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러스 엣세이 - 새로운 공해, 지식
플러스 엣세이는 사회저명 인사가 기고한 글입니다.
미국에서 30년 가까이 살다가 돌아온 후에 느낀 공해 중의 하나가 소음공해였다.
조용히 물건을 고를 수 있던 미국 마트에 비하면 즉석할인이라면서 확성기를 이용하여 마구잡이로 질러대는 짜증나는 소음.
아이들을 훈련시키는 장소가 되는 미국 음식점에 비해 어린이 놀이터로 변형된 음식점과 그에 걸맞은 높은 소음.
최근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아파트 층간소음. 그래도 이 경우는 이웃간 심하게 다투어서라도 고쳐보려는 노력이 있기는 하지만….
이토록 공해에 예민해서인지 모르겠지만 내게 최근 새롭게 느껴지는 공해가 있다.
지식공해다. 지식이 왜 공해냐고 묻겠지만 요즘같이 너무나 많은 정보가 반강제적으로 뿌려지고 주입되는 시절이 있었을까?
더 안타까운 것은 유용도가 거의없는 정보를 지식으로 착각하고 그 정보를 접하지 못하면 불안해한다는 것이다.
회사의 중역들은 외국출장을 일주일 다녀오면 지난 주간의 신문(구문)을 읽어야 대화에 참여할 수 있다는 강박관념에 빠져 있다.
몇년전 회의 중 한 사람이 잠시 자리를 비우고 돌아와서 급히 전하는 소식이 유명한 배우의 자살소식이었다.
컴퓨터에서 그 소식을 읽고 온 사람은 매우 중요한 메신저 역할을 한 듯 어깨를 으쓱였지만 회의는 당연히 그 사건을 취조(?)하는 분위기로 흘러가 본 회의 내용과 전혀 관계없는 이야기로 시간을 낭비한 후 끝났다.
인터넷이 발달하고 SNS가 만연하면서 사람들은 너무나 많은 자료와 정보에 시달리면서도 자료와 정보가 어려서부터 믿어온 “아는 것이 힘이다”라는 철칙에 맞추어 지식이라고 착각하면서 혹시나 놓칠세라 시도때도 없이 스마트폰만 바라보며 살고 있다.
연구, 기술에 기반을 두고 살아가는 산업인들이 걸어간 길은 당연히 기술경영에 기준을 둔 길이었다.
그리고 정보화시대에 맞추어 정보경영 또는 지식경영으로 전환되고 있다. 당연히 많은 정보를 습득하는 데 엄청난 자원을 들이고 시간을 할애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정보=지식’이라는 잘못된 공식에 빠져서 읽지못할 줄 알면서도 신간을 먼저 구해서 책상위에 올려놓아야 안심이 되는 심리 속에 살아가며, 저장해 둔 장소도 알지못하게 될 줄 알면서 먼저 Download하는 버릇으로 컴퓨터 디스크 크기만 늘리고 있지는 않을까?
실제로 너무 많은 지식이 너무 적은 지식만큼이나 일을 수행하는 데 걸림돌이 되는 경우가 많다.
“Knowledge is like a DRUG which gives us little until we use it.”
실제로 사용하지 않고 버리는 약으로 인한 화학물 공해가 심각한 것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단편적인 이야기지만 기술을 위하여 자금을 투자하면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는 정설도 한번은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우주선이 개발되던 당시 무중력의 우주공간에서 우주인들은 볼펜으로 글을 쓸 수 없음을 발견하였다.
볼펜 잉크가 흘러내리려면 종이방향으로 중력이 작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미국은 무중력에서 사용할 수 있는 볼펜을 개발하려고 막대한 연구비를 지출하였다. 한편 소련은 아주 간단히 해결하였다. 연필로 쓰면 되지….
지식이 공해라고 느껴지는 작금의 최첨단 시대는 경영체계도 지식경영(Knowledge Management)이 아닌 지혜경영(Wisdom Management)으로 바꾸어야 할 때이다.
그러면 경영의 차원에서 지혜는 무엇일까?
지혜는 오랜 기간 테스트를 통하여 많은 사람들이 인정하는 선택을 할 수 있는 능력이고 또한 의지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지혜경영이란 고상한 가치에 근거를 둔 결정에 의하여 행동에 옮기거나 또는 의도적으로 행동을 취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즉 지혜경영은 정보가 충분치 않더라도 습득한 정보를 사용하여 미래에 광범위하게 혜택을 주는 비전에 바탕을 둔 결정을 이루어나가는 경영이라고 할 수 있다.
몇년전 CTO클럽에서 미국 IBM社의 미래전략 담당 최고부사장의 강연을 들은 적이 있다.
