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 - 마우스 개발 과정에서의 정부, 학계, 기업 역할
창조적 혁신에는 개념 창안, 기술 연구, 제품 개발의 3단계의 혁신 과정이 필요하다.
3가지 세부 혁신에는 서로 다른 역량과 환경이 필요하기에 정부, 학계, 기업이 유기적으로 각각의 역할을 수행할 때 성공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
ARPA의 마우스 사례에서 보듯이 정부에서 멀리 미래 기술의 잠재력을 보고 한 발 앞서 학계가 연구할 수 있게 뒷받침 하고, 또 연구자의 커뮤니티를 형성해 각 단계의 혁신이 자연스럽게 다음 단계로 연결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바람하다.
본고에서는 ARPA가 마우스, 인터넷 개 과정에서 어떤 역할을 수행했는가를 살펴봄으로써 창조적 혁신을 위해 바람직한 정부 · 대학 · 기업의 역할 분담 모습을 모색해 본다.
개요
ARPA(Advanced Research Project Agency)는 대표적인 정부 연구 혁신 사례이다.
인터넷과 마우스를 세상에 내놓아 사람들이 생각하고, 얘기하고, 일하는 방법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았다.
ARPA의 선도로 전산실의 거대한 계산기였던 컴퓨터는 일상 생활에 필수적인 정보통신 기기로 자리 잡았다.
ARPA가 마우스 개발 과정에서 어떤 역할을 수행 했는가를 살펴 봄으로써 창조적 혁신을 위해 바람직한 정부대학기업의 역할 분담 모습을 모색해 보자.
ARPA : Joseph Licklider
인터넷과 마우스의 개발 과정을 보면 흔히 접하는 연구 개발 형태와 다른 모습을 보여 준다.
가고자 하는 목적지를 명확히 파악한 후 철저한 계획 하에 차근차근 접근 했다기보다는 시대를 앞선 몇몇 선각자의 통찰로 대략 방향을 잡고 진행 과정에서 순간순간의 변화에 유연하게 대처하며 마주치는 기회를 기민하게 포착, 확장하여 혁신을 이루었다.
국방성 산하의 ARPA가 컴퓨터 연구에 핵심 역할을 수행한 것도 일정 부분 우연의 산물이다.
ARPA는 1958년 소련의 스푸트닉 위성 발사에 충격을 받은 미 정부가 육해공 각 군 독자적으로 추진하던 우주 개발을 국방성 산하로 일원화 할 목적으로 설립하였다.
이후 각 부처 간 알력으로 민간 우주 연구는 NASA에서, 군사 우주 연구는 각 군에서 진행하기로 정리되어 ARPA는 탄도 미사일 방어, 핵 실험 감지 등 미래 기술을 담당한다.
60년대 초 루이나 (Jack Ruina) 원장 아래 ARPA는 중앙 통제와 경직된 프로세스가 아닌 실무자의 이니셔티브와 유연한 대처로 ‘고 위험 고 수익 (High-Risk, High-Gain)’ 첨단 연구를 기민하게 추진하는 ARPA식 연구 운영으로 다수의 혁신을 이루어 낸다.
1961년 우연히 공군의 Q-32 컴퓨터와 관련 인력을 넘겨 받은 ARPA는 이 유휴 연구 설비를 활용하기 위해 새로운 지휘통제 (Command & Control) 프로그램을 시작한다.
프로그램 책임자로 초빙된 조셉 릭라이더(Joseph Licklider)는 남다른 안목의 선각자로 이 지휘통제 프로그램의 틀 안에서 컴퓨터 연구의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 낸다.
릭라이더는 컴퓨터를 단순한 계산 기계가 아닌 ‘인간 사고와 상호 협력’을 한 단계 향상 시킬 도구로 보고 이를 위한 자연스럽고 직관적인 컴퓨터 인터페이스를 추구한다.
대형 컴퓨터가 펀치카드 방식 배치 프로세싱
(Batch Processing)으로 동작하던 때 릭라이더는 실시간 대화식 컴퓨팅(Real Time Interactive Computing)과 네트워크에 의한 공동 작업을 설파한다.
1962년 ARPA 프로그램 책임자로 취임한 릭라이더는 지휘통제 문제를 인간 기계 상호 작용(Human Machine Interaction) 문제로 확장 정의하고 지휘통제 프로그램의 예산으로 여러 과제를 시작하여 컴퓨터 분야의 혁신을 일으킨다.
MIT의 MAC 과제에서 개발한 MULTICS 시분할 운영 체제 (Time-Sharing Operating System)는 벨 랩의 UNIX 운영 체제로 이어지고 카네기 멜론의 Artificial Intelligence(AI)와 인간 판단(Human Decision) 연구는 허버트 사이몬(Herbert Simon)이 컴퓨터 사이언스 분야의 노벨상인 튜링 상(Turing Award)과 실제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하는 데 기여한다.
