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VIE IN TECH - 판타지와 과학 사이의 진실
섀도우 헌터스
해럴드 즈워트 감독에 릴리 콜린스, 제이미 캠벨 바우어 등이 주연한 이 영화는, 예전에 큰 인기를 끈 바 있는 ‘해리포터’와 ‘트와일라잇’ 시리즈를 합쳐 놓은 듯한 느낌을 받는다.
주인공들이 ‘악마들을 처단하는’ 특별한 능력과 임무를 부여받은 존재들이라는 점은 해리포터의 마법사들을 연상케 하고, 뱀파이어와 늑대인간들이 등장하고 남녀 간의 삼각관계 등이 포함된 하이틴 판타지 영화라는 점은 트와일라잇 시리즈와 유사하다.
SF가 아닌 판타지 영화이므로, 영화의 과학기술적 측면들을 엄밀히 거론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따를 수도 있겠지만, 마법이나 판타지적인 장면들을 현대 과학과 비교해가면서 살펴보는 것도 나름의 의미가 있을 듯싶다.
기억의 삭제와 조작이 가능할까?
뉴욕에 사는 평범한 소녀 클레리(릴리 콜린스 분)는 우연히 만난 청년 제이스(제이미 캠벨 바우어 분)를 통해 자신과 그가 특별한 능력을 지닌 악마 사냥꾼, 즉 섀도우 헌터임을 알게 된다.
흑마법사, 뱀파이어, 늑대인간 등의 이른바 ‘다운월더’와 악마로부터 인간의 세계를 보호하는 임무를 부여받은 혼혈천사 종족인 섀도우 헌터들은 클레리의 어머니가 봉인한 모탈잔의 행방을 찾는 와중에 온갖 위험을 겪게 된다는 게 이야기의 흐름이다.
영화에서 클레리의 어머니는 딸에게 가혹한 짐을 넘겨주고 싶지 않아, 주술사의 강력한 주술을 이용하여 어릴 적 클레리의 일부 기억들을 삭제하거나 조작하는 대목이 나온다.
다른 국내외 영화들에서도 주술사나 점쟁이 등이 사람들의 특정 기억을 바꾸어 놓거나, SF영화 ‘페이첵’에서는 기술 보안을 위하여 중요한 개발 프로젝트를 끝낸 엔지니어의 해당 기억을 없애는 장면 등이 등장하는데, 실제로 이런 일들이 가능할까?
주술사나 마법사가 아닌, 과학기술의 힘을 이용하여 기억을 통제하려는 연구는 그동안 많이 이루어졌고, 뇌과학의 발달에 따라 기억의 메커니즘도 상당히 많은 부분이 규명되고 있다.
사람의 뇌에서 기억에 관여하는 곳은 ‘해마(Hippocampus)’라 불리는 부분과 이와 연결된 신경세포 뉴런인데, 사람의 뇌에는 뉴런이 1,000억 개 정도가 있다.
또한 뉴런과 뉴런이 연결되는 구조를 ‘시냅스’라 하는데, 1개의 뉴런이 1만 개의 뉴런과 연결돼 신경정보를 주고받으므로 약 1,000조 개의 시냅스가 뇌 속에 존재하는 셈이다.
기억은 바로 이 시냅스를 통해 이뤄진다.
기억력이 좋은 것은 정보를 전달하는 뉴런 쪽에서 신경전달물질이라는 화학물질을 잘 분비하고, 정보를 받는 뉴런 쪽에서 수용체라 불리는 단백질을 잘 발현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과학자들은 이러한 시냅스의 정보 흐름을 잘 연구하면 기억 장애를 치료하거나 기억을 조절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최근에는 미국의 연구팀이 단기기억이 장기기억으로 옮겨가는 메커니즘을 규명했다고 발표한 바 있다.
뇌 앞부분에 위치한 전전두엽(mPFC)의 신경세포가 특정 단기기억을 선택해 장기기억으로 강화시키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또한 원하지 않는 장기기억을 지울 수 있는 ‘기억결정 단백질(eIF2알파)’을 찾아내기도 하였는데, 이 단백질을 강화시키면 장기기억을 저해하게 되기 때문에, 나쁜 기억 등을 지울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꼭 이처럼 뇌의 단백질과 시냅스를 조절하지 않더라도, 사람의 기억 등을 조작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고 실제로 행해지기도 한다.
즉 특정 사진을 보여주면서 과거에 일어났음 직한 조작된 기억의 이야기를 들려주면, 상당수가 그 기억을 실제로 믿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또한 한때 상당한 인기를 끌었던 이른바 ‘전생 퇴행요법’, 즉 최면을 통해 전생 체험을 유도하는 것 역시 실제 전생의 모습을 기억해내는 것이 아니라, 최면이 긴장을 풀어 주고 몸과 마음을 편안하게 해 줌에 따라, 최면술사의 암시대로 환각을 이끌어낼 뿐이라는 주장이다.
전생까지 가지 않더라도, 최면을 통해 이끌어 낸 어릴 적 기억조차도 많은 부분이 허구인데, 최면에서 만들어진 기억들은 너무나 생생하기 때문에 당사자는 그것을 기억이라고 굳게 믿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순간적 공간 이동
이 영화에서 또 하나 눈길을 끄는 부분은, 섀도우 헌터들이 이른바 ‘포탈’을 통하여 가고 싶은 곳으로 순식간에 이동하는 대목이다.
‘스타트렉’ 시리즈 등 다른 SF영화들에서도 이와 유사한 순간적 공간 이동 장면들이 간혹 등장한다.
이 영화에서 포탈을 통한 이동은 마치 ‘웜홀’을 통한 우주여행과 유사해 보이는 면이 있다.
웜홀이란 블랙홀과 화이트홀을 연결하는 우주의 시간과 공간의 벽에 생긴 구멍으로서, 시공간의 두 곳을 잇는 좁은 통로이다.
이론적으로는 웜홀을 통한 빠른 여행이 가능하다고 한다.
그러나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 등 주장에도 불구하고, 우주의 웜홀이 아직까지 발견된 적은 없다.
또한 설령 웜홀이 있다 해도 광대한 우주여행에서나 가능한 것이지, 지구상에서의 이동에는 이용하기 더욱 어려울 것이다.
고대의 선인들이 썼다는 축지법과 유사한 ‘워프 기술’도 있는데, 이는 공간을 접어서 긴 거리를 한순간에 날아가는 방식이다.
물론 이 역시 공간을 마음대로 접기가 어렵거니와, 공간이 휠 정도면 광속에 가까운 속력을 내야하기 때문에 아직은 적용 가능성이 크지 않다.
미시적 세계인 양자역학의 세계에서는 순간이동을 실현하는 이른바 ‘양자원격전송’이 물리학자들 사이에서 활발히 연구되고 있고, 몇 년 전에는 광자를 전송하고 복사하거나 원자 하나를 원격 전송하는 실험에 성공하여 순간이동 기술의 실제 가능성을 열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런 방법으로 사람을 이동시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현재 기술로는 사람의 정보를 읽어 들이고 전송하는 데에만 최소 3억 년 이상 걸릴 것이며, 실제로 이동시키는 것은 더욱 난제가 많기 때문이다.
순간이동은 SF나 판타지 영화에서만 가능할 뿐, 아직은 무척 요원한 꿈이라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