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경영성공사례 - 현대로템(주) 철도사업부 연구소 사례
본지는 기술 및 제품의 개발과정이 매우 제한적으로 공개되고 있는 국내 기업환경에서 다른 기업의 성공프로젝트를 기술경영측면에서 살펴봄으로써 기업의 신제품 개발 프로세스에 도움을 주고자 2007년 8월부터 기술경영 성공사례를 게재해왔다.
이번 호에서는 현대로템(주) 철도사업부 연구소 사례에 대해 살펴본다.
들어가기
우수한 기술력의 프리미엄 제품을 내세운 외국 선도 기업과 가격 경쟁력에 기술력까지 갖춘 중국 기업의 공세 속에 국내 기업들은 이른바 ‘글로벌 샌드위치’ 상황에 놓여 있고, 국내 시장에서조차 정부의 인프라와 중소기업의 기술수준 부족으로 ‘로컬 샌드위치’에 빠져 있다.
그러나 세계를 무대로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국내 기업들이 선도 기업으로 올라서기 위해서는 이는 반드시 극복해야 할 문제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기업이 이런 ‘더블 샌드위치’ 상황을 극복하고 세계 시장에서 확고한 위치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우리는 그 답을 국내 유일의 철도차량 제조사로서 35개국에 철도차량과 시스템을 수출하는 등 세계 시장을 무대로 활약하고 있는 현대로템(주)의 경영 사례에서 찾아보려고 한다.
현대로템은 10여 년간 지속적으로 신호시스템 기술 국산화에 투자한 결과, ‘무선통신 기반 차상 · 지상 열차제어시스템(RF-CBTC 차상/지상 ATP/ATO)’ 개발에 성공해 장영실상을 수상했다.
장기간의 투자로 이뤄진 기술 개발로 향상된 성능과 가격 경쟁력까지 갖추게 되면서 해외에서 잇따라 수주에 성공하는 등 가시적인 결실을 맺고 있다.
끊임없는 아이디어와 기술 투자로 세계 유수 기업들을 맹추격하고 있는 현대로템을 통해 국내 기업들이 나아가야할 방향을 살펴보도록 한다.
세계 시장 진출 後의 더블 샌드위치
(Sandwich)
글로벌 샌드위치 : 선진국의 압박, 추격하는 중국
Point : 선진국은 기술 이전을 거부하고,
중국은 이제 기술과 가격 경쟁력을 모두
갖추고 있다.
선진국들의 기술 이전 거부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특히 오래된 산업에서는 이미 20여 년 전부터 흔히 있어 왔던 일이다.
이제 한국 기업에 선뜻 기술 이전을 해줄 기업은 미국과 일본, 유럽 등 세계 어디에도 없다.
이를 낙관적으로 보면 한국이 서구 선진 기업의 경쟁자라는 의미이며, 비관적으로는 전방위 공격 대상임을 뜻한다.
중국은 ‘세계의 공장’이라 불리며 저가 경쟁력으로 우리나라 제조업을 압박해 왔고, 그 추격은 여전히 거세다.
노동집약적인 대부분의 소비재 산업은 물론, 커모더티(Commodity)화된 전자 · 전기, 조선 · 자동차에 이르기까지 한·중 경쟁의 전선(戰線)은 넓고 경쟁은 치열하다.
문제는 중국의 강점이 가격 경쟁력에만 머물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2006년 ‘중장기 과학기술계획’에서 ‘자주창신(自主創新)’을 발전 목표로 제시한 이후, 중국은 기술 경쟁력에서 세계 최고 수준으로 빠르게 근접하고 있다.
국내 주력산업인 전자 · 자동차에서 한국과 중국의 기술 격차는 빠르게 좁혀지고 있으며, 태양광 · 제약과 같은 신산업 분야에서도 중국이 한국을 추월한 지 오래이다.
심지어 ‘China inside’라는 신조어가 등장할 정도로 중국은 선진기업들의 높은 기술 장벽으로 보호되던 부품 · 소재 · 장비에서도 괄목할 만한 기술성과를 거두고 있다.
‘Made in China’ 부품과 소재를 이용해,
‘Made in China’ 장비로 만들어진, ‘Made in China’ 제품의 시대가 열리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선진기업은 고가 · 고사양 프리미엄 제품으로, 중국의 저가 · 고사양 제품은 저가에서 고가까지 모든 제품군에서 국내 기업을 압박하고 있는 셈이다.
