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경영성공사례 - 중장기 R&D에서 지속가능 우위를 창출한다
(주)효성기술원의 중장기 R&D 관리 사례
본지는 기술 및 제품의 개발과정이 매우 제한적으로 공개되고 있는 국내 기업환경에서 다른 기업의 성공프로젝트를 기술경영측면에서 살펴봄으로써 기업의 신제품 개발 프로세스에 도움을 주고자 2007년 8월부터 기술경영 성공사례를 게재해왔다.
이번 호에서는 (주)효성기술원의 중장기 R&D 관리 사례에 대해 살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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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저성장 추세 속에서 대부분의 국내 기업들은 ‘생존을 위한 긴축 경영’에 돌입하고 있다.
비교적 많은 시간과 비용이 투입되는 중장기 R&D를 축소하거나 없애고 단기 R&D에 집중하는 방법을 택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저성장 시대에 기업이 살아남기 위한 필수 전략으로 여겨지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 이런 전략을 썼던 많은 기업들은 아직도 위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반면, 불황 속에도 '중장기 R&D'를 확대했던 상당수 기업은 오히려 승승장구하고 있다.
1971년 국내 최초 민간 기업 부설연구원으로 설립된 효성 기술원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효성은 ‘불황에는 중장기 R&D를 줄인다’는 전통적인 공식과는 반대로 ‘불황에도 중장기 R&D를 지속한다’는 해법을 제시했다.
성장의 근간이 될 미래 유망 신사업에 대한 연구 기술을 끊임없이 확보하고, 2011년도에는 10대 핵심 기술을 바탕으로 섬유연구, 중합연구, 필름연구, 기능성재료연구, 전자재료연구의 5대 연구 그룹으로 개편해 신사업 창출에 주력하고 있다.
그 결과 2012년 100여 건의 특허 등록과 대한민국 기술대상 은상, IR52 장영실상, 국가녹색기술대상 등을 수상하는 성과를 올렸다.
결국 기업의 미래를 위해서는 ‘중장기 R&D’는 필수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중장기 R&D’ 과제를 선정하고 수행해 나가는 방법에 있다.
지금부터 효성 기술원의 사례를 통해 저성장 시대를 살아가는 기업이 나아가야할 길을 알아보도록 한다. 그림 1 >
저성장 시대 속에서 사라져가는 중장기 R&D
1) 기업에서 중장기 R&D가 사라지고 있다
Point_ 산업 분야를 불문하고, 대다수 기업들이 중장기 R&D 과제를 줄이고 있다.
바야흐로 저성장 시대이다.
IMF는 2013년 세계 경제 성장률을 3.5%(’13년 1월)에서 3.3%(’13년 4월)로 하향 조정했고, 우리나라 정부도 올해 국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3.0%(1월)에서 2.3%(3월)로 조정했으며, 한국은행(2.8%)과 한국개발연구원(3.0%) 등 주요 기관 역시 올해 국내 경제 성장률을 ‘3% 이하’로 전망하고 있다.
더욱이 이러한 저성장이 L자형으로 장기 지속될 것이라는 예측이 잇따르면서 중장기적 불확실성은 모든 기업들의 전제가 되고 있다.
여기에 2009년을 저점으로 약하게나마 회복세를 보이던 기업 순이익률이 2011년을 기점으로 대부분 다시 하향세로 돌아서면서 ‘살아남기 위한 긴축경영’은 기업들에게 당연시되고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긴축경영을 할 것인가? 이에 많은 기업들의 선택하는 첫 번째 방법이 중장기 R&D를 최소화하거나 중단하는 것이다.
올해나 내년 안에 성과를 낼 수 있는 단기 R&D 과제는 생존에 필수이지만 그 후를 내다봐야하는 R&D는 사치라는 데 의견이 일치하기 때문이다.
결국 단기 R&D만 남게 되고 부설 연구소의 독립 자체가 비용(Cost)으로 여겨지면서 기업 연구소가 자연스레 사업부 산하에 편입된다. 이익률이 지상 과제인 사업부에서는 중장기 R&D라는 말조차 꺼낼 수도 없다.
