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기술경영인인터뷰

최고기술경영인 인터뷰 - 한국도키멕(주) 조홍래 대표이사

모순과 역발상으로 평생 현역, 청년의 삶을 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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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작성정원일 교수(경북대학교), 김공숙 전문작가(프리랜서), 이종민 과장(산기협)


자동화기기의 핵심요소인 유·공압기기를 직접 생산, 공급하는 전문 제조기업인 한국도키멕은 국내 유압기기 분야의 선두주자이다.

조홍래 대표는 축적된 기술과 마케팅으로 정밀 경영을 최우선 가치로 실천하는 열정의 CEO이다.



최고기술경영인 인터뷰에서는 기술경영인과의 대담을 통해 생생한 경험을 바탕으로 최고기술경영인의 역할과 리더십 그리고 향후계획 등을 알아봅니다.


스토리를 현실로 만드는 것이 비즈니스

조홍래 대표는 미소와 유머가 많은 사람이었다.

그와의 첫 대면은 푸근한 웃음에서 시작했다. 어색한 첫 만남을 편안하고 즐겁게 풀어가는 데 탁월한 능력을 가진 그는 20대 청년 같은 열정을 가진 현역 노장이었다.

조홍래 대표는 한화그룹에 입사해 마흔 두 살에 임원이 되는 고속 승진과 성장을 거듭한 후 일본의 유수 제어기기 제조기업인 도키멕의 투자법인으로서 16년 전 한국도키멕을 설립했다.

직 보다는 유·공압기기 메이커의 길을 가는 업을 선택한 것이다. 그는 한동안 한화그룹 동기들이 대표로 있는 모습을 보면서 과연 자신의 선택이 옳은 결정이었을까 자문해 보았다고 한다. 지금이야 잘했다 싶지만 순간순간 흔들림은 있었다.

과거 유·공압 사업은 95%가 수입이었다. 완성품 조립 사업은 대기업이 모두 차지하고 조그마한 부속의 생산은 영세한 중소기업이 해왔다.

그러나 유·공압기기는 그냥 기계적인 장비가 아니고 유·공압 사업은 자본재 사업이다.

기계 장치가 들어가는 요소는 부품 베어링, 볼트, 너트, 스프링이 있는데 유·공압 기기는 여기에 자동화요소까지 더해야 한다.

즉 모든 것을 사람이 하듯이 움직일 수 있게 사람의 오감과 근력을 이용하는 것처럼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근육의 팔 다리가 유·공압 기기라고 가정해 보십시오. 이런 중간 자본재를 과거 선진국에서 모두 수입했습니다. 유·공압 기기를 거의 다 외국계 부품회사에서 사왔기 때문에 국산 기계라고 해도 막상 열어보면 부품은 FAG, NTN, NSK, 보쉬, 파카 등 거의 다 외국 것 일색입니다. 과연 누가 국산화를 할 건가요? 한국도키멕은 수입 전문이 아니라 일본의 개발 기술과 중국의 양산 기술 사이에서 정밀 기술을 샌드위치처럼 넣어서 독자적인 기술로 사업을 해나가는 기업입니다. 샌드위치 신세가 꼭 비관적인 것은 아닙니다. 속 재료가 어떤가에 따라 불고기 샌드위치도 되고 참치 샌드위치도 되지 않습니까?”

게임이 재미있는 것은 그 속성이 ‘성장’이기 때문이다. 중소기업은 성장을 통해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조홍래 대표는 직원들에게 늘 강조하는 것은 성장 즉 내부 역량을 강화해 파이를 키우라는 주문이다.

조 대표는 소설가 이병주의 작품 < 산하 >에 나오는 ‘달빛에 젖으면 신화가 되고 햇빛에 바래면 역사가 된다’는 내용을 차용해 ‘생각을 머리에 잘 심으면 콘텐츠가 되고 이것을 바람에 잘 실어 날려 보내면 스토리가 된다.