이 와중 릭라이더는 Stanford Research Institute(SRI)의 더글러스 엥겔바트(Doublas Engelbart)의 과제를 지원하게 된다.
마우스 개발 : SRI & Douglas Engelbart
더글라스 엥겔바트는 마우스, 윈도우 등을 창안하여 인간 컴퓨터 상호 작용에 새로운 지평을 연 인물이다.
1945년 미국 과학계 원로인 바네버 부시(Vannevar Bush)는 인간의 모든 지식을 자유롭게 불러 오는 MEMEX라는 기기를 제시하며 이는 하이퍼텍스트와 월드 와이드 웹의 선구이다.
여기에 영향을 받은 엥겔바트는 컴퓨터를 이용한 인간 지성 강화(Augmenting Human Intellect) 방안을 모색한다.
그는 지적 노동자(Intellectual Worker)가 디스플레이를 가진 기기로 정보 공간을 넘나들며 서로의 지적 능력을 모아 공동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상상한다.
SRI에 자리 잡은 그는 1962년 ‘인간 지성 강화(Augmenting Human Intellect : A Conceptual Framework)’라는 문서를 발표, 네트워크로 연결 된 실시간 대화형 컴퓨터(Networked Interactive Computer)를 제시한다.
미래를 내다 본 탁월한 통찰력이나 그 이상이 실현된 것은 1990년대 이후라는 것을 감안하면 컴퓨터가 단순 계산 기기로 간주되던 당시 그러한 주장이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지기는 어려웠다.
그러나 릭라이더는 엥겔바트 아이디어의 가능성을 알아보고 그의 비전이 실현 되도록 적극 지원했다.
컴퓨팅 벽지인 팔로 알토 SRI에 자리잡은 엥겔버트의 과제에 펀딩을 제공하고 엥겔바트의 연구가 순조롭게 진행 되도록 SRI 경영진을 채근했다.
ARPA의 뒷받침으로 강화 연구 센터(Augmentation Research Center)를 설립 한 엥겔바트는 직관적이고 편리한 컴퓨팅 연구를 진행하여 몇 년간의 암중모색 끝에 마우스를 고안하고 이를 뒷받침할 커서, 윈도우, 비트맵 스크린(Bitmapped Screens) 등을 발명한다.
이를 망라해 현 오피스 소프트웨어의 선구인 oN-Line-System(NLS)을 개발한 엥겔바트는 1968년 ‘모든 데모의 어머니 (The Mother of All Demos)’라 불리는 데모를 실시한다.
엥겔바트는 마우스를 이용해 자유롭게 사이버스페이스를 넘나들며 모니터에 윈도우를 띄워 커서로 문서를 편집하고, 여러 사람이 원격에서 협력하는 모습을 시연하여 마우스와 대화형 컴퓨팅의 가능성을 보여 주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한다.
ARPA의 릭라이더와 SRI의 엥겔버트가 시작한 마우스 연구는 제록스 파크(Xerox PARC) 연구소에서 계속 되었다.
복사기의 특허 기한 만료로 인한 경쟁 격화를 우려한 제록스사는 신성장동력으로 컴퓨터를 선정하고 1970년 ‘미래의 사무실(The Office of the Future)’이라는 모토아래 PARC 연구소를 설립하여 릭라이더의 ARPA 후임자를 지낸 밥 테일러(Bob Taylor)를 영입했다.
테일러는 1968년 릭라이더와 함께 ‘통신기기로서의 컴퓨터(The Computer as a Communication Device)’라는 공동 논문을 작성한 남다른 통찰력의 소유자로 엥겔바트의 연구에도 깊이 관여하여 마우스의 가능성과 잠재력을 이해하고 있었다.
제록스의 지원 하에 그는 PARC에 유능한 컴퓨터 인력을 모아 능력을 마음껏 발휘 하도록 하여 엥겔버트의 이상을 현실에 실현할 수 있는 핵심 기술을 개발해 나갔다.
테일러의 지도하에 PARC는 퍼스널 컴퓨터 알토(ALTO), 팝업 메뉴 GUI, WYSWYG 워드 프로세서, 레이저 프린터 등을 발명했다.
PARC의 연구원들은 인터넷으로 연결된 알토 PC에서 마우스 그래픽 유저 인터페이스로 컴퓨터를 이용하여 자유롭게 협업함으로써 엥켈버트의 비전을 현실에서 실현했다.