여기에 신흥국들까지 초저가 · 저사양 제품으로 도전해 오고 있어 우리나라 기업들은 ‘글로벌 샌드위치’ 상황에 처해 있고, 앞으로도 이런 상황이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로컬 샌드위치 : 정부의 인프라 부족, 국내
중소기업의 기술 수준 부족
Point : 정부의 인프라 구축과 제도 개선은
느리고, 중소기업과 대기업의 기술협력
생태계는 좀처럼 구축되지 못하고 있다.
산·학·연 협력과 대기업-중소기업 협력은 이런 우리 기업들의 샌드위치 상황을 돌파하기 위해 첫 번째로 제시되는 방법이다.
기업의 부족한 역량을 대학과 정부가 보완하고, 대기업과 중소기업도 상호보완적 관계를 구축하는 것이다.
R&D로 이야기를 좁혀보면, 정부와 대학은 단기적 채산성이 부족한 중장기 핵심기술에 투자해 기업을 견인하고, 중소기업은 부품 · 소재 기술력 향상을 통해 제품의 기획 · 생산 · 마케팅 경쟁력에 집중하는 대기업과 협력하는 구조이다.
그러나 국내 상황에서는 이 또한 ‘부족하다’라는 표현이 어울린다.
국내 정부 연구개발투자는 GDP 대비 4.03%(2012년 기준, 총 49조 8천 억 원 규모)로, 이스라엘에 이어 세계 2위이다.
그러나 투자에 비해 기업들의 체감효과는 낮다.
많은 기술이 개발 후 사업화나 실용화 단계에 이르지 못하고 사장되거나 휴면상태이기 때문이다.
대학도 사정은 별반 다르지 않으며, 여기에 부족한 연구개발 인프라와 느린 규제 개선이 기술사업화의 발목을 잡고 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협력 또한 좀처럼 바람직한 방향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대기업은 국내 중소기업에 쓸 만한 기술이 없는 게 아쉽고 중소기업 또한 대기업에게서 연구개발에 필요한 도움을 얻을 수 없다는 점이 아쉬운 상황이다.
이 때문에 대기업-중소기업이 협력을 통해 기술혁신에 성공한 사례는 드물다.
바람직한 형태는 정부와 기업간 협력,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협력이 원활하게 이루어져 기업이 추진력을 얻는 것이지만, 협력은 원활하지 않을 경우 기업은 ‘로컬 샌드위치’에 빠진다.
대기업은 정부와 중소기업에게서 도움을 얻기 어렵고, 중소기업 역시 정부와 대기업에게서 도움을 받기 힘들다.
애를 쓰고 있지만, 나아가기는 쉽지 않다.
현대로템의 철도 사업 : 세계 시장 진출 후의 문제들
Point : 내수시장을 넘어 세계 시장에
진출한 현대로템의 성장무기는 연구소,
그리고 신기술이다.
국내 유일의 철도차량 제조사인 현대로템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현대로템 철도사업부의 세계 시장점유율은 약 3%로 6대주 35개국에 철도차량과 시스템을 수출하고 있다.
시장점유율 19%로 세계 1위인 캐나다 봄바르디에(Bomardier)와 2~3위를 다투고 있으며, 14~15%의 시장점유율을 차지하는 독일 지멘스(Siemens)나 프랑스 알스톰(Alstom)도 현대로템이 뛰어넘어야 할 강력한 경쟁자들이다.
실제 현대로템은 세계 각지에서 이 철도 빅3 기업과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으며, 이들의 공세는 나날이 강화되고 있다.
여기에 중국의 중국 북방기관차 차량공업 집단공사(北車集團)와 중국 남방기관차 차량공업 집단공사(南車集團)가 세계 시장 진출을 가속화하고 있어 전형적인 ‘글로벌 샌드위치’ 상황이라 할 수 있다.
‘로컬 샌드위치’도 만만치 않다.
우선 개발한 철도차량이나 시스템을 시험, 인증할 국내 인프라가 부족하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이다.
정부가 철도기술 R&D에 투자를 하고는 있지만 사업화율은 여전히 높지 않고 대학이나 중소기업의 기술 역량은 약하다.
여기에 원천기술 확보는 어렵고, 정부 R&D는 체감효과가 낮으며 자체 개발한 철도차량이나 시스템을 시험해서 레퍼런스(Reference)를 구축할 마땅한 인프라도 없다.
그렇다면 이런 ‘더블 샌드위치’ 상황을 극복하고 세계 시장에서 어떻게 확고한 위치를 확보할 수 있을까?
