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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회 KOITA 기술경영인 하계포럼 - 특별강연

지식사회의 위기, 인문학에 기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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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표_ 이어령 중앙일보 상임고문


과학과 기술이 발달할수록 사람을 직접 대면하는 일보다 컴퓨터나 스마트폰을 이용해 간접적으로만 나는 일이 많아졌고, 그로 인해 인간관계가 점점 차가워지고 있다.

현대 과학 기술은 우리에게 편리함을 가져다 준 대신 따뜻한 감성과 관계의 소중함을 앗아간 듯하다.

지금, 인간성의 회복을 위해 인문학에 눈을 돌려야 할 때다.


생명화 시대의 기술

산업화 시대에는 우리들의 땀을 통해, 민주화 시대에는 피로써 사회의 발전을 이뤘다.

산업화와 민주화를 거치면서 자유와 평등을 얻었지만 그로 인해 잃어버린 것도 있다. 바로 눈물로 대변되는 우애, 생명권과 공감이다.

한국은 빠른 기간에 산업화와 민주화에 성공했지만, 그 사이에 사랑과 공감이라는 가치에 대해서는 조금 등한시해 왔다.
 
이제는 위로의 눈물, 공감의 눈물, 그리고 더불어 사는 감동의 눈물로 생명의 문명시대를 열어가야 한다.
 
소외계층에 사랑을 베푸는 등 잃어버린 생명에 입김을 불어넣으면 산업화와 민주화는 새로운 생명화 사회를 창조하게 된다.

과거에는 지혜, 지식, 정보, 데이터의 순으로 가치의 무게를 늘려갔다면, 생명화 사회에서는 데이터, 정보, 지식, 지혜 순으로 지혜에 가장 큰 가치를 둔다.

생명화 시대의 기술은 자연과 생물의 기술에서 배우는 바이오미미크리(Biomimicry)로부터 시작된다.

바이오미미크리를 이용한 사례는 아주 많다. 그 중 하나가 일본의 신칸센 기관차다.
 
초기 모델이 터널을 드나들 때마다 굉음을 내자 연구진은 물총새가 빠른 속도로 물 속으로 뛰어드는데도 물 한 방을 튀기지 않는 것을 떠올렸다.
 
곧 기관차의 전면 디자인을 물총새의 부리 모양으로 수정했고 예상대로 소음은 물론 공기저항이 줄어 속도가 더 빨라졌다.

에너지 손실도 최소화할 수 있었다. 연잎의 초발수 성질은 자동차 유리, 카메라렌즈 커버 유리, 특수 페인트 등에 활용됐다.


인문학과 과학이 만나는 디지로그

생명화 사회의 핵심은 디지털과 아날로그가 결합한 디지로그다.

디지로그는 단순히 디지털 기술에 아날로그 감성을 입힌 제품이나 마케팅을 의미하는 좁은 뜻이 아니다.

디지로그는 디지털과 아날로그 간 대립 체계를 해체하거나 그 경계를 관통하는 통합 개념이며 문명 현상을 담고자 하는 키워드다.
 
디지로그를 통해 인정과 사랑 그리고 감동과 행복을 나누는 세상을 구현할 수 있다.

얼마 전 인도의 한 엔지니어가 키보드나 터치패드 없이 손가락에 연결된 센서만으로 컴퓨터 화면을 늘리고 줄이는 기술을 선보였다.

이 기술로 손바닥에 전화 버튼을 띄워 전화를 걸 수도 있다.
 
디바이스와 사용자의 몸 사이의 거리가 사라지게 된 것이다.

사이버 세계와 아날로그의 실사회를 접합시키는 인터페이스에 엄청난 변화는 따뜻한 디지털 환경을 만들고, 디지로그의 빅뱅을 가져올 것이라 예상된다.

디지로그를 서로 다른 것의 조화라는 개념으로 보면 우리나라에도 오래 전부터 디지로그가 존재해 왔다.

석굴암이나 석탑의 비대칭 구조가 바로 그것이다.

일본 국보 제1호로 지정되어 있는 신라의 반가사유상은 앉은 것도 서 있는 것도 아닌 오묘한 자태로 일찍이 일본인의 마음을 사로 잡았다.

다른 나라에서 대칭이 되는 대립구조만 생각할 때 우리 민족은 새로운 것을 창조해낸 것이다.

전 세계를 강타한 싸이의 말춤을 비롯해 한류 현상에서 보듯 한국은 군사력이나 경제력으로는 중국과 일본을 능가할 수 없었지만 문화의 소통과 생명력, 그리고 그 공감의 힘에서는 10억 명 이상의 세계인에게 감동과 즐거움을 줄 수 있다.

지혜-감동-생명화로 연결되는 밈(Meme, 문화적 유전자)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한국의 신바람 문화 속에 숨은 엄청난 생명력을 경영, 정치, 과학기술 속에 끌어들인다면 더 큰 가능성을 세계에 확인시킬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