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ISSUE 02

특별기획 - 혁신 연구 체제의 구축, DARPA로부터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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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RPA는 국가 차원의 과학, 기술적 우위를 유지, 강화할 목적으로 1958년에 설립된 미국 국방부 산하의 혁신 연구 지원 조직이다.

DARPA는 설립 이후 줄곧 선도적으로 주요 미래 이슈를 발굴하고, 이에 대한 솔루션 마련을 위해 학계의 기초 연구 역량과 기업의 개발 역량을 잇는 가교 역할에 집중해 왔다.

그 결과 오늘날 DARPA는 미국의 혁신 연구 생태계에서 정부, 기업, 대학간의 정보와 인적 네트워크를 연결하는 허브(Hub)이자 혁신, 융복합 연구의 산실로 인정받고 있다.

50년 이상 지속되고 있는 DARPA의 역사와 성과들은 혁신 연구 생태계 내에서 DARPA 방식의 연구 활동과 조직 운영이 성공적으로 작용해 왔음을 보여준다.
 
최근 창조 경제, 시장 선도를 위해 기존의 추격형 연구, 개발 체제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연구, 개발 역량의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이 같은 배경을 바탕으로 현 시점에서 우리나라에도 DARPA 방식의 연구 체제를 접목하는 방안을 모색해 볼 가치는 매우 커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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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적 연구 체제의 도입이 필요한 시점

혁신이 중요하지 않은 시기는 없었지만, 최근 우리나라에서는 혁신적, 창의적 R&D에 대한 관심이 더욱 커지고 있다.

기업 차원에서든 국가 차원에서든, 더욱 격화되고 있는 경쟁을 극복하기 위해 혁신적인 제품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시장 선도 역량과 지속 성장의 발판이 될 신성장 동력의 확보가 최대 이슈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래서 선두에 있는 경쟁자를 모방하고 추격하던 기존의 연구 · 개발 활동과 다른,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연구 및 개발 역량의 확보가 필요하다는 점에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이런 현상은 우리나라가 한 단계 더 도약할 수 있는 기반 마련을 위해 무척 고무적이라 할 수 있다.

과학 기술의 진보 순서상, 우리나라는 선진국의 역순으로 발전해 왔으므로 과학 기술의 기반이 상대적으로 약하다고 평가되기 때문이다.

거시적 관점의 과학 발전 이론인 기술 혁신의 선형 모형(Linear Model of Innovation)에 따르면, 한 국가의 과학적 진보는 기초 연구(Basic Research), 응용 연구(Applied Research), 개발(Development)의 순으로 이루어진다.

R&D도 속성에 따라 Low Risk, Low Return을 기대하는 점진적인 R&D(Incremental R&D)와 High Risk, High Return을 추구하는 혁신적인 R&D(Radical R&D)로 나눌 수 있다.

이러한 선형 모형의 순서대로 발전해 온 선진국들과 비교하면, 우리나라는 Low Risk, Low Return을 목표로 한 점진적인 Development 중심의 과학 기술 토대를 갖췄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예상을 뛰어넘는 성과를 기대할 수 있는 혁신적 연구(Radical Research)의 기반은 상대적으로 빈약하다고 할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50년 이상 지속적으로 혁신적 연구에 집중해서 훌륭한 성과를 창출해 온 미국의 DARPA(국방고등기획국, Defense Advanced Research Projects Agency)는 좋은 본보기가 된다.

미래 이슈를 선도적으로 발굴하고, 대응책 마련을 위해 학계의 기초 연구, 기반 기술과 산업계의 개발 역량을 연결시킴으로써 국가 경쟁력 강화의 중추적 역할을 성공적으로 수행해 오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DARPA는 정부와 기업, 학계 간의 역할 분담과 협업을 통해 어떻게 혁신적이고 융복합적인 성과01를 창출할 수 있는지 잘 보여주는 생생한 사례이기도 하다.


DARPA는 미국 과학 기술 경쟁력의 기반

제2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과학 기술의 중요성을 절감한 미국 정부는 1950년대에 국가 전략적 차원의 임무 지향적인 과학 기술 정책을 수립했다.