정부나 중소기업의 변화를 통해 로컬 샌드위치 상황이 해소되는 것도 물론 하나의 방법이지만 기다릴 시간이 없다.
그런 경우의 최선책은 무엇일까?
현대로템 철도사업부 연구소의 경험은 바로 이 문제에 대한 답을 찾으려는 기업 모두에게 몇 가지 실마리를 제공한다.
핵심기술 R&D로 전주기 저가격 실현
철도차량이 아니라 철도시스템 가격을 낮추는 기술, 신호시스템
Point : 철도차량에서 더 이상 가격을
낮출 수 없다면, 자체 R&D로 신호시스템
가격을 낮춰 승부한다.
현대로템 철도사업부의 핵심 제품은 무엇일까?
대부분이 서울 지하철은 물론 KTX 산천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철도차량 안에 부착된 ‘현대로템’이라는 로고를 떠올릴 것이다.
실제 철도차량은 매출뿐 아니라 연구개발 투자에서도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현대로템뿐 아니라 봄바르디에와 알스톰, 지멘스에서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추격(Catch-Up)하는 입장에서 철도차량은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다.
우선 철도차량이 이익이 거의 남지 않는 제품이기 때문이다.
남는 게 없으니 경쟁사보다 가격을 내리면 적자가 난다.
가격으로 경쟁하기 힘들다는 이야기이다.
여기에 차량 기술도 거의 한계에 도달해, 추격하는 기업과 선진기업 간에 차이가 거의 없다.
신기술로 차별화된 차량을 만들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결국 차량에서는 경쟁사와 뚜렷한 차이를 내기가 어렵다. 그렇다면 답은 무엇일까?
현대로템의 아이디어는 ‘차량 가격을 낮출 수 없다면, 철도시스템 전체의 가격을 낮춰서 승부한다’였다.
차량은 선진 기업들과 기술적, 질적 차이가 없이 제작해 공급하는 대신 차량 다음으로 높은 매출 비중을 차지하며, 마진(Margin) 폭이 큰 신호시스템을 ‘보다 나은 성능 + 저렴한 가격’으로 제공하는 것이다.
여기에 필요한 것이 바로 현대로템만의 자체 신호시스템 기술이다.
예전에 철도시스템을 구축할 때 현대로템은 신호시스템을 전량 수입했기 때문에 신호시스템 단가 하락을 기대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2000년대 초부터 10여 년간 지속적으로 신호시스템 기술 국산화에 투자한 결과, 현대로템은 마침내 ‘무선통신 기반 차상 · 지상 열차제어시스템(RF-CBTC 차상/지상 ATP/ATO)’ 개발에 성공했다.
기존 수입가 대비 신호시스템 단가는 30% 하락했고, 기능은 해외 제품보다 향상됐다.
빅3와 경쟁할 수 있는 ‘나은 성능, 저렴한 가격’의 힘을 얻은 것이다.
구매시의 가격만이 아니라 수십 년 유지보수 비용 줄이는 기술 개발
Point : 수십 년 사용하는 시스템의
유지보수(Operation & Maintenance)
비용을 줄이는 기술로 전주기
저가/저비용을 실현한다.
철도시스템 전체의 가격을 낮추는 전략은 효과적이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빅3 기업과 중국 모두 신호시스템 기술 개발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기 때문이다.
수 년 후, RF-CBTC보다 뛰어난 신호 시스템이 누군가에 의해 개발, 출시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시스템 전체 가격은 이미 낮출 수 있는 한도까지 내려갔다.
그렇다면 어디에 또 다른 가격 하락의 기회가 있을까?
현대로템의 아이디어는 ‘시스템 구매 가격 뿐만이 아니라 수십 년의 유지보수 비용을 낮추는 기술을 개발한다’였다.
구매 시의 가격은 이미 낮아질 대로 낮아졌는데도 해외 기업들이 유지 보수에만 수억 원, 수십억 원을 요구하는 일은 다반사이다.
시스템을 저렴하게 공급하는 대신 유지보수 비용으로 적은 마진을 상쇄하는 ‘면도기와 면도날’ 전략의 철도판이다. 현대로템은 바로 여기서 기회를 찾았다.
현대로템의 새로운 신호시스템 기술에는 이런 전략이 고스란히 들어 있다.
기존 해외 기업의 신호시스템은 신호체계에 문제가 발생하면 문제가 일어난 상황만을 기록했다.