이 스토리를 현실로 만드는 것이 비즈니스’ 라고 말한다.

“저에게 언제까지 이 비즈니스를 할 것이냐고 물어보는 사람이 있습니다. 저는 나이는 상관없다고 봅니다. 하고 싶은 일이 있고, 현재 하는 일이 있기 때문에 다니고 있습니다. 결국 내가 하는 일, 이것이 바로 콘텐츠이고 이 콘텐츠가 가장 중요하지요. 항상 내가 뭘 해야 하지? 이렇게 자문을 하다보면 상상했던 것이 현실로 만들어집니다. 그래서 끊임없이 상상하려는 노력이 중요합니다.”

예전의 기업 경쟁력이 제품을 남보다 싸고, 빠르고, 좋게 만드는 것이었다면 이제는 독특하고 남과 차별화된 가치 있는 제품을 만드는것이 중요하다.

그는 엔지니어로 습득한 유·공압 기기를 사람처럼 움직이게 하는 정밀 공학의 노하우를 경영에 접목해 사업의 리스크와 스트레스를 관리하는 방법을 연구했고 ‘정밀 경영’을 실행하고 있다.

조홍래 대표의 정밀 경영은 숫자로 대변된다. 잘하면 105%, 못해도 95%의 성과를 달성하기 위한 정밀 경영의 묘법이 있다.

“저는 창사이래 한 해도 쉬지 않고 차기년도 사업계획서를 부서별로 모든 구성원이 모여서 만들어 발표하게 하고 그 실행 정도를 엄정하게 평가해왔습니다. (3년간의 발표 자료를 보여주며) 이런 발표 자료를 만들기 위해서는 치밀하게 계획을 세우고 숫자를 만드는 기술을 동원해야 합니다. 즉 충분한 시나리오가 필요하다는 것 입니다. 시나리오대로 행동하면 계획대로 실천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기획이 계획이 되고, 계획이 전략으로, 전략이 실행으로 움직입니다. 이것이 바로 정밀 경영입니다. 그 실천 현장이 연간 2회, 회사 전 직원이 참여하는 사업계획서 발표 워크숍입니다.”


중소기업이 필요로 하는 인재는 적재적소(適材適所)가 아닌 적소적재(適所適材)의 인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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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소기업 CEO는 평범한 사람을 뽑아서 필요한 사람으로 만들어 가는 능력이 필요하다고 힘주어 말한다.

“저는 할인마트에 가면 주부사원을 봅니다. 평범한 주부를 데려와서 계산을 척척 하게 하는 계산원으로 육성시킵니다. 저희는 지방에 공장과 연구소를 만들었습니다. 지방에서 우수한 사람을 뽑으라고 했습니다. 뽑아서 훈련시키고 성과가 나면 초과 이익금의 몇퍼센트라도 돌려주자는 생각입니다. 저는 평범한 사람을 뽑아서 좋은 인재로 만드는 능력자가 되어 보자는 다짐을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미리 기업의 가치관을 명확하게 해야 합니다. 우리의 사명은 무엇인가? 핵심가치는 무엇인가? 비전은 무엇인가? 를 놓고 함께 고민하는 구성원이 되도록 만들어 가야 합니다.”

한국도키멕은 우선 사람부터 뽑아 놓고 배치할 곳을 찾는 적재적소(適材適所) 보다는 적소적재(適所適材) 즉 작업 환경을 보고 거기에 맞는 사람을 찾아 배치하는 데 중점을 둔다.

현장에 맞는 인재를 뽑아야 이직률도 적고 자기 만족도도 높기 때문이다.

적소적재의 인재 발굴과 배치가 효율적인 이유는 한국도키멕이 일본의 기술력, 중국의 제조력과 연합해 나가야 하는 기업이기 때문이다.