물론 기업의 미래를 위해 중장기 R&D에 노력을 기울이는 기업도 있다. 적지만 어떻게든 예산을 마련하고, 정부 국책과제를 수주하지만 결국 예산 부족이라는 현실에 부딪혀 중장기 R&D의 약화를 피하기는 어려운 상황에 놓인다.
어렵게 시작한 중장기 프로젝트는 재무제표가 악화되면 자연스럽게 중단된다. 성과는 없고 참여했던 인력들은 낮은 성과평가에 의욕을 잃어버리면서 중장기 R&D를 기획하려는 사람도, 수행하려는 사람도 사라지게 된다.
이것이 대부분의 기업에서 중장기 R&D가 직면하고 있는 현실이다.
2) ‘살아남은 후에 성장한다’ 안의 함정
Point_ 불황에 중장기 R&D 투자를 줄였던 많은 기업들이 결국 쇠락의 길을 걸었다.
기업의 논리는 명쾌하다. ‘일단 살아남자! 성장은 그 후이다.’
중장기 R&D는 지속적인 성장을 위해서 반드시 필요하지만 생존에 필수 조건은 아니다.
이런 이유로 저성장 흐름 속에 기업의 중장기 R&D는 갈수록 사라지게 되고 투자 또한 줄어든다.
그러나 현실은 전혀 다르다. 2008년 금융위기, 대부분의 글로벌 전자 기업은 ‘생존 후 성장’이라는 논리를 앞세워 중장기 R&D 투자를 줄여나갔다.
반대로 당시 삼성전자는 오히려 중장기 R&D 투자를 늘렸다.
총 R&D 투자규모도 5.9%(‘07년)에서 10%(’11년)으로 확대해 나갔다.
그 결과 차이는 뚜렷했다.
R&D 총 투자와 중장기 R&D 투자를 줄인 기업들은 살아남았지만 여전히 위기를 겪었다.
인텔은 모바일 시장을 놓쳤고, 서버 시장에서도 역공에 허덕이고 있다. 소니, 샤프와 같은 일본 전자 기업들은 말할 것도 없다.
반면 불황에 오히려 중장기 R&D 투자를 확대했던 기업들은 지속성장(Sustainable Growth)의 트랙을 달리고 있다.
물론 산업에 따른 차이는 있다. 산업의 핵심이 수주나 서비스로, 기술이 별다른 차별화 우위를 제공하지 못하는 산업은 ‘불황에도 중장기 R&D를 늘린다’는 지속성장 공식이 성립하지 않는다.
그러나 기술이 경쟁력의 핵심인 산업에서 중장기 R&D 축소는 예외 없이 더 큰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다.
3) ‘살아남기’와 ‘성장’의 두 가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중장기 R&D의 해법은 무엇인가?
Point_ 중장기 R&D ‘약화’는 불가피한
일이 아니다.
그렇다고 단지 수행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중장기 R&D를 일단 줄이고 보자는 전략은 결과가 좋지 않다. 물론 중장기 R&D를 수행하는 것만으로 부족하기는 매한가지다.
예를 들어 연구소 내부에서 중장기 R&D에 대한 합의가 충분하지 않을 경우, 어렵게 만들어진 중장기 R&D의 대부분이 좌초한다.
연구 테마는 불확실성이 높고, 예산은 충분하지 않으며, 사업부나 연구그룹에서는 핵심인력을 보내지 않으려고 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단기간의 가시적 성과에 대한 전사적 압박은 말할 것도 없다.
모든 연구원이 기피하고, 형식적으로 만들어진 중장기 R&D 과제의 성과는 어김없이 비용 낭비만 가져온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어떤 연구테마를 발굴하고, 어떻게 중장기 R&D 과제를 선정하며, 또 관리해야 할까? 경기 호황에는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던 일들이 불황에는 갑자기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되어 버리기도 한다.
‘생존’과 ‘성장’이라는 두 가지 목표는 결국 불황에도 대규모의 이익을 남기는 기업에게만 달성 가능한가?
우리는 ‘불황에는 중장기 R&D를 줄인다’는 전통적인 공식에 반해 효성이 제시하는 ‘불황에도 중장기 R&D를 지속한다’는 해법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다.