당연히 운영하던 측이 기록을 확인해도 평상시와 비교해서 무엇이 원인이었는지를 파악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현대로템의 시스템은 실시간으로 시스템 모니터링과 점검, 기록 기능을 제공한다.
운영사가 시스템의 다양한 문제를 직접 확인, 분석하고 해결할 수 있는 기술을 제공하는 것이다.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수억 원의 출장비와 수십 억 원의 소프트웨어 업데이트 비용을 지불하던 운영사들에게 이 시스템은 획기적인 비용 절감책이라 할 수 있다.
현대로템은 다양한 기술개발을 통해 유지보수 비용을 줄이고 있으며, 이를 통해 이미 수주에서 성과를 만들어 내고 있다. 2013년 인도 델리 메트로 입찰에서 인도 측은 차량 가격뿐 아니라 향후 수십 년간의 에너지 소비효율을 입찰 가격 조건에 포함시켰다.
전력 소모량 감소를 위해 차체 경량화와 추진장치 효율화 기술을 가지고 있던 현대로템은 당연히 경쟁사보다 훨씬 낮은 가격을 제시할 수 있었고, 결국 수주에 성공했다.
전주기 저가-저비용 실현을 위한 R&D는 선도 기업들을 추격하는 기업에게 강력한 무기이다.
선행기술 R&D로 미래 경쟁우위 확보
프리미엄 교통수단을 위한 기술 선점
Point : 고속철도, 자기부상열차, 트램과
같은 새로운 교통수단, 시스템 집적화,
디지털화, 소프트웨어 융합과 같은
신기술에 투자해 경쟁사를 앞서간다.
저가 경쟁은 언젠가 한계에 부딪힌다. 이는 모든 산업과 시장에서 적용된다.
중국은 저가 경쟁에서 압도적으로 유리한 위치에 있으며, 실제 중저가 철도차량에서 시장을 빠르게 잠식해 가고 있다.
그렇다면 미래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
답은 누구나 알고 있다. 새로운 교통수단을 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미래 핵심기술에 투자해야 한다.
그러나 사실 누구나 알고 있는 이 일을 실행에 옮기기에는 현실적인 문제들이 많다.
무엇보다 경제 상황이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데 경기가 나빠지면, 미래기술 R&D의 대부분이 중지된다.
당장의 저가 경쟁력에 기여하는 기술을 개발하기에도 예산이 빠듯해지기 때문이다.
또한 미래기술은 어렵고 많은 불확실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가끔 개발을 시도해서는 제대로 된 기술이 나올 리가 없다.
현대로템의 강점 중 하나는 바로 이런 미래기술, 선행기술에 꾸준히 투자한다는 점이다.
R&D 실무자들이 선행기술을 파악하고 평가를 거쳐 선정된 기술에는 꾸준한 투자가 이루어진다.
RF-CBTC는 향후 20년의 미래기술로 2000년대 초에 기획됐고 과제로 선정된 뒤에는 투자가 이루어졌다.
무려 10여 년 동안 끊임없이.
차세대 고속열차인 해무(HEMU)-430X와 인천공항 자기부상 열차는 모두 이런 끊임없는 선행 R&D의 결과물이다.
현대로템은 꾸준히 새로운 교통수단을 준비해 왔고, 선행기술에 투자했다.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미래 교통수단과 시스템 집적화, 디지털화, 소프트웨어 융합과 같은 미래 핵심기술에 대한 R&D는 저가 경쟁 이후의 미래를 열어가기 위한 현대로템의 답이다.
차량 혁신(innovation) 기술로 미래 대비
Point : 2층 철도와 같은 혁신기술 없이
선도 기업을 따라잡을 수 없다.
새로운 교통수단과 프리미엄 철도에 대한 투자는 현대로템이 풀라인업(Full-lineup)을 갖춘 종합철도차량 회사로서 빅3와 경쟁하기 위한 필수 조건이다.
그러나 그 이후 빅3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그 답은 철도의 패러다임을 완전히 바꿔 놓을 수 있는 파괴적 혁신(Destructive Innovation) 기술이다.
현대로템의 지향점도 여기에 있다.
이미 기술적 한계에 도달한 철도차량, 가격 인하와 차별화도 어려운 철도차량, 그래서 마진이 거의 없는 철도차량에 파괴적 혁신을 일으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 또한 쉽지 않다. 예를 들어 2층 철도차량의 경우, 철도의 수송능력을 두 배 이상 늘릴 수 있는 혁신적 차량이다.
