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의 열쇠 - ‘젠더 다양성’이 글로벌 경쟁력의 핵심이다
지난 10월 말 세계경제포럼(WEF)에서 발표한 ‘성(性) 격차지수’(Gender Gap Index, GGI)에서 한국이 111위를 기록한 것이 우리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다.
성 격차지수는 여성 경제활동 참여율, 여성의 전문직, 관리직 비율, 남녀 임금격차, 여성 고등교육기관 취학률, 여성 국회의원 수 등 14개 항목을 점수화한 것이다.
특히 우리나라는 여성의 관리직 진출이 11%로 가장 낮은 0.11점을 받았다.
우리나라 여성의 높은 대학 진학률 등을 볼 때 성 격차지수 통계의 신빙성에 의문이 든다.
여성부 장관이 세계경제포럼 회장을 만나 이의를 제기했다는 보도도 있었다.
그러나 과학기술계 내부를 들여다보면 이 통계는 당연한 결과이다.
고급 인력이 포진하고 있는 연구 개발 분야에서 여성 참여율은 지난 수년간 일본을 제외하면 최하위인 17% 수준이고, 민간기업 여성의 연구 개발 참여수준은 14%로 더욱 낮다.
특히 관리직이나 고위직으로 가면 상황은 더욱 나빠서 100인 이상 기업의 책임급 여성연구원은 3.8%이고, 100인 미만 기업의 팀장급 이상 여성연구원 비율도 9%에 불과하다.
다양한 학문 간의 융합을 통해서 시너지가 생기고 창의성이 발현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인적자원의 다양성, 특히 젠더 다양성을 통해서 과학기술 분야의 놀라운 혁신들이 일어나고 있다.
먼저 볼보자동차에서 일어난 혁신 사례로 콘셉트카의 등장을 보자.
미국에서 자동차 구매자의 53% 이상이 여성이고 구매의사결정에서 여성의 비율은 더 높다는 사실에 착안해 볼보는 여성의 기대치를 만족시킬 수 있는 차를 만들기로 결정했다.
여성 엔지니어가 대거 투입되어 차체의 가시성이 더 좋고 제어장치의 접근이 용이하고 계기판의 가독성이 높으며 주차가 용이한 차를 만들어 낼 수 있었다.
그 결과 ‘여성의 기대치를 맞추면 남성의 기대는 충분히 만족된다’는 교훈을 얻게 된 것이다.
이런 사실은 기술뿐만 아니라 기술기반 서비스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볼보의 사례에서 보듯 글로벌 기업들은 고객 요구를 미리 파악하고 수용하기 위해 여성엔지니어의 수를 대폭 늘리고 그들의 관점을 기술 개발에 반영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R&D젠더분석을 통한 새로운 혁신연구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일례로 지리학적 자료의 관리 및 지도제작 등 기술적인 방법을 총괄하는 방법으로 주로 쓰이던 지리정보체계(GIS)에서 공간사용에 젠더 요소를 넣어 양적인 분석 결과를 낼 수 있었다.
이 연구결과를 활용하면 향후엔 여성이 편리한,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편리하고 공정한 도시설계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젠더 분석을 통한 지식혁신은 빅데이터 활용으로 새로운 영역과 창의적인 주제들이 대거 발굴되면 그 영향력은 무서운 속도로 커질 것이다.
의료보건 분야에서도 젠더혁신을 통한 획기적인 사례는 많다.
남성과 다른 여성 특유의 골격과 하중을 지탱할 수 있는 독특한 인공무릎 설계는 젠더 요소 외에도 많은 분야의 융합연구를 통해서 가능했다.
미국 국립보건연구원(NIH)은 부설 여성보건연구청을 신설하고 보다 많은 여성전문가를 끌어들이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특히 의료연구에서 기존의 남성중심적 관점을 탈피하고 성별차이를 고려하도록 요구해서 획기적인 발전을 꾀하고 있다.
또 의약품을 남성들에게만 실험한 결과 약물 부작용이 여성에게 2배나 많이 발생한 경험을 살려서 미국은 신약개발 실험시 여성을 반드시 포함하도록 하고 여성이 배제되면 어떠한 경비도 지원하지 않는다는 조항을 담은 연방법을 통과시켰다.
이처럼 젠더분석을 통해서 새로운 연구주제와 영역이 도출되고 창의성이 빛나는 기술혁신이 일어나면서 글로벌 경쟁력의 핵심이 될 전망이다.
이를 지켜 본 유럽연합은 여성인력 활용률이 이미 30%를 넘었지만 더 많은 우수한 여성인재를 과학기술 분야로 끌어들이려고 지속적인 지원정책을 펴고 있다.
우리나라도 성평등지수가 낮다는 결과를 놓고 국가적인 위신의 실추를 걱정하는 차원에서 논쟁할 것이 아니라 이번 기회에 창조경제에서 산업경제혁신의 핵심전략으로써 여성의 참여와 활용을 높이는 방향으로 눈길을 돌려야 마땅할 것이다.
2013년 우리나라의 GDP 대비 연구개발투자 규모는 OECD 국가들 중에서 2위이다.
그러나 과학기술과 혁신의 연계는 14위로 상대적으로 낮다.
우리나라 기업들은 규모에 관계없이 R&D 투자확대의 가장 큰 애로 요인으로 기술인력 부족을 호소한다.
인재부족이 문제라고 하면서도 잘 교육받은 여성인재들의 활용이 더딘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나라는 2002년 ‘여성과학기술인 육성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고 지난 10여 년간 여성과학기술인 육성과 활용을 확대하려는 지원정책을 체계적으로 펼쳐왔다.
제도나 정책 면에서는 OECD 어느 국가와 비교해도 결코 뒤지지 않는다.
하지만 젠더혁신을 통한 성공경험으로 새롭게 무장한 글로벌 기업들과 기술경쟁을 해 나가려면 사회 전반의 인식전환과 민간부문의 변화가 필요하다.
우리나라 기업들도 R&D 지원 단계부터 여성연구자 활용을 적극적으로 유도하는 실질적인 정책적 가이드라인을 제공하고 그 과정에 대한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성과에 따라서 인센티브를 연계하여 기업의 문화와 환경을 전반적으로 변화하는 일을 당장 시작해야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