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플러스 엣세이 - 국가 산업 혁신의 가속기, 슈퍼컴퓨터

플러스 엣세이는 사회저명 인사가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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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서 연구위원/前원장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


제조업은 대한민국 성장의 한 축이자 보루다. 우리나라가 주요 경제국가로 성장할 수 있었던 바탕에는 제조업의 공헌이 컸다.

한강의 기적을 이끌었을 뿐만 아니라 1997~1998년 IMF 경제 위기를 극복하는 데도, 2007~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를 빠르게 벗어나는 데도 큰 기여를 했다.

국민총생산(GDP) 대비 제조업의 비중이 20% 이상인 우리나라(31%)를 비롯한 중국(41%), 독일(21%)과 같은 국가들은 일본(19%)이나 영국(12%)과 같이 제조업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낮은 국가들에 비해 금융위기 이후 더욱 빠른 회복세를 보인 것이 사실이다.

특히 우리나라는 금융위기 직후 10년 동안 제조업의 GDP 성장 기여율이 60%에 달할 정도로 경기 회복에 결정적인 역할과 함께 국가 경제의 든든한 버팀목으로서의 역할을 담당해 왔다.

제조업은 우리에게 있어서 국부의 원천이자 고용의 옹달샘인 것이다.

그러나 이런 제조업이 뿌리부터 송두리째 흔들리고 있다. 주요 제조업들은 영업이익 감소, 성장률 정체, 고용 감소라는 심각한 악순환의 고리에 빠져들고 있다.

LG 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우리나라 제조업의 연평균 성장률은 1970년대 16.2%에서 2000년대 6.4%로 하락하였으며 제조업의 고용 증가율은 1970년대 3.6%에서 2000년대 -0.6%까지 하락한 것으로 분석된다.

2010년 이후 우리나라 제조업에 대한 위기 신호는 더욱 심각하다.

단적인 예로, 2011년부터 3년간 제조업 생산증가율은 2.2%로 2001~2010년의 3분의 1토막으로 내려앉았다.

대들보인 제조업이 무너지면 대한민국 경제근간이 흔들릴 수밖에 없기에 실로 우려되는 상황이다.

필자가 잘 아는 D산업의 사례는 우리나라 제조 기업들의 어려운 현실을 좀 더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D산업은 5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정밀화학분야 전문기업이다.

꾸준한 연구개발과 새로운 사업 영역의 발굴을 통해 매출 5,000억원이 넘는 제조 중견기업으로 성장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대부분의 중소기업과 마찬가지로 기업의 지속 성장의 기반이 되는 우수 인재 확보에는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D산업은 연구개발 활동의 강화를 위해 2012년도부터 석사급 이상의 고급인력 5명의 채용을 진행해 왔으나 3년 동안 원하는 수준의 국내 인력을 채용하지 못하여 베트남 등 동남아 국가의 우수 인력을 유치하여 우리나라 대학에서 석사과정 교육을 이수하게 한 후 채용할 계획으로 있다.

전도유망한 중견기업이 이런 상황인데 일반 제조 중소기업은 상황이 어떨지 짐작하고도 남을 것이다.

우리나라는 청년 실업률이 10%에 육박하고 있지만 청년세대의 제조업에 대한 잘못된 인식과 함께 변화가 느린 제조업의 특성으로 인해 젊은 고급인력들은 여전히 제조업을 기피하고 있다.

D산업의 사례는 이러한 우리나라 제조업의 현주소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우리나라 제조업은 제조업 최강국인 미국의 사례에서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고 본다.

미국에서 생산되는 신발 뉴발란스(New Balance)가 전 세계 히트 아이템이 된 것, 세계에서 땅값과 인건비가 가장 비싼 실리콘밸리에서 전기차를 생산하는 테슬라(TESLA)가 전 세계 제조업의 공식을 새로 쓰고 있는 사실들이 의미심장하다.

뉴발란스는 미국에 제조공장을 운영하고 있는 유일한 메이저 운동화 브랜드다. 현재 뉴발란스는 전 세계 120여 개국에서 판매되는 세계 3위의 운동화 브랜드다.

미국 내 5개 공장에서 일하는 1,300여명의 직원이 운동화 총량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700만 켤레를 생산하고 있다.

현재 미국의 뉴발란스 공장에서 근로자들이 받는 시급은 12달러 정도다.

이처럼 인건비가 비쌈에도 불구하고 뉴발란스는 미국에도 얼마든지 제조업이 부활 가능하다는 것을 입증하고 있다.

뉴발란스는 혁신적인 기술과 퀼리티를 최대치로 끌어올리는 데 집중하고 돈이 많이 드는 스타 마케팅이나 대대적인 TV광고는 하지 않는다.

뉴발란스 신발의 성공은 착용감, 안전성, 무게절감, 몸매교정이라는 기술혁신을 통해 이루어졌다.