수많은 기술적 장애가 있지만 가장 큰 장애는 무게이다.
모든 철도는 철도 축에 걸리는 하중(축중)에 법적 제한이 있다.
법적 하중 이상의 차량은 운행 자체가 불가능하다.
결국 2층 차량은 철도차량의 무게를 지금의 1/2 이하로 줄일 수 있는 경량화 소재 없이는 개발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현재의 기술로 2층 철도차량을 만들 수도 있고 시범운행까지 할 수 있지만 그게 끝이다.
철도 하중 규정 때문에 어느 나라에도 판매할 수 없는 것이다.
이런 파괴적 혁신은 특정 기업의 힘만으로는 불가능에 가깝다.
중소기업, 중견기업, 대기업 모두 개발이 가능할지 불가능할지도 모르는 경량화 신소재에 투자할 돈이 없다.
불확실성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크기 때문이다.
이렇게 우리가 주저하고 있는 동안, 중국은 정부 주도로 거액을 신소재 개발에 투자하고 있다.
철도차량의 주목받는 경량화 소재인 알루미늄 기술의 경우, 이미 중국은 한국을 넘어섰다.
현대로템의 아쉬움은 여기에 있다.
마지막 목표, 건강한 R&D 생태계
정부 수요자-출연 연구소-기업으로 이어지는 R&D 사슬 구축
Point : 정부 수요자가 기획하고, 정부 출연
연구소가 사업화까지 기술을 끌어와서,
기업이 빠르게 세계적이며, 경쟁력 있는
제품으로 완성하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세계 시장에서의 경쟁에 있어 현대로템의 난점 중 하나는 레퍼런스(Reference)이다.
철도나 플랜트와 같은 대규모 설비 입찰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과거 실적(Reference)인데 철도의 경우, 실제로 차량과 시스템을 수년 간 운행한 실적이 중요하다.
아무리 저가, 고성능의 철도시스템이라도 실제 운행해 보면 많은 문제들이 발생한다.
이런 문제를 해결한 철도시스템과 그렇지 않은 시스템 간에는 아무래도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메트로(METRO) 도시철도공사와 같은 국내 수요처의 경우, 3년 이상의 영업 운행실적이 없는 철도차량은 기업의 입찰 자체가 불가능하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현대로템은 신개발 철도차량을 일단 해외에 수출해 운행 실적을 쌓은 뒤 국내 수요처에 입찰해 납품한다.
말은 쉽지만, 운행 실적이 없다보니 해외 수요처를 설득하기가 쉽지 않다. 정말 어렵게 해외시장을 개척해 가고 있는 것이다.
인증, 시험, 레퍼런스가 중요한 철도 사업에서는 무엇보다 협력적 연구개발이 중요하다.
우선 실제 철도를 구매할 국내 수요자가 새로운 철도차량 사업, 제품, 기술 기획 역할을 해줘야 한다.
수요자가 참여하지 않은 차량 연구개발 사업의 다수가 사업화 시기에 이르러 대대적인 재설계에 들어가는 경우가 흔하다.
수요자가 거의 참여하지 않은 상태에서 기획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정부와 정부출연연구소가 고위험 미래 핵심기술에 주도적 역할을 해야 한다.
기업은 채산성이라는 제약을 벗어나기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인증, 시험, 레퍼런스를 위한 인프라 또한 사업화까지 기술들을 끌어오는 데 필수이다.
사업화에서 시장 확대까지를 가장 빠르고 효과적으로 가져가는 것은 기업의 몫이다.
현대로템은 정부 · 정부 출연연구소 · 민간기업으로 구성된 강력한 철도 R&D 사슬 구축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
G7 프로젝트로 건설교통부 · 산업자원부 · 한국철도기술연구원이 주관했던 한국형 고속전철 개발을 비롯해 다양한 정부 R&D 과제에 참여한 긴 역사가 그 노력을 말해준다.
중소기업-대기업 협력체제로 건강한 R&D 생태계 완성
Point : 중소기업이 요소기술-대기업이
핵심기술을 개발하는 협력체계는 정부가
지원하는 건강한 R&D 생태계 없이는
경쟁력이 없다.
정부 수요자, 정부 출연연구소와의 협력만으로는 부족하다.
빅3는 지속적으로 연구개발 속도를 가속화하고 있다.
중국의 대규모 정부 연구개발 투자는 실제 성과를 창출하면서, 국내 기업들을 압박하고 있다.
