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의 열쇠 - 아래로부터의 혁신
혁신의 열쇠는 우리 사회 및 산업 전반에 걸쳐 다양한 혁신의 키워드와 마인드에 대해 조망하는 칼럼입니다.
강성모 총장 KAIST
흔한 표현으로 계절의 여왕이라 불리는 5월입니다.
천지 만물로 하여금 아름다운 기운을 뿜어내게 하는 것이 이 시기를 다스리는 자연의 법칙일 것입니다.
하지만 2015년 대한민국의 5월을 살고 있는 우리는 싱그러워라 권하는 계절의 섭리에 오롯이 동화될 수만은 없을 것 같습니다.
형태와 무게는 각기 다르겠지만 1년 전 겪은 참사의 고통이 저마다의 가슴에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미증유의 사태를 목도하고 반년쯤 지났을 무렵, KAIST에는 재난학연구소가 생겼습니다. 사연은 이렇습니다.
몇몇 교수들이 현재의 참사를 반성하고 미래의 재난을 대비하자는 데 뜻을 모은 것입니다.
자주 만나 의견을 나누며 연구를 시작했고 시간이 흐를수록 동참하는 인원이 늘어났습니다.
공유하는 가치가 뚜렷해지고 그 모임이 우리 사회에서 수행할 수 있는 역할이 구체적으로 제시됐을 때, 학교에 정식 연구소 설립을 신청한 것입니다.
학생을 지도하고 연구하는 일에 분초를 쪼개가며 몰두하는 교수들이 업무 이외의 일에 시간을 들이고 정신을 쏟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닙니다.
돈이나 명예를 원했다면 다른 연구에 매진하는 것이 더 현명한 방법이니 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모인 이유는 한 가지입니다. 안전한 사회를 만드는 일에 과학자의 힘을 보태겠다는 것입니다.
참사를 대면한 학자적 양심이요, 기꺼이 짊어져야 할 도의적 책무라는 것입니다.
저는 이것을 ‘아래로부터의 혁신’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아래로부터의 혁신은 필자가 KAIST에 부임한 이후 지속적으로 강조해온 가치입니다.
우리가 그동안 알아온 혁신은 대부분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방식이었습니다.
오랜 기간 유교 문화가 융성했고 상명하달의 서열 문화가 익숙한 사회에서는 리더가 결정하고 구성원이 따르는 방식이 효과적이었을 것입니다.
의사결정 기간을 단축할 수 있을뿐더러 강력한 추진력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제는 아래로부터 시작된 혁신을 통해 세상을 바꿔 나가야 할 때입니다.
21세기는 창의의 시대입니다. 엘빈 토플러는 < 부의 미래 >라는 저서를 통해 이미 10년 전에 미래의 부는 시간, 공간, 지식이라는 세 가지 심층기반(Deep Fundamental)이 어우러져서 창출될 것이라고 예견했습니다.
시공을 초월하고 세계를 아우르는 형태의 비즈니스에서는 집단지성이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합니다.
콜렉티브 위즈덤(Collective Wisdom)이라고도 하죠. 여러 사람의 경험과 지식, 지혜를 모으는 것이 더 커다란 창의성의 원천이 되고 더 강력한 수행 동기를 부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구성원들의 자발적인 참여가 보장되는 아래로부터의 혁신은 집단지성을 형성할 수 있는 효율적이고 지속성 있는 수단입니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모여 지식을 쌓아가는 과정에서는 ‘소통’과 ‘이해’가 필연적으로 수반됩니다.
우리 사회가 아래로부터의 혁신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자유롭게 생각하고 거리낌 없이 제안할 수 있는 문화가 형성되어야 합니다.
가끔 학생들에게 질문을 던질 때가 있습니다.
즉문즉답이 오기도 하지만 대답을 못하고 망설이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도대체 왜 그랬는지 나중에 넌지시 물어보면 정답을 몰랐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우리 사회에는 정답이 아니면 차라리 말하지 않는 편이 낫다는 인식이 있습니다.
또한 정답이라 할지라도 입바른 소리, 튀는 소리, 잘난 척하는 소리로 비춰질까봐 일부러 삼가는 경향도 있습니다.
하지만 오답도 답을 찾아가는 과정 중에 하나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나의 부족한 대답에 다른 이의 식견이 보태졌을 때,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엄청난 결과가 창출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와 더불어 리더십이 변해야 합니다.
뛰어난 구성원들이 아무리 탁월한 제안을 할지라도 리더가 귀 기울이지 않으면 혁신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리더가 경직된 조직은 구습을 답습하는 일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흔히 리더십과 팔로우십이라고 표현하는 이 관계는 한쪽이 일방적으로 끌고 다른 한쪽이 무조건적으로 밀어주는 그런 관계가 아닙니다.
둘 중 하나가 사라지면 모두가 존재할 수 없게 되는 상생의 공동체라는 뜻입니다.
KAIST는 아래로부터의 혁신을 통해 앞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국가와 사회라는 공동체 안에서 우리가 수행할 수 있는 역할을 찾아내고 실천하는 것으로 대학의 사회적 책무를 다하고자 합니다.
구성원들의 자발적인 노력이 학교를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는지, 그 변화들이 모여 얼마나 근사하고 훌륭한 방식의 개혁이 될 수 있는지를 체감하는 요즘입니다.
이와 같은 아래로부터의 혁신이 대한민국에 곳곳에서 일어났으면 좋겠습니다.
아직 해결되지 않은 슬픔을 짊어지고 있는 2015년 5월에 가지는 바람입니다.
이 바람이 이루어진다면 앞으로 맞이할 날들은 보다 살기 좋은 세상으로 바뀔 것이라고 믿고 기다리는 간절한 마음이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