조 대표는 한국도키멕은 전문 제조기업으로서 세계의 전문 중소기업들과 글로벌 경쟁을 하고 있기 때문에 글로컬(Glocal) 인재를 육성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CEO로서 자신이 할 일은 인재를 선발하고 배치할 때 나무, 숲, 산을 동시에 보는 리더십을 갖추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조홍래 대표에게 비즈니스란 모순과 역발상의 조화이다.

사는 사람은 싸게 사고 싶고, 파는 사람은 비싸게 팔고 싶은 것이 시장이고, 종업원은 많이 받고 적게 일하고 싶고, 대표는 적게 주고 많이 시키고 싶은 곳이 기업 현장이다.

이런 환경에서 서로가 모순을 균형 있게 맞추어 가는 것이 경영이고 이를 해결해 나가는 방법 중의 하나가 바로 역발상이라는 것이다.

그는 과거 한화그룹에 있을 때도 신입사원 OJT에 들어가면 남들과는 다른 역발상 교육으로 유·공압 분야에 대한 관심을 유도했다.

“선배들은 대부분 신입사원들에게 이제 고생문이 열렸다, 힘든일이 시작된다, 인생의 황금기는 끝났다는 식의 부정적인 이야기를 많이 해주는데 저는 반대로 긍정적인 생각을 전파했습니다. 신입사원들은 회사 생활을 전혀 모르는 하얀 백지상태로 들어옵니다. 저는 인생의 중요한 포인트에서 망설이지 말아야 할 세 가지를 말해주었습니다. 첫 번째 무엇을 먹을까 망설이지 말라 두 번째는 결혼을 할까 말까 망설이지 말라, 마지막으로 회사에서 무슨 일을 할까 망설이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내가 하고 있는 유·공압 분야에 대해서 말해줍니다. 이것을 선택하면 여러분이 은퇴할 때까지 하게 될 것이라고요.”

그렇게 OJT를 끝내고 나니 신입사원 중 유능한 인재들이 유·공압 사업부를 많이 지원하였다.

나중에 그들은 조 대표가 한화를 떠나 독립할 때 대부분 그의 뜻을 따랐고 지금까지도 함께 한국도키멕의 중추 역할을 하고 있다.


대한민국 중소기업이 힘든 이유 5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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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홍래 대표가 자신의 경험과 이해를 토대로 본 대한민국 중소기업이 직면한 어려움은 크게 다섯 가지이다.

(1) 내부 경쟁력이 취약하다

경쟁력을 키우려면 내부 경쟁력을 먼저 키우고 그 다음은 외부 경쟁력을 키워나가는 것이 순리인데 그렇게 하려면 기업의 규모면에서 중소기업이 열세하다는 것이다.

대기업은 인원이 많아 어쩔 수 없이 구조조정이 생길 수밖에 없고 적당히 솎아 주어야만 서로 더 잘할 수 있는 기회가 조성이 된다.

하지만 중소기업은 소수 정예 인력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누가 나가기라도 하면 남의 일까지 도맡아 하느라 너무도 벅차서 내부 경쟁력을 기르려고 해도 기를 수가 없다. 내부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기업의 성장을 앞세워야 한다.

그래서 조 대표는 연구소에 인력을 더 많이 지원해주고 성장을 독려한다.

기술 영업이 많은 회사이기 때문에 영업에서 공백이 생기면 연구소에서 인력을 보내줄 수 있는 구조를 만들었다.

개발자와 영업자가 모두 회사의 개발=생산=판매의 역할을 동일하게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기업의 연구소는 R&D가 아니라 R&BD 즉 Research & Business Development라는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 그렇게 해야 구성원 모두가 다양한 역할의 능력을 갖추게 되어 내부 경쟁력이 키워진다.


(2) 고유사업의 정체성이 취약하다

조홍래 대표가 관찰해 본 결과 우리의 중소기업은 자기 이름이 없다.

마치 우리네 어머니들이 자기 이름을 잊고 누구 엄마, 누구의 아내, 누구의 댁으로 불리며 사는 것처럼 말이다.

