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 & 사이언스

PLUS ESSAY - 과거-현재-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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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대부분 가운데를 좋아하는 것 같다.

생선 가운데 토막을 어른께 드리는 행동에서, ‘중간만 하면 됐지 뭘 더 하려고 야단이냐’며 핀잔 줄 때도 중간이 등장한다.

비슷한 뜻의 중앙도 많이 쓰인다.

지명이나 거리이름, 학교이름, 간판에도 중앙이 많이 등장한다.

위계질서를 말할 때는 중앙이 상부를 뜻함으로 그 위세를 펴 보이기도 한다.

인생 중 제일 생기발랄한 터전도, 기쁜 느낌도 중학생 때 있고 참 맛은 중년이라고 하는 학자도 있다.

과학기술의 발전과정도 중간시점인 현재가 중요하다.
 
과거와 미래를 현재의 입장에서 분석하고 정리하는 과정을 거쳐 판단할 수는 없는지, 일체를 현재라는 가운데 토막에 대입해 보면 어떨까 생각해 본다.
 
미래학을 연구하는 학자들 중에는 현재를 중앙에 놓고 왼쪽의 과거시점에 있었던 상황을 오른쪽 미래의 시점에 옮겨놓고 판단하면 된다고 하는 사람이 있다.

아마도 성공한 케이스가 있었을 것으로 미루어 짐작된다.

서양 격언에 현재가 제일 좋다는 뜻이 있다(Yesterday's History, Tomorrow is Uncertainty, but Today is a Present).
 
필자 나름의 해석은 ‘현재 이 시간에 최선을 다해 선물도 받으시오’라고 생각해 본다.

기록문화를 귀하게 여기고 정리정돈을 잘하는 민족이 융성하고 있음은 단절 없는 역사와 그 맥을 같이하고 있다.

우리가 역사를 배워야 하는 이유다.

우리가 배운 바로는, 2,600여 년 전 희랍의 탈레스(Thales)가 고양이털을 러시아지방에서 많이 산출되는 호박(Amber)에 문질렀을 때 발생되는 정전기가 최초의 전기라고 한다.

1720년에 S. Gray는 전기가 통하는지 아닌지 구별하는 도체와 부도체를 구분하게 되었다.

여러 과정을 거치면서 1800년에 이태리의 A. Volta는 볼타전지를 발명하여 지금의 전압단위인 Volt를 우리 곁에 두게 했다.

이때부터는 줄줄이 사탕으로 유럽각국에서 연달아 발명 · 발견의 봇물을 이룬다.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기록문화의 산물인 것이다.

예를 들면, 1820년 화란의 H. C. Oersted는 어쩌다가 전기가 흐를 수 있는 전계를 변화시키니 자기가 변화되는 자계가 발생됨을 발견한다.

외르스테드는 자기 세기의 단위가 되었다.

이에 질세라 불란서의 앙페르(A-M Ampere 영어로 배운 우리는 암페어, 전류 단위 A는 이름에서 유래)는 1주일 후에 앙페르법칙을 발표하는데 이는 전류의 이동방향 주위에 오른나사를 돌리는 방향으로 자기 띠가 생김을 뜻한다.

1827년엔 독일의 G. Ohm는 그 유명한 오-움의 법칙을 발표하게 된다.
 
도체에 흐르는 전류는 같은 전압이면 도체자체의 저항이 적어야 많이 흐른다는 당연한 말씀을 한 것이다.

1831년엔 영국의 M. Faraday, 미국의 J. Henry는 동시에 전자유도법칙(현대의 전기전자기기의 기본원리 중 하나)을 발표하면서 경쟁을 하다가 Henry는 직류전동기를 먼저 만들어버렸다.
 
아마도 원자재가 미국에 많았던 모양이다.
 
연이어 1년 후인 1832년엔 불란서에서 전동기원리의 가역개념인 직류발전기를 만들고, 뒤떨어 졌다고 생각하던 아이어랜드의 성직자겸 과학자인 N. Callan은 지렛대원리인 변압기를 발명하여 50여년 후에 천재과학기술자인 N. Tesla가 오늘의 송-배전기술 발전에 크나큰 공헌을 할 수 있게 했다.

한편, 극심한 경쟁의 다른 장소에서는 전기통신의 싹이 트기 시작한다.
 
한 10여 년의 성숙기를 거친 후에 1844년 미국의 S. Morse는 모르스 부호로 전기통신의 문을 열었다.

경쟁에서 빠질 수는 없다고 생각한 용감한 벨지움 엔지니어 F. Nollet는 1850년에 교류발전기를 발명하여 오늘날의 모든 움직임의 원동력을 제공케 한다.

같은 벨지움 과학자 C. Bourseul에 이르러 전화통화가 가능함을 보여준다.

한편 비교적 조용하던 스코틀랜드의 C. Maxwell은 근대 통신의 기초인 본인 이름의 전파방정식을 큰 소리로 발표한다.

원래 발명, 발견 등 과학의 발전은 예외 현상도 많은 법이다.

1873년 잘나가는 오스트리아 수도 빈 박람회에 벨지움 과학자 Z. Gramme은 직류전동기를 출품하여 신나게 설명 하던 중 반대결선으로 직류발전기가 돼서, 가역반응을 실증하는 값진 경험을 하는 쾌거 를 이룬다.

등대에는 강한 불빛이 생명이다. 최초의 등대에 전기가 사용된 것은 1856년 영국 해안으로 되어 있다.

20년이 흐른 뒤, 1876년 러시아 엔지니어인 P. Yablochkov 전기 탄소 아-크 전등을 환하게 밝히며 등장한다.

거의 동시대에 불란서 파리에는 전기가로등이 등장한다.

1879년엔 T. Edison이 잘 안 끊어지는 필라멘트를 사용한 백열등을 선보인다.

한편 모르스 이후 30여 년 즈음 1876년에 누구나 다 아는 스코틀랜드 Alexander Graham Bell이 전화기를 발명해 주어 우리가 지금도 끼고 산다.

세계적인 Bell Lab.이란 연구소 이름은 이 사람의 이름을 따다 지은 것이다.

호랑이는 가죽을,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기는 대표적인 예다.

또한 전기통신은 이태리 발명가 G. Marconi가 끝장을 낸다.

마르코니는 19세기 말년인 1900년과 20세기 초년인 1901년에 각각 라디오 방송과 대서양-대륙 간 방송에도 성공한다.
 
통신 산업은 조금 쉬는 듯 했으나 1928년에 텔레비전 시험 방송이라는 크디큰 대문이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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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두 그림에서 보듯이, 과학기술은 어느 특출한 천재 혼자서 뚝딱뚝딱 만든 것은 드물고 과거의 연장인 현재에서 성공의 업적이 이루어짐을 알 수 있다.

지면관계로 상술할 수는 없지만 20세기의 괄목할 발전의 견인차는 전력 · 전자 · 통신 분야를 거론함에 의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여기서도 2극 진공관에서 정류소자인 다이오드를 거쳐 LED-OLED 등으로 발전되었음을 익히 알고 있다.

이 분야의 공적은 지금은 이름이 바뀌었으나 미국 Bell Labs.와 Texas Instrument의 과학자와 엔지니어들의 공을 안 들 수는 없다.

우리나라 고등학교나 대학과정에서 이처럼 중요한 과학 기술사나 자연과학역사를 가르치는 학교들이 얼마나 있을까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