최근 유행하는 Innovation이 그 주제였는데, 마침 그 전주에 전세계에 충격을 준 미국발 금융위기(서브프라임 모기지론 사태)가 발생하였다.
질문시간에 나는 금융위기를 보면서 추구하여야 할 변화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그 분의 대답은 “자신도 몇 금융기관의 사외이사의 한 사람으로서 책임을 느낀다. 그리고 이런 위기는 많은 데이터를 수집하고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예측하여 방지할 수 있었을 것이다.”라는 것이었다.
평생을 컴퓨터회사에서 일한 후 은퇴를 앞둔 사람으로서 당연한 대답인지 모르겠지만 내게는 실망스러운 대답이었다.
그 당시 주택대출을 무리하게 진행하고 있었던 사실은 누구나 다 아는 일이었고 이것은 개인의 탐욕과 이를 부추기는 음흉하다고 표현할 수밖에 없는 금융계의 경영방식에 근거를 두고 있었다.
또한 이러한 경영방식은 각 분기마다 전형적인 계량방식으로 평가를 하는 월스트리트의 독재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현재 사회의 양상에 기인한다.
이러한 인간의 탐욕과 음흉함을 수치로 계량화하겠다는 지식경영의 폐단으로 발생한 사건이 금융위기이지 컴퓨터로 계산하여 예측하고 방지할 수 있는 사건이 아니었다.
즉 이야말로 각 분기별로 정해진 수적목표를 채우기 위해 급급한 지식경영이 아닌 미래의 혜택을 위한 지혜경영의 필요성을 확실히 드러내는 사건이었다. 이토록 지혜경영은 한 기업체, 산업군 나아가서 한 국가의 경영에도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왜 정보, 지식의 축적이 지혜경영으로 발전되지 않을까? 우리가 전통적으로 인식하여 왔던 ‘데이터 ⇨ 정보 ⇨ 지식 ⇨ 지혜’의 4단계가 각 단계의 수량만 어느 정도 축적되면 당연히 다음 단계로 진전된다고 하는 수식은 기본적으로 잘못된 인식이다.
왜냐하면 이 4단계는 비례적으로 연결되어 있지 않으며, 정보가 지식이 되려면 비약적인 점프를 해야 하고 또 지식이 지혜가 되려면 더욱 큰 점프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지식과 기술을 이용하여 성과를 이루는 일과 지혜롭게 옳은 성과를 이루는 것은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다.
왜냐하면 지혜로운 결정은 시간적으로 현재보다 먼 미래의 가치를 추구하며 나아가서 공간적으로 나 자신과 우리 단체의 이익을 넘어 훨씬 더넓은 범위의 이익을 추구하는 데 그 목적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신약을 만드는 기술을 이용하여 삶의 기로에 서있는 환자를 위한 약을 만드는 일은 숭고한 일이다.
그러나 이때 생긴 기술을 악용하여 마약을 만들어 이익을 추구한다면 이는 지혜롭지 못한 사업이며 잘못된 결정이다.
이토록 지혜경영은 가치기준에 근거를 둔 결단력을 필요로 하며 더욱 중요한 것은 옳은 일을 위한 결단력을 실천하는 일이다.
그렇다면 지혜경영의 어디서부터 시작하여야 할까?
우선은 앞에서 언급한대로 숭고한 가치창출이 가장 근본이 되어야 한다는 결단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많은 정보, 지식에서 자신에게 적절한 것을 선택하고 무엇보다 자신의 것으로 소화시키고 변형해야 한다.
타인의 게임플랜으로 자신의 게임을 진행하는 것만큼이나 어리석은 일은 없고 또한 계획과정이나 실천과정에서의 만족도도 미미할 것이다.
가능한 빠른 시간내에 내 자신의 비전, 내 자신의 게임 플랜, 내 자신의 실천방안과 나의 고유한 방법으로 실행하는 일이 지혜경영의 시작이라고 생각된다.
이러한 일이 시작되려면 유행하는 표현의 차원이 아닌 진정한 실천을 가져올 창의력이 절실히 필요하며 지식수집보다 월등히 많은 시간과 정열을 창의력 향상에 투자하여야 한다.
또한 자그마한 결정도 보다 넓고 먼 미래를 바라보는 현안을 적용하여야 한다.
공해라고 느껴질 만큼 넘쳐흐르는 정보, 지식의 시대인 현대에 개인의 삶에서나 기업의 운영에서 진실로 필요한 것은 숭고한 가치를 가져올 미래를 바라볼 수 있는 지혜경영이다.
“Wisdom is the power that enables us to use our knowledge for the benefit of ourselves and others.”
- Thomas J. Wats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