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 - 새로운 가치창출을 위한 기술혁신환경 조성의 필요성
< 기술과 경영 >에서는 지난 6월호부터 ‘미래사회변화에 따른 우리나라 기술 및 사업에 대한 파급효과’를 3회에 걸쳐 다루고 있다.
지난 6월호에선 새롭게 등장하는 혁신패러다임의 핵심 개념을, 7월호에는 각 산업영역별 미래전망을 담았다.
이번 8월호에서는 이러한 혁신을 가능하게 만드는 환경과 시스템에 대한 분석이다.
현대의 기술혁신은 단순히 기술적 요소만으로 설명될 수 없는데, 혁신활동이 주체(Actor)와 이 주체들의 활동(Activity)이 상호 연결되어 영향을 주고받는 이른 바 시스템 문제이기 때문이다.
즉 기술을 둘러싼 정치·사회·문화·제도 등과 다양한 환경에 대한 전일적인 접근(Holistic Approach)이 필요하다.
이번 호에서는 기술혁신시스템에 대한 소개와 핵심 세부 이슈에 대한 미래전망을 다루어 본다.
들어가며
영국의 경제지 이코노미스트는 이번 7월 27일자 기사에서 BRICs국가가 2000년 대 초반에 누렸던 빠른 경제성장을 더 이상 이룰 수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IMF 자료에 따르면 2007년에 14.2%라는 경이적인 성장을 이루어낸 중국은 2013년에는 7.8% 정도에 머물 것이고, 인도는 5.6%, 러시아와 브라질은 2.5% 성장에 그칠 것이라고 예측 했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지난 28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우리나라 2분기 경제성장률은 전 분기 대비 1.1%로 2011년 1분기(1.3%) 이후 9분기 만에 1%대로 올라섰다.
전문가들은 소비심리의 회복과 기업의 수출과 투자 확대 등에 힘입어 2분기 경제가 성장한 것으로 보고 있지만 낙관하기 힘들다고 한다.
저성장 기조가 장기화될지는 아직 불확실하지만 사회 변화와 경제 성장의 핵심 역할을 했던 한국형 기술혁신시스템의 대대적인 업그레이드가 요구되고 있다.
1982년 특정연구개발 사업을 시작으로 우리나라 연구개발은 괄목할 만한 성과를 이룩하여 왔다.
하지만 국가연구개발 관련 문제가 본격 제기된 2000년대 이후 같은 문제가 지속적으로 제기되는 것으로 보아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한 시점에 도달한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고급 연구인력문제는 제기된 지 20년에 가깝지만 전망은 나빠지고 있다.
모 일간지 조사에 따르면 72%에 달하는 국내 연구자가 기회가 주어진다면 한국을 떠나고 싶다고 의사를 표명했으며, 68%에 달하는 재외 한인과학자가 귀국의사가 없다고 조사에 응답하였다.
2008~2011년 과학 올림피아드 수상자 중 대학에 진학한 118명의 29.7%(35명)가 의대로 진학하여 영재급 과학기술인재 양성에 한계를 보이고 있으며, 국가 ‘싱크탱크(Think Tank)’라고 할 수 있는 과학기술 분야 27개 출연연의 비정규직 비율이 평균 48.8%에 달한다.
지속적인 연구개발 투자 확대에도 불구하고 정작 현장의 연구자는 한계를 느끼고 있는 것이다.
지난 6월호에서 KAIST 정재용 교수는 지금까지 우리나라의 주요한 성장전략으로 작용했던 ‘추격형 혁신시스템’이 새로운 경제 환경을 맞아 그 한계가 드러내고 있음을 지적하였다.
즉 과거의 혁신패러다임으로는 현 시스템 자체의 효율성 저하와 함께 새롭게 대두되는 대내외 환경 변화에 의한 위험과 기회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어렵다는 판단이다.
시스템 관점의 접근 필요성
역사상 시스템(국가, 문명)의 성장과 몰락을 연구해온 미국 유타대 J. Tainter 교수에 따르면, 한 시스템에 새로운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사회 구성원은 이를 해결하기 위한 새로운 제도를 지속적으로 도입한다.
하지만 이는 공짜가 아니다. 새로운 제도를 유지하기 위해 사회가 지불해야 하는 비용이 발생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각 부처가 연구개발 관련 산하 전문기관을 설치하면서 전문성과 효율성을 높이고자 하지만, 어느 시점이 지나면 기술·산업 영역간의 중복성, 기관 자체의 경직성 등으로 인해 한계 효용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지속적으로 문제는 발생하고 어느 순간 이후에는 사회는 기존 시스템을 유지하는 것에 모든 자원을 소모하게 된다.