정책의 이론적 기반은 기술 혁신의 선형 모형(Linear Model of Innovation)이었다.

그래서 국가의 임무 수행에 필요한 과학 연구(Research)는 정부가 주도하고 연구의 결과를 넘겨받은 기업은 개발(Development)에 전념하는 식으로 정부와 기업간의 역할 분담 및 협력 관계를 구축했다.

이런 정책적 기조에 맞춰 NSF(National Science Foundation, 국립과학재단), NASA(National Aeronautics and Space Administration, 항공우주국) 등 많은 국가 연구 기관들도 이 무렵에 설립되었다.

당시 국가의 최대 임무는 국방이었으므로 자연스럽게 임무 수행을 위한 연구 기관은 국방부 산하에 두게 되었다.

그러나 그 조직은 연구의 창의성을 극대화할 수 있도록 관료의 간섭을 최소화시킨 독립적인 운영 체제를 갖도록 했다.

그리고 학계의 기초 연구(Basic Research) 역량과 기업의 개발(Development) 역량을 효과적으로 결부시키기 위해 외부 인력들이 수행하는 연구 과제를 지원, 독려하는 역할을 맡도록 했다.

그 결과 1958년 ARPA(Advanced Research Projects Agency, 이후 DARPA로 개명)가 설립되었다.

설립 당시부터 지금까지 변함없는 DARPA의 설립 목적은 혁신적 연구(Radical Research)를 통해 타국으로부터의 기술적 충격을 방지하는 동시에 국가 경쟁력의 기반인 미국의 과학 기술적 우위를 유지, 강화하는 것으로 규정되어 있다.


학계와 산업계를 잇는 허브로 작용

DARPA는 미국의 과학 기술 연구 생태계에서도 독특한 조직이다.

학문 분야별 기초 연구(Basic Research)의 수행 및 지원을 담당하는 NSF나 NIH(National Institute of Health, 국립보건원) 등과 달리 혁신적이고 융복합적인 연구에 주력하기 때문이다.

또 명칭에서 드러나듯 DARPA는 직접 연구, 개발하는 조직이 아니다.

연구 과제를 선정하고, 필요한 자금과 정보 · 인력 교류 등을 지원해서 연구가 잘 진행되도록 독려하는 연구 지원 기관이다.

그래서 자체 연구 시설과 인력은 보유하지 않고 있다.

업무 방식 또한 과제 선정에서부터 연구 진행의 전 과정에 걸쳐 여타 연구 기관과 확연하게 다르다.

먼저 DARPA는 오직 그들만이 다룰 수 있는 영역(DARPA-Hard Niche), 즉 혁신적이고, 국가 경쟁력 강화에 필요하지만 실패 위험성도 큰 연구만을 지원한다.

아주 중요하지만 사업성, 자금 부담 등의 문제로 기업, 대학 등 민간 부문에서 감당하기 힘든 과제들을 다루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영역의 연구 과제들 중에서도 목전에 닥친 현안이 아닌, 다가올 미래에 중요해 질 이슈들을 선도적으로 발굴하고 대응 방안을 탐색한다.(< 그림 >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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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 연구 결과의 수준도 이론 단계를 넘어선 기술적, 실증적인 구현에 두고 있어서 대학, 민간 연구소, 기업의 풍부한 전문 인력들과 설비들을 연구 프로그램에 참여시켜 활용한다.

결국 정보, 인적 자원 및 각종 역량 등의 측면에서 산학간의 간극을 잇는 가교 역할을 함으로써 학계의 기초 연구, 기반 기술과 기업의 사업화 역량을 접목시켜 융복합적인 첨단 기술의 실용화를 추진하는 것이다.


IT, 항공 등 다양한 분야에서 꾸준히 혁신적 성과 창출

DARPA의 연구 결과들은 민간 기업들이나 방위산업체를 통해 다양한 사업으로 발전해 오고 있다.