중소기업은 대기업의 1차 밴더, 대기업 협력사라고 해야 이름이 알려지는 실정이다. 대기업의 브랜드가 중소기업 고유의 이름보다 앞선다.

프로 운동선수는 한 명이라도 자기 이름이 있다.

중소기업은 브랜드는 있는데 브랜딩을 하지 않으니 자기 이름이 없이 살아가는 것이다.

“중소기업이 대기업의 밴더로만 남을 것을 고집하면 글로벌로 가겠다는 의지가 없는 것이지요. 자기만의 고유 사업의 정체성을 가지고 자기가 하고 있는 사업에서 이득을 내어야 합니다. 자기 사업은 겨우 적자 수준을 면하고 사업 외적인 것으로 수입을 올리는 경우도 많이 보았습니다. 싼 이자를 빌려서 다시 빌려주고 사업소득보다는 자산소득이 많은 기업은 문제가 있습니다. 여기에만 만족하고 있으면 본연의 사업은 어떻게 할 작정인가요? 사업 본연의 경쟁력을 높여야 결국 끝에 가도 살아남습니다.”


(3) 글로컬(Glocal)로 가지 않는다

그는 글로벌 기업 경영은 산을 올라가본 사람과 산 아래에만 있던 사람과의 인식 차이와도 같다고 설명한다.

어떤 사람은 어차피 올라갔다가 내려올 텐데 왜 산에 올라가느냐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등산은 올라가 본 사람만이 그 묘미를 안다. 같은 것을 두고 보는 눈이 이렇게 다르다.

“우리나라의 여성 골퍼들은 국내 대회에서 우승하면 바로 국제 대회 우승을 생각합니다. 로컬이면서 동시에 글로벌인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이태리 중소기업, 일본 중소기업은 국내에서 물건을 만들어 팔아도 바로 세계적인 기업이 됩니다. 우리가 만약 큰 기업에 그냥 협력업체, 밴더가 되면 희망이 없습니다. 과거 중국에서 국내 대기업에 납품하던 업체가 다른 업체에도 동시에 납품을 하면서 가격을 내리고 물량을 확보하는 방법으로 글로컬로 나가는 고무적인 사건을 접할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해야 중소기업이 성장할 수 있습니다.”


(4) 현금 흐름(Cash Flow)이 원활하지 않다

체격이 다른 코끼리와 생쥐 중에서 누가 더 잘 살까.

자산이 많은 대기업을 코끼리로 자산이 적은 중소기업을 생쥐로 비유해보자. 코끼리는 코끼리대로 살고 생쥐는 생쥐대로 체력만 있으면 산다. 손익이 바로 체력이다.

체력이 떨어지면 기운은 없지만 피가 돈다면 죽지는 않는다.

적자가 나면 쇠약해질 수 는 있지만 자금이 돌기만 한다면 망하지는 않는 것이다. 그러다 다시 손익이 올라가면 성장을 할 수가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현금 흐름이다. 현금은 피와 같아서 순환이 안 되거나 멈추면 죽게 된다. 기업의 경우 현금이 돌지 않으면 부도가 난다.

“저는 연구소의 R&BD 쪽에 투자를 하고 연구소도 손익구조표인 I/O Balance(Input/Output Balance)를 만들도록 주문합니다.
연구원들이 개발해서 팔리는 것을 초도 양산에 대한 매출 수익으로 가져가라고 하면서 이를 연구소에서 관리하게 해 기여도를 확인하게 합니다. 연구 개발의 성과를 통해 당당한 부서로 자리매김하도록 하자는 것입니다. 그래서 항상 연구소에 계획을 세워서 성과를 만들어 내라고 당부합니다.”


(5) 전략이 없다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서 세우는 것이 전략이다. 그냥 현재의 상태만을 원하고 있으면 이는 투자를 하지 않는 것이고 어려움이 닥쳤을 때 극복할 방법이 없다.

