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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e in Tech - 문화재 보존과 복원기술 <박물관이 살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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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_ 최성우 과학평론가 I 사진출처_ 네이버영화(http://movie.naver.com)


MOVIE IN TECH에서는 영화 속에서 펼쳐지는 다양하고 흥미로운 과학기술에 대해 알아봅니다.


‘밤마다 온갖 전시물들이 살아나서 움직이는 박물관’이라는 기발한 설정의 영화 ‘박물관이 살아있다’의 세번째 작이 최근 국내외에서 개봉된 바 있다.

작년에 타계한 로빈 윌리엄스의 유작이 된 이번 ‘비밀의 무덤’편은 무대를 뉴욕 자연사박물관에서 런던 대영박물관으로 옮겨 눈길을 끌었다.

영화에서처럼 박물관의 전시물들을 살아나게 하는 것은 불가능하겠지만, 이 영화를 계기로 하여 문화재 보존 및 복원과 관련된 과학기술에 관해 살펴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듯하다.



훼손된 문화재 / 예술품의 복원

박물관이나 미술관 등에 전시된 각종 문화재나 예술품들은 여러 이유로 훼손될 우려가 있게 마련이다.

오랜 세월이 지나면서 변색 혹은 변형될 수도 있고, 옮기고 전시하는 과정 등에서의 각종 사고가 발생하거나, 심지어 관람객들이 고의적으로 훼손하는 경우마저 생긴다.

꽤 오래 전, 미국 피츠버그의 앤디 워홀 미술관에 전시된 중요 작품에 어느 몰지각한 관람객에 의해 빨간 립스틱의 키스자국이 찍히는 사고가 발생한 적이 있다.

아연실색한 미술관 관계자들은 대책을 강구했으나, 코팅도 되지 않은 작품에서 립스틱 자국만을 지워내기는 매우 어려운 난감한 상황이었다.

유기용매 등을 사용하여 립스틱 자국을 지울 경우, 그림의 해당 부분까지 함께 변색되어 더욱 흉하게 훼손될 우려가 크기 때문이다.

결국에는 미국 항공우주국(NASA)의 연구 결과를 응용하여, 산소원자(O), 즉 분자상태의 산소(O2)로부터 분해된 원자 상태 산소의 높은 반응력으로 립스틱 자국을 떼어내는 방법을 택하였다.

즉 립스틱이 찍힌 캔버스에 산소원자총을 쏘아서, 그림 부분은 그대로 두고 립스틱자국만 산소 원자와 반응시켜 지워낸 것이다.

산화금속이 주성분인 그림은 산소원자와 반응하지 않고, 탄화수소물로 되어있는 립스틱 자국은 산소원자에 의해 이산화탄소, 물 등으로 분해되는 성질을 이용한 것이다.

이런 방법은 예전에 화재로 그을진 미술작품을 복원하는 데에도 이미 활용된 적이 있는데, 원래는 우주 공간에서 자외선에 의해 분해된 산소 원자가 우주선이나 인공위성을 표면부분을 부식시키는 문제에 대한 대책을 찾는 연구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문화재나 예술품의 복원에 첨단기술을 응용한 또 하나의 사례는 미국의 다른 미술관에서도 있었다.

고대의 아시아 미술품은 상당수가 비단(Silk) 천에 그려져 있는데, 천년 이상의 오랜 세월이 지나면서 비단천이 노화되어 구멍이 생기거나 변형되는 일이 생겼다.

새로운 비단 천을 덧대어 수선하면 티가 날 수밖에 없는데, 비단 천에 감마선을 쬐어서 인공적으로 노화시킴으로써, 마치 동시대의 것처럼 감쪽같이 복원했던 것이다.

문화재 복원에는 이밖에도 여러 첨단과학기술들이 동원되는데, 화석이나 오래된 유물 등의 정확한 제작연도를 밝히기 위해 방사성 동위원소에 의한 탄소연대측정법을 사용하는 일은 이제는 일반적이다.

