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vie in Tech - 고대 이집트의 과학기술 <엑소더스>
글_ 최성우 과학평론가 I 사진출처_ 네이버영화(http://movie.naver.com)
MOVIE IN TECH에서는 영화 속에서 펼쳐지는 다양하고 흥미로운 과학기술에 대해 알아봅니다.
리들리 스콧 감독의 새 영화 ‘엑소더스: 신들과 왕들(Exodus: Gods and Kings)이 최근 국내외에서 개봉되었다.
모세의 출애굽기를 소재로 한 영화로서, 기원전 1300년전 고대 이집트의 모습을 화려하게 재현하였다는 평가를 받은 바 있다.
이 영화를 계기로 하여 고대 이집트의 과학 기술을 조명해 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듯하다.
고대 이집트의 기하학과 태양력
이집트 하면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피라미드’를 먼저 떠올리게 된다. 영화에도 피라미드를 비롯한 고대 이집트의 여러 건축물들이 등장하지만, 이처럼 거대한 건축물들을 세우려면 기하학, 수학 지식이 반드시 필요할 수밖에 없다.
학계에서는 체계적인 학문으로서 과학과 철학의 시작을 고대 그리스시대부터로 간주하지만, 그보다 훨씬 앞선 이집트 시대에도 실용적인 기하학, 수학 지식과 관련 기술이 상당한 수준이었던 것으로 보고 있다.
피라미드 건설에 필요했던 기하학 지식 등이 고대 이집트에서 일찍이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나일강과 관련이 있다.
즉 정기적으로 나일강이 범람한 이후에 경작지 등을 복구하고 경계선을 확실하게 하려면, 측량 기술과 기하학이 필요하게 된다.
또한 나일강의 범람 시기를 정확히 예측하기 위하여 천문학과 달력 역시 발달하게 되었던 것이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작도법을 이용해 피라미드를 세울 땅에 정확하게 정사각형을 그렸고, 그 결과 피라미드의 네 변의 길이를 거의 일치시키고 밑면 사각형의 네 각 또한 거의 오차가 없는 90°로 맞추었다.
고대 이집트의 높은 기하학 지식은 원주율의 계산에서도 나타나는데, 기원전 약 1700년 전에 기록되었을 것으로 추측되는 고대 이집트의 책 ‘린드 파피루스’에는 “원의 넓이를 구하려면, 지름의 9분의 1을 뺀 후 그것을 제곱한다.”라고 되어 있다.
이 방식을 따라서 계산하면 원주율이 약 3.16049…가 되는 셈인데, 현재의 원주율 값 π=3.1415926…과 비교해도 오차가 그리 크지 않은 비교적 정확한 값이라 할 수 있다.
우리가 오늘날 쓰는 달력 또한 고대 이집트의 태양력에서 유래된 것이라 할 수 있다.
현대의 달력, 이른바 그레고리우스력은 1582년에 로마교황 그레고리우스(Gregorius) 13세가 기존의 율리우스 달력을 교정하여 만든 것이지만, 그 율리우스 달력이란 바로 고대 로마의 통치자 율리우스 카이사르(Julius Caesar)가 이집트 정벌을 나갔을 때 이집트 사람들의 편리한 태양력을 알고서 이를 본떠서 만든 것이었다.
고대 이집트 사람들도 처음에는 달의 운행만을 고려한 태음력을 사용하였으나, 시리우스 별의 음직임과 나일강의 범람 관계를 관찰하면서 태양력을 창안하게 되었다.
즉 행성을 제외한 별들 가운데 가장 밝은 시리우스가 언제 떠오르느냐가 계절과 관련이 있음을 알았고, 태양이 떠오르기 직전에 시리우스가 동쪽 지평선에 나타나면 곧 나일강의 범람이 시작된다는 것과 또한 365일이 지나면 같은 현상이 반복된다는 사실도 알게되어, 결국은 태양력이 만들어지게 된 것이다.
파피루스와 미라
영화에서도 종이에 상형문자 등을 기록하는 장면이 여러 번 나오는데, 이때 쓰인 고대 이집트의 종이가 바로 파피루스(Papyrus)이자 바로 영어 페이퍼(Paper)의 어원이기도 하다.