그러나 제록스는 PARC 기술의 상업적 가치를 알아보지 못했고, 마우스를 대중이 사용할 수 있는 제품으로 연결하여 시장에서 성공한 회사는 제록스가 아닌 애플이었다.
1979년 24살의 새파란 스티브 잡스는 PARC를 방문하여 마우스 기술 시연을 관람한다.
스크린에 여러 개의 윈도우를 띄워 마우스와 아이콘으로 자유롭게 컴퓨터를 조작하는 모습에 스티브 잡스는 마우스의 잠재력을 감지한다.
애플로 돌아온 잡스는 명령 창에 명령어를 쳐 넣는 기존 방법 대신 마우스, 아이콘를 갖춘 컴퓨터를 개발하며 시장에 팔리는 제품이 되도록 많은 개선을 가한다.
PARC의 전문 엔지니어가 아닌 일반인도 사용할 수 있게 유저 인터페이스를 더 쉽고 자연스럽게 바꾸고 소비자가 감당할 수 있도록 마우스 원가도 300불에서 15불로 낮춘다.
디자인과 마케팅 등 팔리는 제품을 위한 많은 노력 끝에 1984년 출시 된 매킨토시 컴퓨터는 인간이 컴퓨터를 이용하는 방법을 완전히 바꾼다.
그 후 마우스 기반의 GUI는 또 다른 ARPA 산출물인 인터넷과 결합하여 ‘네트워크화 된 컴퓨터로 정보를 처리하여 인간의 지적 능력을 향상’시키는 릭라이더, 엥겔바트의 이상을 실현하게 된다.
마우스와 아이콘은 몇 십 년에 걸쳐 여러 기관, 여러 사람들이 노력한 결과이다.
60년대 SRI의 엥겔바트는 컴퓨터에 의한 인간 지성 강화의 아이디어를 창안하여 ARPA 릭라이더의 지원을 받아 마우스의 가능성을 시연했고, 70년대 PARC의 테일러는 컴퓨터 GUI의 핵심 기술을 개발했으며 80년대 애플의 잡스는 매킨토시 출시로 대중화의 길을 열었다.
마우스는 개념 창안, 기술 연구, 제품 개발의 3단계 혁신과정을 거쳐 세상에 퍼져 갔다.
혁신의 3 단계 : 개념 창안, 기술 연구, 제품 개발
말콤 글래드웰(Malcolm Gladwell)은 혁신적인 아이디어가 세상을 바꾸는 과정은 3단계 혁신을 거친다고 한다.
첫째 미래를 내다 보는 선각자가 개념을 창안하고, 둘째 과학기술자가 이 개념을 실현할 수 있는 핵심 기술을 개발해 가능성을 보이며, 셋째 기업가(起業家, Entrepreneur)가 기술들을 조합해 대중이 사용할 수 있는 제품을 시장에 내어 놓는다.
마우스의 경우 엥겔바트의 아이디어 고안, 테일러의 기술개발 및 잡스의 상업화로 이 단계를 거쳤으며 ARPA의 또 다른 대표작인 인터넷도 비슷한 경로를 거쳤다.
첫 단계로 1960년대 RAND의 폴 바란(Paul Baran)등 연구자들이 패킷 스위칭(Packet Switching)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고안 해내고, 두 번째 단계로 ARPA의 테일러가 컴퓨터를 연결하는 네트워크 과제를 시작하여 래리 로버트(Larry Roberts)의 지휘 하에 ARPANET 연구 망을 개발한 후, 세 번째 단계로 90년대 CERN의 팀 버나드 리(Tim Berners-Lee)의 월드 와이드 웹(World Wide Web) 발명과 짐 클라크(Jim Clark)의 넷스케이프 브라우저 출시를 거쳐 인터넷은 대중에게 보급된다.
창조적 혁신이란 한 번의 혁신이 아닌 개념 창안, 기술 연구, 제품 개발의 세 단계 혁신 과정을 거쳐 세상을 바꾼다.
이 세 단계 혁신은 서로 다른 역량과 환경을 요구하기에 많은 경우 서로 다른 사람, 다른 기구에 의해 이루어 진다.
엥겔바트는 시대를 앞서가는 통찰력으로 나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고 주요 개념을 창안했으나 너무 새로운 지식을 탐구하는 데만 몰입해 실제 동작하는 시스템을 만들어 내지 못했다.
PARC는 최고의 연구자들로 최고의 팀을 구성해 다수의 혁신 기술을 개발하고 알토 퍼스널 컴퓨터에 기반한 시제품까지 완성했으나 이를 대중에게 다가갈 수 있는 제품으로 연결시키지 못했다.
1981년 제록스는 기업 대상 스타(Star) 워크스테이션을 출시했으나 고가와 저 성능으로 시장에서 외면당했다.