“예를 들어 전략회의를 할 때에 돈의 흐름이 어떻게 되는지를 살펴봅니다. 그러면서 회계 부장에게 묻는 것은 돈이 얼마가 나오고 들어가는지가 아니라 금리가 얼마나 싼지, 재정은 어떻게 할 것인지, 건물을 어떻게 살 것인지를 묻습니다. 남들이 하는 똑같은 일만 하기보다는 자신의 영역에서 생각을 확대해 연구하라고 주문합니다. 전체가 발전하고 합리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시킨 일만 하는 것이 아니라 전략의 수립과 실행이 필요합니다.”


역경을 기회로 활용하는 긍정적 사고의 기업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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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경을 거꾸로 말하면 경력이 된다.

조홍래 대표는 유년 시절부터 인생에서 여러 번의 역경을 만났지만 그 역경을 기회로 활용했다.

그의 인생에는 세 번의 소중한 기회가 있었는데 모두 실패의 경험이다.

그러나 실패를 통해 더 공부하게 되었고 학습을 통해 새로운 발전의 기회를 만났다.

첫 번째 실패이자 기회는 마산고등학교를 들어가기 전에 고교 입시에 실패하고 재수를 한 경험이라고 했다.

기차를 타고 고향 마을에서 마산으로 통학하던 어느 날 자신보다 공부를 못했는데도 먼저 입학한 동갑내기 친구가 기차 안에서 영한사전을 놓고 꼼꼼히 공부하는 모습을 훔쳐보다가 문득 깨닫게 되었다.
 
‘왜 나는 넉넉한 집안에서 공부를 시키는 대로만 슬금슬금하고 적극적으로 하지 않았는가?’ 친구에 대한 부러움과 질투심에서 시작된 자기반성을 통해 그는 입학시험을 불과 몇 개월 앞두고 적극적으로 공부를 다시 시작했고 그날 이후로는 공부하라고 늘 걱정을 하시던 부모님이 오히려 잠도 자면서 공부하라고 말할 정도였다고 한다.

두 번째 실패이자 기회는 대학입시에서 서울의 유명대학에서 실패하고 대구의 영남대학교를 갔을 때이다.

당시 2차 대학이었던 영남대는 서울 수도권 학생들을 모집하기 위해 우수한 학생들을 대상으로 장학생을 선발했고 조 대표는 재수를 택하는 대신 처음 들어본 영남대에 들어갔다.

그러나 입학 후에는 4년 내내 기계공학에 매진했다. 이유는 졸업 후에는 꼭 서울로 가야겠다는 일념 때문이었다.

세 번째 실패이자 기회는 한화그룹에 들어갔을 때였다. 공채로 입사했는데 모두 발령이 나고 마지막 세 명이 대기였는데 조 대표가 그 중 한 명이었다.

셋은 입사 시험 성적 우수자였다. 그는 2등의 성적으로 기획조정실로 발령이 나서 서울 근무를 하게 되었다. 소원 성취를 한 셈이다.

“당시 기조실은 흔히 말하는 KS라고 해서 경기고 서울대 인맥이 대부분이었습니다. 마산고와 영남대 출신인 제가 자기소개를 하면 다들 도대체 어떻게 여기에 들어왔느냐고 물어보는 바람에 난감한 적이 많았습니다. 저 또한 지방대 출신이라는 열등감 때문에 같은 기조실 근무라도 차이가 분명히 있을 것이고, 월급도 당연히 차이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첫 월급을 받아보니 똑같았습니다. 하하하.”

당시 조홍래 사원은 한화라는 기업이 자신에게 동등한 기회를 주었다고 생각하고 정말 열심히 일했다. 부지런하고 적극적이며 편안한 소통 능력에 힘입어 승승장구 했다.

회사 내에서도 공대 기계과 출신이지만 상경대 경영학을 전공한 특별한 사람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전문성과 친화력을 동시에 발휘했다.