특정 임계점이 지나면 더 이상의 문제가 발생하더라고 사회는 이에 대처할 수 있는 자원이 없어 결국은 몰락을 맞게 된다.
같은 맥락에서 우리나라 기술혁신시스템의 진화를 분석해 보면, 자원 투입의 양적 증가가 곧바로 성과 증가에 비례하지않는 상황에 이른 것으로 분석이 가능하다.
지속적으로 도입되는 새로운 제MANAGEMENT도 또한 기존 문제를 해결하면서 등장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장기적으로는 해결책 이라기보다는 장애물로 작용할 가능성이 점점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미국 남가주 대학의 이안 미트로프 교수와 아브라함 실버스 교수는 ‘더럽고 썩은 전략(Dirty Rotten Strategies)’이라는 책에서 올바른 질문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많은 경우 의사결정자들은 잘못된 가정에 기반을 두어 핵심 문제를 잘못 파악하면서 해법을 도출하려고 오히려 문제해결에 실패하는 것을 지적하고 있다.
제대로 된 질문에서 잘못된 해답을 도출할 경우 개선의 여지가 있지만, 잘못된 질문을 하면서 정확한 답을 내려고 하는 것은 아예 대책이 없다고 까지 지적하고 있다.
전문가가 된다는 것은 특정한 해결방법론을 배운다는 것으로, 익숙한 문제, 즉 비슷한 원인에 의해 발생되는 간단한 문제(Simple Problem)나 복잡한 문제(Complicated Problem)에는 효용이 있으나, 새로운 패러다임에서 발생하는 문제(Complex Problem)에는 적용이 불가능하다고 안다.01
우리나라의 기술혁신 관련 많은 문제는 바로 구조적인 시스템 문제(Systemic Problem)이다.
단순히 몇몇의 새로운 부분 정책을 추가하거나 최적화하는 방식으로는 근본적인 해결이 어려울 뿐만 아니라 문제를 더 악화시킬 가능성 높다.
기술혁신시스템 개념 소개
현대의 기술혁신은 단순히 기술을 보유하는 것만으로는 새로운 가치 창출이 자동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아래 표에 예시되어 있는 것처럼 기술혁신은 기술 그 자체 외에 여러 가지 사회 경제적 환경에 긴밀한 연관되어 있다.
공급 측면에서 금전 투입 또는 비금전 투입 외에도 혁신수요 창출, 제도·환경의 조성 등 수요 측면이 균형 있게 고려되어야 한다.
기술혁신 결과는 단일 조직 안에서 뿐만 아니라 각 국가가 가지고 있는 혁신 관련 시스템 전체의 효율적 활동의 총합이다.
바꾸어 말하면 기술혁신의 이해는 혁신과정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주체와 주체들의 활동, 주체간의 상호 작용, 그리고 배경을 모두 고려한 시스템차원의 접근(Systemic Approach)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시스템 분석의 문제는 곧 범위 설정과 관계가 있는 데 분석 범위/대상 및 목적에 따라 여러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03 04
먼저 기술혁신시스템(TS: Technological System)은 특정 경제/산업적 환경과 제도 하에서 어떤 특정 기술(시스템)의 생산·확산·활용을 둘러싼 요소들의 네트워크를 의미한다.
예를 들면 원자력기술시스템을 들 수 있겠다.
산업분야별 혁신시스템(SSI: System of Sectoral Innovation)05은 특정 산업 수준에서 기술패러다임의 변화를 관찰·분석하는 것을 말한다.
SSI 에서는 특정 산업을 둘러싼 조립업체, 사용자업체, 부품/소재 공급업체, 협회 등의 민간부문과 정부, 대학, 공공연구기관 등과의 상호 인과관계를 규명하는 것을 의미한다.
예로 산림산업을 들 수 있다.
국가혁신시스템(NSI: National System of Innovation)은 분석 범위를 국가 수준으로 확장한 것이다.
1987년 프리만(C. Freeman)은 국가혁신체계를 ‘새로운 기술을 획득하고 개량하며 확산시키기 위하여 관련 기술 행위와 상호작용을 수행하는 공공 및 민간 부문 조직 간의 네트워크로 정의한 이 후 활발한 연구가 진행되어 왔다.
우리나라에서 참여정부 시절 과학기술혁신시스템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된 바 있다.
8월호 시리즈는 현재 우리나라 기술혁신시스템의 중요 이슈를 진단하고 전망함으로써 새로운 해결방안을 모색하고자 하는 문제의식은 여기서 출발했다.