어떤 차이가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가? 그림 2 >
‘길게 갈’중장기 R&D 아이템을 찾아라
1) 효성 기술원식 접근법 첫 번째!
‘길게 갈’ 아이템을 찾는다.
Point_ 중장기 R&D 아이템의 조건 첫 번째는 ‘중장기적’ 성과 창출이 가능한 기술을 찾는 것이다.
우선 어떤 기술을 중장기 R&D 아이템으로 선정해야 할까? 평가기준은 다양하지만 이 가운데 빠지지 않는 기준이 있다.
매출에 미치는 영향과 이익률에 끼치는 영향, R&D 실현가능성이 바로 그것이다.
결국 회사에 대한 기여도와 성공 확률이 높은 기술을 선택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불황에는 이 기준들 앞에 한 가지 조건이 덧붙는다.
바로 ‘가급적 빠른’, 굳이 기간으로 따지자면 ‘3~5년 안에’ 성공할 수 있는 아이템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물론 수명주기가 짧은 업계에서는 3~5년도 충분히 ‘중장기’가 될 수 있지만 주기가 긴 업계에서는 이 기간 동안 차세대 성장 동력이 될 기술적 기반을 구축하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효성 기술원 R&D는 바로 이런 사실에 대해 지극히 상식적이지만 실제로 실행하기는 어려운 인식에서부터 출발했다.
중장기 R&D란 왜 해야 할까? 답은 간단하다. 중장기적인 성과 창출을 위해서이다.
바꿔 말하면, R&D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장기간 기업의 매출과 이익을 책임질 수 있는 기술을 선정해야 한다.
물론 실행은 어렵다. 허다한 중장기 R&D 과제가 기술개발에 성공하고도 수익 창출에 실패하며 아예 기술개발에서부터 실패하거나, 성공해도 경쟁자에게 성능이나 시기에서 밀리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오랜 개발과 사업화에 소요된 시간 후에 장기간 성과를 창출할지를 예측하는 일이 가장 어렵다.
이 모든 어려움 중에서도, 중장기 R&D를 100% 실패로 밀어 넣는 요인은 두 가지이다.
첫 번째는 ‘오래’ 갈 기술 자체를 찾으려고 하지 않는 것이고, 두 번째는 ‘길게’ 기술 개발을 하지 않는 것이다.
효성 기술원은 바로 여기에 주목한다.
사내의 역량이 높으면 높은 대로, 낮으면 낮은 대로 일단 최선을 다해 장기간 성과를 창출할 수 있는 기술을 찾는 것이다. 그림 3 >
2) 길게 갈 아이템들을 조합해 ‘길게 갈’ 사업을 구축한다
Point_ 중장기 R&D 포트폴리오는 중장기적으로 지속가능한 사업을 만들 수 있도록 구성한다.
개별 기술들을 선정하고, 개발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결국 이 기술들로 구성된 포트폴리오가 중장기적으로 제품, 크게는 사업이 되어야 하며 지속가능한 경쟁우위(Sustainable Competitive Advantage)는 그 과정에서 만들어진다.
지금의 효성은 이런 과정 위에 세워졌다.
세계 시장점유율 43%로 1위를 지키고 있는 타이어 코드, ‘13년 1분기에 섬유부분 영업이익이 대폭 증가한 세계 1위의 스판덱스 모두 중장기 R&D의 산물이다.
길게 갈 기술 → 길게 갈 제품 → 길게 갈 사업으로의 길을 오랜 시간 탄탄히 다진 끝에 경쟁자들이 무너뜨리기 어려운 경쟁우위의 장벽을 구축한 것이다.
효성 기술원의 미래도 이 길의 연장선상에 있다.
효성 기술원은 1)고기능성 섬유 2)광학필름 3)환경/에너지 소재 4)ENPLA/복합재료 5)전자재료라는 5대 신제품 축을 기반으로 R&D를 전개하고 있다.
수명주기가 짧은 제품이나 상호 연관성이 적은 제품은 극소수이다.
모든 기술과 제품이 수십 년, 백여 년의 경쟁우위를 목표로 선정된 뒤, 긴 안목으로 꾸준하게 추진되고 있는 것이다. 그림 4 >
3) 꾸준히, 길게 R&D에 투자한다
Point_ 긴 안목의 R&D 투자는 기본이다.
