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기술경영인인터뷰

특별 인터뷰 - (주)동진쎄미켐 이부섭 회장

글_ 정라희(자유기고가)
사진_ 박동희(라운드테이블 이미지컴퍼니)

과학기술의 과거와 오늘
그리고 미래와 동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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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산업의 기반이 되는 기술이 있다. 그것은 바로 ‘소재’다. (주)동진쎄미켐은 차별화된 소재기술로 전자재료산업의 토털 솔루션을 제공하는 기업이다.

1967년 서울 연희동에서 시작한 작은 회사는 50년에 가까운 세월동안 국내외 정밀화학업계의 개척자로 성장해왔다.

긴 역사를 지나오며 발포제부터 전자재료 화학 분야에 이르는 핵심기술을 개발해온 (주)동진쎄미켐에서 이부섭 회장을 만났다.

더욱이 이부섭 회장은 3월 중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회장에 취임하게 되어 이 만남이 더 의미가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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ㅣ혼란기를 딛고 펼쳐낸 남다른 기술

동진쎄미켐이 걸어온 지난 역사는 우리나라 소재기술 역사와 맥을 같이 한다.

발포제 사업으로 시작해 반도체와 LCD등의 첨단 소재 산업에 뛰어든 동진쎄미켐은 이제 미국과 일본 등의 선발주자를 제치고 전자소재산업의 선두기업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런 동진쎄미켐의 역사 속에는 창업자인 이부섭 회장이 있다. 이 회장은 한국전쟁 직후 혼란한 시절에 서울대 화학공학과에 진학한 수재였다.
 
두 차례의 직장생활을 거쳐 이 회장이 선택한 새로운 도전은 다름 아닌 창업. 연희동 자택 뒤에 있던 연탄광에 실험실을 만들어 플라스틱 원료인 폴리스타일렌(Polystyrene) 소재 개발에 나섰다.

비록 열악한 환경에서 사업을 시작했지만, 폴리스타일렌은 칫솔이나 그릇 등을 만드는 데 여러모로 활용도가 높은 소재였기에 출발은 순조로웠다. 생활용품이 부족하던 시절이었기에 수요는 충분했다. 만들기만 하면 그야말로 ‘날개돋친 듯’ 소재를 판매할 수 있었다.

“소재를 만드는 게 힘들었지, 파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습니다. 물품이 없어서 못 팔던 시절이었으니까요. 당시에는 물건을 수입하려고 해도 미국에서 원조하는 자금 외에는 달러가 없었어요. 그만큼 나라 전체가 풍족하지 못했습니다.”

많은 위험을 감수하고 시작한 사업. 그러나 핑크빛 전망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해당 원료에 대한 관세정책의 변화로 제품을 생산할수록 손해를 볼 수밖에 없었던 것.

하지만 이 회장은 거기서 주저앉지 않았다. 당시 전량 수입되던 발포제 개발에 나서 국산화에 성공했다. 연구개발 과정은 녹록하지 않았지만 동진쎄미켐이 만든 발포제는 1972년에 첫 수출까지 이뤄내며 품질을 인정받았다.

그러나 이후로도 크고 작은 위기는 닥쳐왔다. 1978년 말 발생한 2차 오일쇼크 여파를 비롯해 1980년에는 부도위기까지 처했지만, 이 대표는 다시금 도전을 시작했다. 1983년부터 새로운 사업으로 반도체 관련소재 산업에 첫발을 디딘 것이다.

“2차 오일쇼크가 터지면서 우리나라 기업들의 체질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인건비 위주의 사업이 아닌 진짜 기술을 바탕으로 한 산업이 시작된 것이죠. 그래서 신발이나 가발, 봉제 등의 사업은 모두 인건비가 낮은 국외로 나갔습니다. 1980년대 중반이후부터는 중화학공업에 초점이 맞춰졌죠.”

당시 우리나라는 반도체산업이 막 꽃이 피던 시기. 아울러 반도체에 적용되는 감광성수지에 대한 수요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반도체용 감광액(Photoresist)은 수많은 반도체 회로의 미세한 패턴을 형성하기 위해 실리콘 결정체인 웨이퍼 위에 도포하는 것.
 
특히 감광성수지는 이 회장이 대학원 졸업논문으로 제출한 분야였다.

자신의 전문분야에서 사업성을 발견한 이 회장은 발포제로 번 수익을 모두 감광성수지 연구개발에 쏟아부었고, 이를 통해 독자적인 기술과 노하우를 습득할 수 있었다. 그 결과 동진쎄미켐은 세계에서 네번째로 반도체용 감광액을 개발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국내에서는 최초였다.


ㅣ자신만의 경쟁력으로 승부 건 히든챔피언

동진쎄미켐은 발포제 분야에서 쌓아온 기술력을 바탕으로 새로운 사업에 투자해 달콤한 결실을 맺었다. 1995년에는 발안공장을 준공해 수입에만 의존하던 반도체 재료의 국산화를 선도했다.

한편으로 1992년에는 인도네시아에 해외 생산공장을 설립하고. 1999년에 이르러서는 대만에 현지법인을 설립했다.