한화그룹에 있으면서 드디어 세 번째, 남들은 흔히 위기라고 말하는 기회, IMF가 찾아왔다.

당시 그는 한화베어링 소속이었는데 회사가 독일에 매각되면서 전체 임직원을 30% 줄이고 구조조정을 시행할 때였다.

대표는 유·공압 사업부 책임자였던 그에게 총괄영업상무가 되어 4개의 사업부를 맡으라고 했다.

그는 지금까지 해 온 유·공압 분야를 계속 해나가야 할 것인지 아니면 거기서 벗어나 전문 관리자로 가야할 것인지를 두고 심각한 고민을 하게 되었다. 업을 선택할 것인가, 직을 선택할 것인가의 기로에 서게 된것이다.

“당시 한화그룹와 계약 관계에 있던 일본 도키멕은 한화기계가 매각되어 버렸으니 계약 자체가 무효가 되어 별도 법인을 만들겠다고 통보해 왔습니다. 그리고 제게 참여 의사를 문의해 왔습니다. 참여하려면 합작을 해야 한다는 조건까지 붙어 있었지요. 그것도 IMF의 한파 속에서 말입니다. 저는 고민이 많이 되었습니다. 한화 베어링 대표님이 회사를 구조조정하면서 제게 도움을 요청한 상황이었는데 어떻게 해야 할까.”

결국 그는 자신의 전공과 관심 분야인 유·공압 사업을 전문으로 하는 업의 길을 걷기로 하고 회사를 설립하겠다는 결정을 내린다.

참 어려운 선택이었다. 사람과 자금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아야 하는 상황이었다. 바로 여기서 그는 자신이 한화에서 쌓아 놓은 사람들과의 인연으로 위기를 돌파해 간다.

일본 도키멕은 유·공압 전문가를 확보하기 위해서 그가 일했던 부서의 구성원을 모두 데려올 것을 요구했다. 또 전체 자본금의 50%를 확보해 오라고 했다.

그는 직원들에게 여러분들이 다 가야 회사를 만들 수 있으며, 자금은 퇴직금을 모아서 회사를 설립해야 한다고 말했다. 잘못되면 모든 책임을 자신이 지겠다고 했다.

“회사 설립 과정을 통해 매우 강한 책임감을 느꼈습니다. 당시 부서의 구성원이 80에서 90명이었는데 유압 관련된 사람들이 약 50명 정도였지요. 그런데 그 중 36명이 새 회사에 가기로 서명을 하고 퇴직금을 전액 내놓았습니다.”

IMF를 거치면서 그렇게 한국도키멕이라는 한일 합작회사가 탄생하게 되었다.


인생은 마라톤, 엔지니어 인생도 마라톤

조홍래 대표는 자신의 인생을 군대의 행군으로 비교하며 젊은 엔지니어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 몇 가지를 전했다.

첫 번째 메시지는 인생은 단거리가 아닌 최장거리 마라톤이라는 것이다.

“군대에서 어느 날 밤에 혼자서 야간행군을 하는데 어떤 사람은 몇몇이 조를 짜서 갔습니다. 혼자서 열심히 갔는데 아무도 없더라고요. 그래서 내가 혼자 가다가 늦었나 싶어 허겁지겁 더욱 열심히 걸어갔습니다. 목표지점에 도달해 보니 아무도 없었습니다. 알고보니 1등이더라고요. 꼴찌라고 생각했는데 인생을 열심히 살다가 뒤를 돌아보니 아무도 안보였습니다. 제가 가장 앞에 와 있었던 것이지요. 제 인생은 마라톤입니다. 고입 때부터 재수를 하고, 대학도 원하는 곳을 못가고, 수많은 실수를 하고 다시 일어서서 걸어갈때 제가 오늘까지 이렇게 현역으로 있게 될지는 전혀 몰랐습니다.”