뉴발란스는 이를 위해 디자인 스튜디오와 스포츠 리서치 연구소를 둬 첨단 시뮬레이션 기술을 활용한 생체역학 분야의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혁신적인 제품을 개발하였다.

이를 통해 1991년 9,500만 달러였던 연 매출은 20년간 한 번도 꺾이지 않았고 2009년 27억 달러 규모로 성장했다.

이 뿐만 아니라 10년이란 짧은 역사를 가진 젊은 자동차 기업인 테슬라(Tesla)는 혁신적인 기술력에 힘입어 순수 전기 스포츠카인 로드스터를 출시하였다. 10만 달러가 넘는 높은 가격에도 불구하고 고객들의 인정을 받았다.

이러한 테슬라 성공의 비밀은 오랜 시간 첨단 시뮬레이션을 거듭하면서 테슬라 자동차의 배터리 시스템을 완벽한 수준으로 개발한 것에 있다.

이를 통해 한때 적자였던 매출이 2014년도 8억 달러 규모로 성장하였다.

또 다른 사례로 자동차의 개인·맞춤형 제작을 가능케 한 로컬모터스(Local Motors)를 들 수 있다.

로컬모터스는 자동차 생산 및 설계에 처음으로 오픈소스와 공동 생산(Co-Creation), 마이크로 제조(Micro Manufacturing) 개념을 자동차 업계에 도입하여 산업의 판도를 획기적으로 바꿔놓았다.

이러한 로컬모터스의 성공의 비밀은 첨단 가상 설계 및 시뮬레이션 기술을 통해 엔지니어들이 세부설계를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수행한 것에 있다.

로컬모터스는 2012년 당시 랠리 파이터를 통해 1,500만 달러 이상의 매출 규모를 달성하고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테슬라나 로컬모터스와 같은 제조혁신 기업이 가까운 미래에 가장 강력한 스마트카 회사로 변신해 현대자동차를 위협하는 상황이 만들어 질수도 있는 상황이다.

한때 제조업의 침체로 고민하던 미국이 제조업 최강국으로서의 면모를 되찾아가는 데에는 오바마 행정부의 슈퍼컴퓨터에 대한 적극적인 투자와 산업적 활용을 높인 점이 큰 역할을 했다.

미국은 전 세계 슈퍼컴퓨터의 50%에 해당하는 252대를 보유하고 있는 그야말로 슈퍼컴퓨터의 초대강국이다.

이와 같이 강력한 슈퍼컴퓨팅인프라를 기반으로 2000년대 후반부터 백악관 경쟁력위원회에서는 미국 내 제조업의 슈퍼컴퓨팅 기반의 모델링 및 시뮬레이션(Modeling & Simulation)의 적극적 활용을 위한 다양한 정책과 사업, 관련 기관의 설립을 적극적으로 추진해 왔다.
 
그 결과 최근 미국 제조업의 모델링 및 시뮬레이션 활용률은 60%에 육박하고 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미국 제조업에서 슈퍼컴퓨터와 같은 고성능 컴퓨팅을 활용하는 모델링 및 시뮬레이션 비율이 27%에 달하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의 제조업이 활기를 띠는 이유도 이러한 모델링 및 시뮬레이션 역량이 제조업에 반영되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사이버, 첨단기술로 평가되는 모델링 및 시뮬레이션 기술의 산업적 활용이 높아지면서 고급 청년 일자리가 늘어났고 이는 다시 미국 제조업 혁신의 원동력이 된 것이다.

미국이 슈퍼컴퓨터를 활용하여 제조업 혁신을 가속하고 있는 반면 우리나라는 여전히 전통적인 제품개발 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중소기업의 15% 정도가 모델링 및 시뮬레이션을 활용하고 있으며 특히 슈퍼컴퓨터를 활용한 모델링 및 시뮬레이션 활용률은 1%도 채 되지 않는 상황이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중소기업들은 여전히 고비용의 반복적인 물리적 실험, 평가를 통한 제품개발 방식에 의존하고 있다.

이는 다시 제품 원가 상승의 원인으로 이어져 중국에서 밀려오는 값싼 제품들에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뉴발란스, 테슬라, 로컬모터스의 사례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슈퍼컴퓨터와 이를 활용하는 모델링 및 시뮬레이션 기술은 기업 내 제조프로세스 혁신을 위한 필수 요소로 자리 잡고 있다.

따라서 우리나라 제조업의 꺼져가는 불씨를 살리기 위해선 미국과 같이 제조업 전반의 슈퍼컴퓨팅 기반의 모델링 및 시뮬레이션의 활용을 활성화시켜야 한다.

이를 통해 고부 부가치의 일자리를 창출하고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도모해야 한다.

산업을 혁신하는 가속기, 슈퍼컴퓨터를 통해 제조업 르네상스 국가, 대한민국 르네상스의 길을 열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