파피루스는 원래 나일강가에서 자라던 풀인데, 키가 2~5m 정도 되는 갈대의 일종으로서, 나일강의 홍수와 수위의 변화에 잘 적응하면서 자란 식물이었다.
파피루스 종이를 만드는 법은 로마의 박물학자 플리니우스에 의해 기록되어 있는데, 그에 따르면 “이집트인들은 파피루스의 줄기를 짧게 잘라 껍질을 벗긴 다음 고갱이를 세로로 얇게 깎은 다음에, 나일강의 흙탕물에 담갔다가 대 위에 올려놓고 천으로 덮은 채, 나무망치로 두드리고 말려서 종이를 만들어내었다.”고 되어있다.
나일강의 흙탕물에 포함된 끈끈한 성분이 끊어진 줄기를 이어주는 접착제 역할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파피루스는 단순히 옛 종이에만 그치지 않고, 오늘날의 첨단과학기술에도 시사하는 바가 있다.
영국의 과학자들은 원자력 폐기물 관련 문서를 몇 세대를 넘어서 아주 오래 보관할 방법을 찾다가, 이집트의 파피루스에서 단서를 찾았다고 한다.
즉 수천 년 동안 읽을 수 있는 상태로 보존된 파피루스와 유사한 조건에서 보관하도록 하는 ‘영구적인 종이’를 개발한다는 것이었다.
고대 이집트 문명의 또 하나의 상징 중 하나인 미라 역시 오늘날에도 새롭게 살펴볼만한 부분들이 적지 않다.
영화에서도 람세스 2세의 부왕과 어린 아들이 죽은 후에 미라 형태가 되는 장면들이 잠시 나오는데, 물론 시신 전체를 완벽하게 방부처리하지는 못했지만 수천년 이상 보존된 것은 놀라운 수준의 고대 과학기술이라 할 것이다.
고대 이집트의 미라를 가능하게 한 것은 탄산나트륨과 염화나트륨이 결합된 물질인 소다석으로서, 뛰어난 수분 흡수효과를 가지고 있다.
또한 송진과 여러 첨가물을 혼합한 유약도 미라 제작에 중요한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이는데, 정확한 성분은 오늘날에도 온전히 밝혀내기가 쉽지 않다.
미라 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이 고대 이집트의 소년왕이었던 투탕카멘인데, 황금가면으로만 알려진 그의 진짜 얼굴 모습을 복원하는 기술이 최근 개발된 바 있다.
즉 머리뼈를 컴퓨터로 단층촬영(CT) 한 후에, 3차원 영상으로 재구성하여 피부를 씌우는 기법이다.
법의학자와 조각가, 컴퓨터공학자 등의 지식과 협조가 필요하기도 한데, 이러한 얼굴 복원술은 원래 범죄수사에서 많이 쓰이는 기법이었다.
즉 신원 미상의 시체가 누구의 것인지 유전자 검사 등으로도 알아내기 어려운 경우 최후의 수단으로 이 방법이 시행되는데, 미국의 경우 미제 사건의 약 60~70%가 이를 통하여 해결되었다고 한다.
이외에도 여러 일상적 과학기술들이 고대 이집트로부터 시작되거나 존재하였는데, 접착제, 염료, 피임법 등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접착제 역사는 3300년 전 이집트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두 물체 사이에 송진이나 식물의 액체 성분을 넣어두면 재료가 붙는다는 것을 발견한 것이 접착제의 시초라고 볼 수 있다.
B.C. 2000여년 경 이집트 테베고분에서 미라를 싼 남색천과 잇꽃을 이용한 황색천이 발견된 것은 아주 오래된 식물염료의 사용 예이며, B.C. 1400∼1200년으로 추정되는 아멘 호테프 4세와 람세스 2세의 고분에서도 여러 색의 염색문직물이 발굴된 바 있다.
이렇듯 고대 이집트의 과학기술은 실용적인 측면에서 상당한 수준에 이른 것들이 많아서, 오늘날에도 다시 조명할 가치가 크다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