민간 분야에서 많은 사람들이 익숙하게 사용하고 있는 인터넷, World Wide Web 시스템, Google Maps, GPS, 아이폰의 Siri, PACS(디지털 의료 영상 전송 시스템), Digital X-Ray 등의 IT 기술, 제품들은 DARPA의 연구 과제를 통해 사업화된 것들이다.

스텔스 항공기, 무인 항공기, 무인 자동차, 우주 탐사용 Saturn 로켓 등 군사 분야에 사용되는 각종 첨단 기술, 부품 등도 모두 DARPA의 연구를 통해 상용화됐다.02


혁신적 연구에 최적화된 조직 운영

DARPA가 타 연구 기관들에 비해 확연하게 다른 특징은 연구 과제의 발굴, 조직 운영, 연구의 지향점이란 세 가지 측면에서 잘 드러난다.03

첫째, 연구 과제의 발굴 측면에서는, 독자적이고 창의적으로 미래의 이슈를 발굴하고 대응 방안을 연구한다는 점이다.
 
제대로 된 질문에서 정확한 답이 나오듯이 연구 과제의 핵심 질문이 되는 미래의 주요 이슈 발굴을 중요시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다양한 분야에 속한 고위 관료, 군 장성 및 민간 과학 기술 전문가들의 의견을 다각도로 수집하는 등, 연구 과제로서의 가치를 가진 중요한 미래 이슈의 발굴에 상당한 노력을 기울인다.

둘째, 위험을 충분히 감수할 수 있을 만큼 작고 민첩한 조직으로 운영한다는 점이다.

혁신적인 연구는 기대 효과만큼 실패의 위험성도 크므로 손실을 감내할 수 있을 만큼의 규모로 운영한다는 것이다.
 
셋째, 아이디어 주도적이고 결과 지향적인 연구를 추구한다는 점이다.

혁신적인 연구는 참신한 아이디어에서 출발한다는 전제를 바탕으로 항상 외부의 다양한 인재 중에서 연구 프로그램의 담당자(Program Manager)를 선정하고, 이들에게 예산 집행권과 의사 결정권 등을 포함한 최대한의 자율성과 융통성을 부여한다.

모든 연구 프로그램을 외부 인사에게 전담시키는 독특한 제도는 창의성과 혁신성을 중시하는 DARPA의 운영 철학에 기인한다.

전문가 집단은 혁신적 연구의 독창성을 이해하기 힘들고, 문제의 핵심을 잘 아는 전문가가 담당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보는 것이다.

DARPA의 자료에서 언급된 More Fundamentally, surprise rarely comes from groupthink.라는 표현은 이 같은 시각을 잘 보여준다.04

또한 연구 결과의 수준은 이론적인 보고서가 아닌, 기술적 시현(Demonstration that an idea is technically feasible) 또는 개념 증명(Proof of Concept) 단계까지 달성하도록 요구된다.(< 박스 기사 >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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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프로그램 담당자(PM)로는 이론적 지식뿐 아니라 개발(Development) 및 상용화 역량까지 갖춘 인재를 선호한다.

물론 DARPA 방식의 연구 활동이 모든 사람들로부터 찬사만 받아왔던 것은 아니다.

너무 현실성 없는 연구를 지원한다고 보는 사람들은 장난감 가게(Toy Shop), 취미 용품 가게(Hobby Shop)라고 비꼬기도 한다.

때로는 무질서하고 방만한 예산 운용 등의 우려를 낳기도 했다.

그러나 설립 이후 50년 넘게 독립성을 보장받고 자율적인 의사 결정 체제를 꾸준히 유지해 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혁신적 연구 분야에서 거둬온 DARPA의 성과를 인정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미국 정부는 2000년대 들어 동일한 업무 방식의 연구 조직들을 에너지부(ARPA-E), 국토안보부(HSARPA), ODNI(IARPR) 등 여러 정부 부처에 추가로 설치했다.


DARPA 방식 연구의 성공 요인

혁신적 연구 분야에서 DARPA 방식이 차별적인 성과를 거둘 수 있었던 주요인은 연구 영역의 설정, 조직 운영 방침, 외부 인재의 활용 등 세 가지로 해석할 수 있다.

첫째, 연구 영역을 임무 지향적으로 설정한 점이다.