본격적인 글로벌 시장에 대한 공략이 시작된 것이다. 2001년에는 대만공장을, 2004년에는 북경공장을 각각 준공하고, 2007년에는 상해공장을 착공했다. 지금은 국내 6곳을 비롯해 중국에만 8개의 공장을 두고 있다.

현재 동진쎄미켐은 반도체 및 FPD(Flat Panel Display)용 재료를 비롯해 대체에너지용 재료와 발포제 등을 제조하고 있다.

동진쎄미켐에서 제조하는 소재들은 감광액이나 난방사방지액(BARC), 연마제(CMP Slurry) 등 전자소재의 첨단화와 집적화에 이바지하는 화학공정 재료들이다.

동진쎄미켐은 반도체나 FPD 생산공정에서 필수적으로 사용하는 모든 재료들을 자체 기술로 개발, 생산하고 있다. 이는 세계적으로 보기드문 경우다.

한편으로 동진쎄미켐의 발포제 생산능력은 연간 3만톤을 웃돈다. 발포제 부문의 세계시장 점유율 역시 35% 가량. 해당분야에서 명실공히 세계 1위로 부상한 동진쎄미켐은 자체브랜드 수출을 통해 세계각국에 자신의 이름을 널리 알리고 있다.

‘작지만 강하다’는 표현을 사용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히든챔피언’인 셈이다. 동진쎄미켐은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려는 노력도 멈추지 않는다.
 
친환경 대체에너지 사업이 바로 그것. 많은 산업이 의존하고 있는 원료자원인 석유의 고갈신호가 일찌감치 떨어진 지금, 석유를 대신해 생활에 사용할 새로운 에너지를 개발하고 있는 것이다.

“동진쎄미켐은 전자재료 분야에서 쌓아온 기술력을 바탕으로 차세대 대체에너지로 연료전지와 태양전지 분야에 집중 투자하고 있습니다. 고성능 연료전지를 구현하는 촉매기술, 전해질 기술을 비롯해 전극 제작기술을 바탕으로 하는 고성능 MEA 제조기술을 확보했습니다.”

MEA는 연료전지의 핵심부품 중 하나. 또한 동진쎄미켐은 실리콘 태양전지에 사용하는 솔라셀 페이스트(Solar Cell Paste)와 차세대 염료감응 태양전지(Dye Sensitized Solar Cell)용 고효율 염료개발에 성공해 이를 사업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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ㅣ우리 과학기술의 미래에 동참하다

이처럼 긴 세월 우리나라 과학기술의 동행자로 살아온 이부섭 회장은 올해 3월부터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회장직을 수행한다. 이 회장은 지난해 선출을 마치고 1년간 임기를 준비해왔다.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과총)가 처음 출범한 것이 지난 1966년입니다. 그 역사가 벌써 48년이 됐습니다. 1966년은 우리나라 경제개발이 시작하기도 전입니다. 그런 상태에서 이런 연합회를 구성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제 앞으로 수많은 선배 회장님들이 계셔서 초창기에 어려운 일은 도맡아하셨지요. 아무래도 저는 그 토대 위에서 임기를 시작하는 것이니, 아무래도 부담이 덜합니다.”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는 500만 과학기술인을 대표하는 과학기술단체의 대표기관. 현재 700여개에 이르는 단체가 과총에 소속되어 있다.

이부섭 회장의 과총 회장 선출은 산업계에서도 의미가 있다. 산업계 인사로는 두번째로 회장직이지만, 중견기업 대표로서는 처음으로 회장에 선출된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까지는 주로 교수 등 학계인사들이 회장직을 주로 수행해왔습니다. 중견기업인 동진쎄미켐이 우리나라 과학기술인들의 본산인 과총의 회장이 됐다는 건 어찌보면 이변이지요. 앞으로 과학기술인들이 한 목소리를 내는 데 기여하고 싶습니다.”

우리나라 산업과 과학기술의 발전과 오랜 기간 동행해 온 장본인이기 때문일까.

이 대표는 현재 사회적으로 우리 과학이 처한 어려움과 한계 등에 대해서도 분명하게 지적한다. 이를 임기 중 조금이라도 개선하기 위해 앞으로 할 일에 대한 밑그림도 이미 그려두었다.

“일반적으로는 과학이 발달함에 따라 산업이 성장합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반대였어요. 차관에 의해 기술도 자본도 들여왔죠. 사실상 과학이란 바탕이 미비했습니다. 외국에서 사온 기술을 밑거름으로 산업기술을 만들어갔죠. 그런데도 반세기만에 기술수준을 높여서 세계 경제대국 10위권 안에 들어갔습니다. 그렇지만 이제는 생각을 달리할 때입니다. 기초기술은 일본이 우리보다 2~3세대 앞서가고 있고, 산업기술은 이제 중국이 거의 우리를 따라잡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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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과학기술의 경쟁력을 다지기 위해 이 회장이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은 바로 교육이다.

미래를 이끌어갈 인재들이 어린 시절부터 과학에 관심을 지닐 수 있도록 전반적인 분위기를 형성하는 것이다.
 
아울러 과학기술인들이 조금 더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정부 예산에만 의존하지 않는 경제적 자립을 위한 방안도 고민하려 한다.

앞으로 우리나라 과학기술이 맞이할 미래에, 이 회장의 생각이 소중한 씨앗이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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