기술혁신시스템과 관련한 중요한 이슈 중에서 본 시리즈에서는 총 6편의 글을 섭외하였다.
먼저 민간 부문 R&D에 대해서는 LG경제연구원의 장성근 연구위원이 ‘양손잡이 R&D 경영’ 이라는 주제로 사업밀착형 연구개발과 기술중심형 연구개발사이의 역동적인 균형이 중요함을 강조하고 있다.
연구재단 김현철 박사는 신정부 들어서 제기된 사회현안 해결, 신산업을 통한 일자리 창출 관련 공공부문 연구개발을 소개하고 있다.
과학기술정책연구원 홍성민 박사는 미래 과학기술인재가 갖추어야 할 역량은 어때야 하는지, 이러한 역량을 갖추도록 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노력이 필요한 지에 대해 제시하고 있으며, 손수정 박사는 소유를 넘어 공유의 시대로 움직이는 지식재산 환경의 움직임을 소개하면서 지식재산이 갖는 기능, 가치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함을 주장하고 있다.
한국산업기술진흥원 최병욱 단장은 주요국의 국제기술협력 정책방향과 함께 우리나라의 국제기술협력 미션을 제시하였으며, 경기과학기술진흥원 이연희 박사는 지난 25년 여간 지역혁신정책 역사 속에서도 정부주도의 정책추진과 지자체의 역할을 제대로 찾지 못함으로 해서 정작 지역혁신환경을 제공해야 할 지자체가 아직까지도 자생능력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과 함께 중앙정부가 버려야할 창조적 포기를 소개하고 있다.
제한된 지면으로 인해 기술혁신시스템 요소 중 꼭 다루어야 할 핵심 이슈들이 빠진 것도 있고, 각 주제별로 심도 있는 분석과 전망에 한계가 있었음을 고백하면서 추가 논의의 시발점이 되었으면 한다.
시리즈를 마치며
지난 6월호부터 3개월에 걸쳐 < 기술과 경영 >에서 미래사회 변화따른 우리나라 기술 및 사업에 대한 파급효과를 살펴보았다.
가장 어려웠던 부분은 ‘미래’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이다. 개인별로, 부문별로 가지고 있는 ‘미래’에 대한 이미지는 매우 차이가 있음을 느끼게 된다.
두 번째로 전문 필자를 섭외하는데 매우 어려웠다.
하지만 매우 큰 주제를 짧은 기간에 4쪽 내외로 다루다 보니 의미 있는 글을 소개하는 데 많이 부족함이 있었다.
비전(Vision) 이라는 말이 진부하게 들릴 수 있겠지만, 무엇인가 변화를 원한다면 반드시 필수 불가결한 것이다. 세네카는 ‘가는 목적지 항구를 모른다면 불어오는 바람이 순풍인지 역풍인지를 모른다’고 했다.
하지만 비전만으로는 부족하다. 목적지 항구에 안전하게 가기위해서는 ‘전략’이 있어야 하고, 구체적인 행동이 있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구성원 전체의 열정이 담겨야 한다.07
스탠포드 경영대학원의 제프리 페퍼 교수와 로버트 서튼 교수는 ‘아는 것과 행동하는 것과의 차이(Knowing and Doing Gap)’이라는 책을 통해 유수의 기업들이 컨설팅, 교육과 훈련 등에 엄청난 돈을 지불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성과로 이어지지 않는 것을 지적하면서 지식의 문제가 아니라 실행의 문제임을 지적하였다.
좀 더 깊은 연구와 현장의 실천이 있기를 기대하면서 감사드린다.
01 전문용어로 교육된 무능(educated incapacity)라고도 한다.
02 Jakob Edler (2012) ‘compendium of evidence on the effectiveness of innovation policy intervention’, http://innovation-policy.net/news/
03 이공래 외(1999), ‘한국의 국가혁신체제’, STEPI 조사연구 98-01
04 이공래 (2000), ‘기술혁신이론 개관’, STEPI 정책연구 00-01
05 Franco Malerba (2002), ‘Sectoral systems of innovation and production’, Research Policy 31, p.247-264
06 Jochen Markard & Bernhard Truffer(2008), ‘Technological innovation systems and the multi-level perspective: Towards an integrated framework’, Research Policy 37, 596-615
07 고대 그리스인들을 이를 ‘그리스 삼각형(Greek Triangle) : 비전(Logos,λὀγος), 열정(Epithumia, ἐπιθυμία), 행동(Ergo, έργο)’으로 나타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