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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의 열쇠 - 탈추격형 패러다임의 산학협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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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세기 이후 모든 국가들은 산학협력이라는 코드를 통한 시너지 효과 창출과 혁신성을 중요한 국가 성장 잠재력으로 주목하였다.

왜 그럴까? 대학의 우수한 교육, 연구역량, 인력양성 없이 기업과 국가의 지속발전이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대학 역시 정부와 기업의 지원 없이는 성장할 수 없는 교칠지교(膠漆之交)의 관계이기 때문이다.

지식기반사회의 진입은 모든 사회의 조직간 상호연계성과 융합의 가치를 더욱 증대시키고 있다.

우리나라도 1990년대 이후 선진국의 산학협력 모델을 도입·적용하기 위해 정부 주도로 산학협력단, 학교기업, 협동연구소 등 산업교육진흥 및 산학협력 촉진에 관한 법률 제정과 함께 산학협력중심대학사업, 기술이전 전담조직(TLO) 등의 다양한 재정지원사업과 산학협력형 계약학과, 주문형 교과과정, 현장실습 학점제와 같은 산학밀착형 학사운영체제가 도입되기도 했다.

하지만 그 결과는 어떠한가? 정부주도의 정책적 노력에도 불구하고 대학과 기업 간의 수요공급의 불균형과 상호이해의 부족으로 형식적 성과에 기울고 있다는 것이 중론이다.

예를 들어 현재 추진되고 있는 지역 혁신 시스템과 연계된 산학협력 사업의 경우, 지역경제와의 내용적 연계성이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것이 대체적인 평가이며, 다소 관점의 차이가 있지만 현재 기업과 대학 간의 산학협력 수준과 성과에 대해 그다지 긍정적이지 않다.

이에 대해 다양한 원인에도 불구하고 다음과 같이 두 가지의 관점을 강조하고자 한다.
 
첫째, 우리나라의 성공적 산업발전 과정이 가져온 제도적, 정책적 관성이다.

우리나라의 산업화 과정에서 정부는 선택과 집중의 원리에 따라 특정 산업 분야와 기업을 집중 지원정책을 추진하였다.

이와 같은 정책기조에 필요한 연구개발능력 확충을 위해 정부출연연구소 설립, 운영과 함께 우수한 인력양성을 위한 연구중심대학 정책이 추진된 바 있다.

교육에 대한 열망과 성실함에 바탕을 둔 우수한 인적 자원, 선진국의 기술을 빠르게 모방하고 습득한 학습 능력, 세계의 국제적 분업 구조에의 성공적 진입을 바탕으로 한국의 산업과 기술력은 몇몇 분야에서 세계적 수준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소위 추격형(Catch-Up) 패러다임에서 이러한 요인들은 대단히 효율적이고 효과적인 기술혁신 전략이 되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이러한 성공 사례는 1990년대 이후의 기술 패러다임 전환에 있어서 오히려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민간 부문의 혁신 주체들, 즉 기업과 대학들 사이의 실질적인 수요와 문화를 간과한 채 진행된 정부 주도의 자원 배분과 정책적 이니셔티브는 기업과 대학들 사이의 수평적이고 혁신적인 협력 네트워크를 만드는 데 오히려 방해가 된다는 지적이 많다.

둘째, 기업과 대학이 지금까지 상대를 협력과 경쟁의 파트너로 인식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스스로를 매력적인 존재, 혹은 좋은 파트너로 만들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 해 왔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기업들은 대학을 단순히 필요한 인력을 공급받거나 기초 연구를 탐색하는 인프라 수준으로 인식해 온 것이 사실이다.

마찬가지로 대학 역시 기업의 실제 수요나 요구에 대해 크게 고려하지 않아 왔다.

실제로 추격형 패러다임에서는 대학과 기업의 이 같은 기능적 역할 분담이 크게 문제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앞서 성공한 모델을 보고 움직이는 것이므로 시행착오의 부담이 덜한 상태에서 가장 효과적인 역할분담체계를 운영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선행 모델이 없는 상태에서, 게다가 시장과 기술의 불확실성이 큰 상태에서 이와 같은 기능적, 모방학습의 전략이 유효할까? 그렇지 않다.
 
전 세계에 수평적인 조직 간 혁신 네트워크의 모범이 되었던 미국 실리콘밸리의 성공 요인은 혁신 주체들 사이의 자발적인 상호교류와 다양한 협력활동이 작동할 수 있는 구조를 구축했다는 것이다.

단순히 이들이 공간적으로 모여 있었던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이들 사이에 공유되거나 교환되었던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즉, 단순히 사람이나 물질이 교환된 것이 아니라 아이디어와 신뢰가 교환되었던 것이다.

이제 한국의 기업과 대학은 세 가지를 공유할 준비를 해야 할 것이다.

첫째는 서로의 목표와 해결해야 할 과제를 공유하는 것이다.

목표를 공유하지 않는다면, 협력 관계는 성립될 수 없고 성립된다고 하더라도 성과를 거둘 수는 없을 것이다.

둘째, 서로의 이익을 공유할 수 있어야 한다.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지 않는 파트너와 일할 수 있겠는가?

정당한 이익의 공유는 상호 시너지 효과를 높일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임이 이미 잘 알려져 있다.

셋째, 인적 자원을 공유할 수 있어야 한다. 사람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자산이다.

소통과 융합의 출발이 된다. 다양한 형태의 인적 자원 교류가 활성화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 사회는 이제 탈추격형(Post Catch-Up) 단계에 진입하고 있다.

다른 누구를 좇는 것이 아닌 우리 스스로 길을 만들고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창의와 융합, 지속가능성, 공존의 가치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지고 있는 것이다.

기업과 대학이 서로에게 필요하고 의미 있는 존재가 될 때, 그러한 관계를 바탕으로 탈추격형 산학협력의 새 지평이 열릴 것이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