애플의 스티브 잡스는 PARC의 개인용 컴퓨터(Personal Computer)를 진정한 대중용 컴퓨터(Popular Computer)로 발전시켜 시장에서 성공하였으나 앞선 연구 축적 없이 매킨토시 컴퓨터는 불가능했다.
마우스와 아이콘은 정부, 학계, 기업에서 상이한 성격의 3가지 혁신을 각각 성공적으로 수행하여 세상을 바꾸었으며 이러한 유기적 연결에는 ARPA로 대표되는 정부의 역할이 컸다.
세상에 없던 새로운 개념을 창안하는 1단계 혁신은 실패 확률이 크고 제품화에 걸리는 시간이 길어 기업에서 이루어지기 어렵다.
엥겔바트의 연구는 1963년 착수 후 1968년 데모까지 수 년의 시행 착오를 거쳐야 했고, 제품 출시까지 10여 년의 시간이 더 필요했다.
상업적 성공 이후에도 SRI의 수익은 애플에서 받은 로얄티 4만 불에 불과하다는 것을 감안하면 이윤을 따지고 눈에 보이는 성과를 중시하는 기업에서 그러한 연구를 하기는 어렵다.
성공의 전망이 불투명 하고 앞이 보이지 않는 1단계 혁신에는 정부나 학계의 역할이 각별히 중요하다.
ARPA와 릭라이더는 경직된 프로세스 대신 유연하게 기회를 포착하는 ARPA식 연구운영으로 1단계 혁신을 성공적으로 이루어 냈다.
모든 것이 불분명한 미지의 영역을 탐구하는 1단계 혁신 과정에서는 잠재력을 보고 도전하는 리스크 테이킹이 불가피하다.
릭라이더와 후임 테일러는 탁월한 안목으로 남들이 못 보던 미래를 내다 보며 완전히 새로운 연구를 지원하여 마우스, 인터넷 등 세상에 없던 새로운 것을 창조해 냈다.
익숙한 것을 좋아하고 위험을 싫어하는 인간의 본성은 처음 접하는 혁신적인 개념을 거부하기 쉽다.
엥겔바트의 ‘인간 지성 강화(Human Intellect Augmentation)’는 펀치카드로 동작 하던 컴퓨터 시대에 몽상에 불과해 많은 사람들에게 거부당했다.
릭라이더는 최초로 엥겔바트의 아이디어를 믿어 준 사람이었으며 실패할 위험을 무릅쓰고 그의 연구를 지원했다.
ARPA 우산 아래 릭라이더와 테일러는 ‘컴퓨터에 의한 인간 역량 향상’이라는 큰 방향을 제시하고 연구자들의 커뮤니티를 형성해 유기적으로 협력하게 했다.
릭라이더는 이전까지 산발적으로 진행되던 컴퓨팅 연구를 모아 ‘Time-Sharing’, ‘Human-Computer Interaction’, ‘Network’이라는 주제하에 하나의 서로 연관된 흐름으로 연결했고 여기 여러 다종 다양한 연구자들이 참여해 시너지를 창출했다.
컴퓨터의 잠재력을 선견한 릭라이더와 테일러는 심리학 전공이며 AI 연구자 사이몬은 후에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다.
특히 테일러는 릭라이더의 후임 IPTO 책임자로 재직하다 나중 PARC 로 이직해 마우스 연구의 2단계 혁신을 주도한다.
테일러는 ARPA 재직시 경험으로 주요 컴퓨팅 분야와 우수 인력을 꿰뚫고 있었기에 엥겔버트에 의한 1단계 혁신을 끊김없이 2단계 혁신으로 발전시킬 수 있었다.
ARPA가 형성한 연구 커뮤니티는 SRI의 개념 창안을 PARC의 기술 연구로, 그리고 애플의 제품 개발까지 연결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결론
창조적 혁신에는 개념 창안, 기술 연구, 제품 개발의 3단계의 혁신 과정이 필요하다.
3가지 세부 혁신에는 서로 다른 역량과 환경이 필요하기에 정부, 학계, 기업이 유기적으로 각각의 역할을 수행할 때 성공적으로 이루어 질 수 있다.
기업은 제품 개발의 3단계 혁신에는 강점이 있으나 새로운 개념 창안과 가능성 검증은 서투르기에 이 부분은 정부와 학계의 기여가 중요하다.
ARPA의 마우스 사례에서 보듯이 정부에서 멀리 미래 기술의 잠재력을 보고 한 발 앞서 학계가 연구할 수 있게 뒷받침 하고 또 연구자의 커뮤니티를 형성해 각 단계의 혁신이 자연스럽게 다음 단계로 연결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