임무 달성을 위해 학문 분야를 가리지 않고 필요 자원을 동원했고, 연구 목표도 기술적 시현 수준까지 요구되었다.

만일 연구 영역을 학문 분야별로 설정했다면 융복합적 연구 과제를 추진하기는 곤란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결과물도 기초 연구 수준에 머물렀을 가능성이 크다.

둘째, ‘임무에 의한 선도(Leading by task)’란 지휘 방식을 연구 활동에 잘 접목했던 점이다.

이를 통해 연구의 창의성과 혁신성을 극대화할 수 있었다.

이것은 인재 활용에 있어서 뛰어난 리더십을 발휘했던 미 육군 참모총장 조지 마샬의 지휘 방식이다.

임무에 의한 선도란, 목표는 고위층(Top)의 의견을 통해 포괄적인 의제로 설정하되, 수행 자체는 유능한 실무진(Down)이 추진하게 하는 것이다.
 
한 마디로 과제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이 일체의 권한과 책임을 모두 갖게 해서 고도의 효율성을 추구하는 것이다.

융통성 있는 린(Lean) 조직 구조의 채택이라든지, 중간 관리층과 관료의 간섭 배제도 모두 같은 맥락이라고 볼 수 있다.
 
셋째, 외부의 인재를 적극 활용한 점이다.
 
참신한 아이디어의 도입을 위해 내부의 고인 물이 아닌 외부 인력의 참여와 교체가 필수적이라고 본 것이다.

그래서 외부 인력의 적극적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안보 문제 등 부득이한 경우를 제외한 대부분의 연구 결과를 참여 인력들이 벤처 창업 등에 활용할 수 있도록 문호를 대폭 개방하기도 했다.


혁신적 연구를 담당할 유사한 방식의
체제 도입을 검토할 필요


혁신적 연구의 활성화를 위해 우리나라도 DARPA 방식의 도입을 적극 검토해 볼 가치가 커 보인다.

높은 실패 우려 등 현실적인 면을 감안하면, 혁신적 연구는 기업, 대학 등 민간 분야에서 추진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또 기존의 연구 기관들은 대부분 학문 분야별 기초과학 연구조직이므로 융복합적이면서 개발 과정까지 연계할 수 있는 과제의 수행에는 다소 적합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DARPA 방식을 잘 활용하려면 그 한계도 명확하게 인식해야 한다.

가장 중요한 점은 모든 기초 연구를 대체할 수 있는 방안이 아니라는 것이다.
 
또 조직의 목표와 연구 영역을 명확하게 설정해야 한다.

예를 들어, 미국이 국가 임무의 최우선 분야인 국방에 초점을 맞췄듯이, 우리의 실정에 맞춰 보건, 재난 대응, 해양/극지/우주 탐사 등도 연구 영역의 후보군으로 고려해 볼 수 있다.

어떤 분야이든 우리나라의 국가 전략적 방향에 부합하는 연구 영역을 정해야 한다.
 
그래야 본연의 목적인 국가 경쟁력 강화뿐 아니라 예산 확보부터 효과적인 연구의 진행까지 모든 과정이 순조롭게 진행될 것이기 때문이다.
 


01 홍성욱 외 (2012), 융합이란 무엇인가? (P. 106~108)에 따르면, 미국 내 최초의 연구는 1959년 학제간 연구소(Interdisciplinary Laboratories, IDL)란 명칭으로 진행된 ARPA의 신소재 연구 프로그램이었다. 동 프로그램을 통해 과학적 방법론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과학자와 엔지니어의 공생 활동이 스탠포드대, MIT, 코넬대 등 총 12개 대학의 연구소에서 진행되었다.

02 진석용 (2013), 미국 혁신적 연구의 산실 DARPA, LG경제연구원

03 Richard Van Atta (2008), Fifty Years of Innovation and Discovery, DARPA

04 Driving Technological Surprise
(2013), DARPA

05 Ian A. Maddock (2008), Darpa's Stealth Revolution, Ben R. Rich (1998), Skunk Works, 각종 언론 기사의 종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