그밖에 분광학에 의한 스펙트럼 분석, 수학적 알고리즘이나 컴퓨터 시뮬레이션, 이미지 프로세싱 등도 문화재의 복원에 자주 이용되고 있다.


비단벌레 날개와 문화재보존 과학기술

문화재보존 과학기술이란 유물이 창작되고 전수된 역사를 역추적해 원형을 복원하고, 복원된 상태를 오래 유지할 수 있도록 보존 처리하는 과학기술이다.

이 일을 하는 사람들은 훼손되거나 상처가 난 유물을 수리하여 복원한다는 점에서 문화재를 치료하는 의사 혹은 옛것을 되살리는 연금술사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문화재보존 과학기술자들이 없었다면 박물관에서 형태와 색상이 온전한 유물과 문화재들을 감상하는 일도 불가능했을 것이다.

이 부문의 전문가들도 유물의 종류에 따라 여러 분야로 나뉘는데,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용산 국립 중앙박물관을 비롯한 각지의 국립박물관에서 약 20여 명의 문화재보존 과학기술자들이 활동하고 있다고 한다.

또한 여러 대학에도 문화재보존학과 등의 관련학과가 설치되어 이 분야에서 일할 인력들을 양성하고 있다.

중요한 가치가 있는 문화재의 보존이나 복원 문제는 위의 미국의 사례들 뿐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심각한 문제로 제기된 적이 있었다. 대표적인 예가 경주에서 발굴된, 비단벌레 날개로 장식된 말안장 가리개이다.

1970년대 경주 황남대총의 발굴조사 과정에서 다른 유물들과 함께 나온 말안장 가리개는 신라왕의 부장품으로서, 형용하기 어려울 정도로 영롱하고 신비로운 빛을 발하고 있었다.

바로 비단벌레의 날개에 의한 것이었는데, 이 색이 금동유물의 빛과 어울러져 최상의 공예품을 이루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 유물을 앞으로도 변형되지 않게 잘 보존하는 일을 그리 쉽지 않다고 한다.

곤충의 일종인 비단벌레의 날개는 빛이 없고 습도가 높았던 왕릉 내부에서는 비교적 잘 보존되어 왔지만, 건조한 상태나 빛에 오래 노출되면 검게 변해버리고 말기 때문이다.

따라서 발굴 직후부터 글리세린 용액에 담가서 빛을 차단하고 적정 온도와 습도를 유지하는 상태로 보관되어 왔고, 일반 공개는 어려운 상황이다.

지난 2010년에 국립경주박물관에서 황남대총 특별전시회를 열었을 때에도, 글리세린 용액에 담긴 상태로 조도를 최소로 줄여서 단 3일간만 일반에 공개한 적이 있다.

비단벌레 날개가 그처럼 영롱한 빛을 발하는 이유는, 날개의 성분 및 구조와 관련이 있다.

비단벌레 날개는 곤충이나 갑각류의 껍질 등을 이루는 키틴(Chitin)질과 단백질로 이루어져 있는데, 수십 개의 사슬 모양의 키틴질 구조체에 단백질 분자가 결합하여 박막을 형성한다.

그런데 박막들이 서로 다른 방향으로 쌓인 적층구조를 이루면서 빛이 반사하는 각도에 따라 다양한 빛깔을 내는 것으로서, 물 위의 얇은 기름막 등이 보는 각도에 따라 빛의 간섭현상에 의해 무지갯빛을 내는 것과 비슷한 원리이다.

또한 비단벌레의 껍데기 층에는 구리, 철과 같은 금속성분이 포함되어 있어서, 이들이 빛과 어울려지면서 더욱 영롱한 색을 내는 것이다.

아쉽게도 비단벌레 날개 유물을 완벽하게 보존하는 방법은 아직도 확립되지 않아서, 미세한 변색조차도 철저히 방지하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

하지만 문화재보존 과학기술자들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니 언젠가는 이 유물의 변색을 완벽하게 막으면서 일반에 공개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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