두 번째 메시지는 자신의 능력에 한계를 짓지 말고 끝없이 도전하라는 것이다.

“지인 중에 나이가 80대인 대표 한분이 인도에 투자한다고 해서 이제 정리 좀 하시지요 그랬더니 그 분 말씀이 ‘조 사장! 정리한다고 정리가 되나? 일하다가 그냥 떠나면 다음 사람이 정리할 것이니 열정이 있을 때까지 계속 움직이는 거지.’라고 말했습니다. 무척 와닿았습니다. 그동안 벌어놓은 돈도 지금 필요한 것이 아니라 은퇴한 후에 필요한 것이죠. 저는 은퇴하지 않고 일을 하고 있으니 지금은 돈이 필요 없습니다. 저는 많은 이들이 함께 잘 살 수 있는 무엇인가를 계속 만들어 내고 싶습니다.”

세 번째 메시지는 보다 구체적인데, 젊은 엔지니어들이 취업 인터뷰를 할 때 하는 질문을 역으로 한번 생각해 보라는 것이다.

궁금한 것을 물어보라고 하면 대개는 ‘월급이 얼마인가? 복지는 어떤가? 근무지가 어디인가?’ 등에만 관심이 있다. 조 대표가 보기에 젊은이들의 그런 모습은 이상하게 느껴진다.

프로선수들은 자신의 실력이 이러하니 얼마를 달라고 요청하는데, 취업 지원자들은 얼마의 성과를 내겠다는 것보다 자신이 이곳에 오면 얼마를 줄 것인가를 먼저 생각한다는 것이다.

젊은 사람들이 기업에 오면 사실 돈을 받으면서 일을 배우는 것이다.

내가 얼마를 받을까 하는 생각보다 역으로 내가 얼마만큼 성과를 낼 수 있을까 생각해 보라. 그는 미래에 대한 준비도 잊지 말라고 당부한다.

네 번째 메시지는 ‘나’는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사람이니 어디서 무엇이 될지 모른다. 나의 가능성을 믿고 항상 준비하라는 것이다.

“지금은 엔지니어지만 나중에 경영자로 클 때를 대비해야 합니다. 신발공장에 두 명의 사원이 있었는데 화학을 전공한 사람은 시장에 팔아야 하니 무역을 배워야 했고, 경영을 전공한 사람은 판매를 하면서 물건의 품질을 알아야 하니 공장에서 제조 관련 기술을 학습했습니다. 나중에 누가 무엇이 될지 모릅니다. CFO, CTO와 CEO를 구분하지 마십시오. 올라가면 같습니다. 저는 정밀하고 정확하게 만들어 낼 수 있는 기술을 가진 엔지니어로 시작해서 성장해 CEO를 하고 있습니다. 엔지니어 출신 CEO라서 부족한 부분은 참모를 선발하여 함께 수행해 나가면 됩니다.”

조홍래 대표는 자신이 겪은 아픔과 열등감을 이제는 담담하게 말하며 공감의 이야기로 끄집어 낼 수 있을 만큼 연륜이 쌓였다.

실패한 사람들의 과거는 화려해 질수록 초라해지지만 성공한 사람들의 과거는 초라할수록 화려해진다.

그는 성공한 사람이다. 그 화려함 속에서 20대와 같은 평생 현역, 청년의 삶을 오늘도 살고 있다.


 주요경력

1997 
한화기계(주) 정밀시스템사업부장/상무

2000 한국도키멕주식회사 대표이사

2005 한일산업기술협력재단 일본기업연구센터 운영위원

2008 한국생산성본부 최고경영자 총교류회장

2013 중소기업기술혁신협회 부회장 한국산업기술진흥협회 비상임감사


 주요수상

2006 과학의 날 과학기술부장관표창

2008 과학의 날 국무총리표창

2011 국가생산성대회 지식경제부장관표창

2013 대한민국 지식경영인 대상

2014 국가생산성대회 산업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