그 이면에는 강력한 소재기술·요소기술을 보유한 중견 · 중소기업들이 있지만 실상 경쟁은 정부 · 대기업 · 중견기업 · 중소기업으로 구성된 R&D 생태계간에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현대로템이 모든 필요한 기술을 개발할 수는 없다.
다양한 산업을 지원해야 하는 정부가 특정 산업의 모든 고위험 기술 개발을 지원할 수도 없다.
강력한 중견 · 중소기업 없이는 R&D 경쟁에서 이길 수가 없는 구조이다.
200조가 넘는 세계 철도시장에서, 현대로템뿐 아니라 다른 기업에도 납품이 가능한 세계적 수준의 중견 · 중소기업 육성과 협력은 미래 경쟁우위의 핵심이다.
특히 집적화, 디지털화, 소프트웨어 융합 등 기존 기계기술뿐 아니라 전자 · 전기 · 통신 · 소프트웨어 기술로 핵심기술이 확장, 융합되는 것이 오늘날 철도시스템이다.
‘철도’ 업종의 중견 · 중소기업뿐 아니라 철도기술과의 융합을 통해 부가가치를 높일 수 있는 다른 산업의 중견 · 중소기업 역량을 강화하고, 또 이들과 협력해야 한다.
현대로템이 지향하는 R&D 생태계는 이런 대기업 · 중견 · 중소기업의 협력이 핵심이다.
시사점
내수시장을 벗어나 세계 시장에 진출하기란 어렵다.
그러나 세계 시장에서 선도 기업으로 성장하기는 더욱 어렵다.
선도 기업들은 가격과 기술, 서비스 등 가치사슬의 모든 측면에서 강력한 공세를 펼친다.
여기에 중국기업들이 대규모 정부투자에 힘입어 고사양 · 저가제품으로 추격해 온다.
글로벌 샌드위치 상황은 오늘날 우리 기업이 공통으로 직면하고 있는 문제이다.
여기에 정부의 투자 · 인프라 부족과 우수 중견 · 중소기업 부족이 성장을 어렵게 하고 있다.
이러한 로컬 샌드위치 상황 또한 많은 기업들이 공통으로 겪고 있는 문제이다.
‘더블 샌드위치’를 벗어나기 위한 방법은 의외로 단순하다.
제품 성능과 사양은 향상시키고 가격을 낮추는 것이다.
전형적 ‘고사양-저가’ 전략이야말로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그러나 많은 기업이 바로 여기에서 좌절한다.
인수합병(M&A)이나 합작 벤처(Joint Venture) 등을 통해 세계 시장에 진출한 기업은 더욱 그렇다.
이 전략의 핵심이 다른 무엇보다 ‘기술’, 그리고 R&D이기 때문이다.
기술 없이 전략은 불가능하며, 우수한 R&D 조직 없이는 기술도 없다.
현대로템은 바로 이런 가장 단순하지만 효과적인 전략을 우직하게 실천해서 성공했다.
RF-CBTC 차상/지상 ATP/ATO 기술 개발에 소요된 시간은 10년이 넘는다.
다른 기업이라면 과제가 중지-시작이 몇 번은 반복될 만한 시간이다.
그러나 이 긴 시간 동안 꾸준히 R&D에 투자한 결과 마침내 철도시스템의 구매가격뿐 아니라 유지보수 가격까지 낮추는 데 성공했다.
여기에 성능은 기존 제품 대비 수십 % 향상됐다.
‘고사양-저가’ 경쟁우위를 결국 R&D와 기술을 통해 얻은 것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세계 선도 기업으로 올라서기 위해서는 기존 산업의 패러다임을 바꿔 놓을 수 있는 혁신기술이 필요하다.
현대로템은 이런 혁신기술에 대한 투자도 꾸준히 하고 있다.
그러나 현대로템의 힘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정부 수요자의 기획력, 정부 출연연구소의 주도적 고위험 기술 개발, 하이테크 요소기술을 보유한 강력한 중견 · 중소기업과의 협력, 그리고 유기적 생태계 구축 없이는 선도 기업의 자리에 올라설 수 없다.
국내 시장을 벗어나 세계 시장에 진출하고, 또 성장하고 싶은 기업이라면 ‘기술 없이 성장은 없다’는 단순하지만 확고한 진실과 ‘협력 없이 선도 기업은 불가능하다’는 명제를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한다.
그리고 이 두 가지를 위해 우리 기업에게 지금 무엇이 필요한지도 고민해봐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