치마킹이 쇄도한 적도 있었다.

일본에서 친절 서비스로 유명한 가메다(KAMEDA)병원. 이곳은 컨시어지, 케이터링, 반려견 케어, 야간 바와 같이 혁신적인 고객 서비스로 유명한 병원이다.

간호사들은 환자 옆에서 무릎을 꿇고 문진을 하는데, 일본에서도 이 같은 방식은 이례적이다.

환자 중심의 서비스 정신을 배우겠다는 한국 병원들의 발걸음이 끊이질 않고 있다.

병원도 친절해야만 한다는 생각이 의료계에 강하게 자리하고 있다.

소위 환자 접점부서의 직원들은 VoC(Voice of Customer : 고객의 소리)를 통해 환자와 보호자의 불만이 접수될까 노심초사한다.

‘이번에 접수된 OOO 불만 케이스에 대해서 경위와 해결책을 제시하라’는 통보를 받는 순간부터 만만치 않은 후폭풍이 뒤따르기 때문이다.

VoC의 그늘은 접수/수납에서 간호와 의사직군에 이르기까지 병원 전반에 걸쳐 넓게 드리워져 있다.

의료도 서비스다. 하지만 고객이 지갑을 열도록 유혹하는 백화점과 치료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지갑을 열 수밖에 없는 환자를 대상으로 하는 병원 사이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전자는 친절한 미소로 승부해야 하고 후자는 전문가의 역량으로 승부해야 한다. 환자 치료를 잘하는 병원이 친절까지 하다면야 금상첨화다.

하지만 병원이 미소를 청진기보다 앞에 놓는 순간 의료진의 진료서비스는 본질과 비본질의 자리가 바뀌어 버리게 된다.

환자 중심 진료의 두 번째 원칙은 의료의 본질 가치에 집중하고 배려와 친절 간 우선 순위를 명확하게 잡으라는 것이다.

병원이 친절에 집착하면 의료진들은 환자를 향해 미소를 띌 수 있지만, 자칫 환자를 위한 진정한 배려는 자리를 잃을 수 있다.


치료와 공감

“감정을 가진 환자를 케어 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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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요 클리닉(Mayo Clinic)은 US News & World Report의 2014년 병원평가에서 철옹성 같던 존스홉킨스를 제치고 1위에 등극했다.

또한 16개 평가대상 질환 중에서 무려 9개가 1위를 차지하고 있는, 자타가 공인하는 미국의 최고 병원이다.

‘The 그림 1 KAMEDA Medical Center Needs of the Patient Come First’로 유명하기에 많은 이들은 메이요를 친절한 병원의 대명사쯤으로 여긴다.

그러나 과거에는 ‘클리닉’에 불과한 곳이 유서 깊은 대학병원과 비교되어서는 안된다는 부당한 평가절하를 당하기도 했다.

이러한 인식을 극복하고 정상에 오른 메이요 클리닉의 사례는 최고 병원에 대한 인식과 평가의 패러다임이 근본적으로 변하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나라 병원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최첨단과 최고난도의 가치는 여전히 중요하지만 의료기술이 전반적으로 상향 평준화되고 있음을 감안할 때, 의술에만 집착하다가는 자칫 생태계에서 비껴나 갈라파고스 신드롬에 빠질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위험은 공감(Empathy)이라는, 의료서비스의 또 다른 속성을 함께 고려함으로써 피할 수 있다.

공감과 치료는 하나의 서비스 프로세스로 엮일 때 힘이 커진다.

병원에 따라 어느 정도의 비중 차이는 날 수 있겠지만 지나치게 한 쪽 면에만 집중하고 있다면 조정이 필요하다.

환자의 경험은 이성적이면서도 감성적이기에 병원의 의료 서비스도 두 측면의 밸런스를 유지해야 한다.

환자와 의료진 시각이 모이는 접점, 이성과 감성이 모이는 접점이 바로 그 균형점이다.

지방에서 진료를 받기 위해 외래를 방문한 48세 유방암 환자를 예로 들어 보자. 치료라는 관점에서 보면 환자의 진단기록을 종합하여 수술, 항암, 방사선 치료를 포함한 후속 진료 프로세스를 계획하고 유방재건을 할지 여부에 대해 사전에 결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이 환자가 늘 야근을 하는 남편과 고3에 올라간 수험생 아들을 걱정하고 있고, 입원하는 동안 간병인을 구할 여력이 없어 농사짓는 친정 어머니의 손을 빌려야 하는 상황임을 담당 의사가 알고 있다면 이들은 어떤 교감을 하게 될까? 치료와 공감은 이처럼 환자의 감정선에 맞닿아 있어야 한다.

환자중심 진료의 세 번째 원칙은 치료와 공감간 균형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둘은 함께 가야 하지만, 서로 상충될 수밖에 없기에 끊임없이 영점을 맞추며 가야 함도 고려하자.


HAPPINNOVATION

“삼성서울병원이 환자 중심 가치를 구현하는 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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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서울병원은 몇 년 전부터 ‘어떻게 하면 세계 최고의 병원이 될 수 있을까’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을 시작했다.

이에 대한 해답을 얻기 위해 세계 유수의 병원들을 벤치마킹하는 ‘In Search for Excellence’ 과정도 거쳤다.

그리고 삼성서울병원의 가장 큰 강점인, ‘친절’이라는 가치를 버려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친절함의 아이콘인 병원이 친절함을 버려야 하다니….

친절이라는 기존의 프레임에 갇혀 있으면 배려와 공감에 기반한 새로운 프레임을 그려낼 수 없다고 판단했기에 드디어 행동에 나섰다.

이때 내놓은 캐치프레이즈가 “환자가 행복한 의료혁신, HAPPINNOVATION(해피노베이션)”이다.

해피노베이션은 크게 두 개의 축을 근간으로 한다. 그 한 축은 의료의 질이다.

아무리 친절하더라도 이에 걸맞은 치료결과를 낼 수 없다면 사상누각에 불과하다.

의료의 질 측면에서 글로벌을 선도하기 위한 삼성서울병원의 전략은 20×20, 즉 세계 최초 기술과 세계 최고 기술을 각각 20개씩 만들어 내겠다는 것이다.

또 한 축은 환자의 경험이다. 경험의 가치가 높아질수록 치료 효과도, 행복지수도 올라 간다.

문제는 기존의 진료과 체계로는 환자 중심 진료를 구현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삼성서울병원은 센터 중심 진료를 향한 전면적인 혁신에 도전한다.

그리고 2013년, 진료센터들이 속속 문을 열면서 환자 중심 진료 시대의 막이 오르게 된다.

삼성서울병원의 HAPPINNOVATION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환자 행복이라는 가치는 영원히 도전해야 할 북극성과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 많은 병원들이 이러한 도전을 하고 있고, 이 과정을 통해 환자를 향해 한 걸음 더 다가갈 것이다.

환자 경험은 유행도, 그리고 경영기법도 아니기에 환자의 시선에 영점을 맞추고, 행동으로 옮길 때 비로소 답을 찾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