길게 갈 기술과 이 기술로 가야 할 제품 및 사업을 찾았다면 그다음 단계는 무엇일까?
R&D에 들어가기 전에 반드시 해야 할 한 가지가 남아 있다. 바로 긴 안목의 투자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장기간 경쟁우위의 바탕이 되는 기술이 불과 2~3년 안에 개발될 확률은 지극히 낮다.
소재·화학과 같이 장시간의 실험과 시행착오, 개선이 요구되는 분야는 더욱 그렇다.
성공을 위한 가장 기본적인 조건의 하나는 결국 투자다.
물론 R&D 효율성에 잣대를 들이대지 말라는 의미는 아니다.
투입 대비 성과를 향상시키려는 노력은 항상 필요하다.
그러나 장기간에 가능한 연구개발이 단기간에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투자를 중단하는 것을 효율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효성 기술원 R&D의 또 하나의 강점은 단순하지만 지극히 당연한 이 원칙을 지키는 것이다.
중장기 R&D의 핵심
- Great Idea를 살리는 연구소
1) Good idea가 Great idea를 죽이지 않는 문화를 구축한다.
Point_ 설익은, 하지만 포텐셜 있는 아이디어를 살려야 한다.
중장기 R&D의 현장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시발점, 결국 아이디어다.
그리고 길게 갈 제품과 사업의 기반이 될 기술을 찾기 위해서는 ‘Great idea'가 필요하다.
물론 다소의 지속시간과 성능 향상에 그치는 ’Good idea'로는 선도 기업에 대한 기술종속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모든 공정을 원리도 모른 채 도입하고 시동만 거는 턴키(Turn key) 방식 기술 수입, 유지보수 정도만 가능한 라이센싱(Licensing)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현장에서 가장 어려운 일 중 하나가 ‘Great idea’를 살리는 것이다.
Great idea의 대부분은 설익고, 허점투성이다.
오랜 경험과 풍부한 지식을 지닌 연구원들의 관점에서는 ‘말도 안 되는’, ‘어리석은’이라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다. 결국 오랜 경험과 풍부한 지식에서 나온 ‘Good idea’가 많은 ‘Great idea’를 대신한다.
하지만 Good idea의 한계는 명확하다.
성공률은 높지만 경쟁자가 모방하거나 따라잡기 쉽기 때문에 장기간의 경쟁우위라기보다 단기간의 경쟁우위를 창출하는데 그쳐 버리는 게 대부분이라는 점이다.
효성 기술원의 중장기 R&D는 여기에서 차이가 있다.
선임 연구원과 팀장, 임원이 Great idea를 장려해 미숙하지만 가능성이 있는 아이디어들을 최대한 살리려고 한다는 것이다.
실제 효성 내에서는 이런 R&D 문화 안에서 젊은 연구원들의 아이디어가 프로젝트화될 확률이 높다.
그리고 여기에 고무된 베테랑 연구원들도 새로운 아이디어를 창출하려 애쓴다.
R&D 조직 전체가 ‘Good idea'에서 ’Great idea'로 변화해 나간다. 중장기 R&D를 위한 현장의 발화점이 멋지게 만들어져 있는 것이다.
2) 아이디어를 살리기 위한, 또 하나의 핵심은 인프라다.
Point_ 인프라 없이는 아이디어를 검증할 수도, 살릴 수도 없다.
화학, 소재와 같은 공정 기반 R&D에서는 사람, 시간, 아이디어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인프라이다.
어떤 기술적 아이디어도 실험 없이 완성하거나 검증할 수 없다.
PP(폴리프로필렌) 공정과 같이 수년간에 걸쳐 수백만 톤을 생산하는 공정기술이라면 시험생산(Pilot) R&D 인프라가 클수록 유리하다.
실제 공정 적용 시에 발생하는 다양한 문제들이 결국은 규모(Size)와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Great idea는 많은 면에서 불확실성을 가지고 있다. 대부분의 문제가 해결되어 있거나, 예측 가능한 Good idea와는 위험의 크기 단위 자체가 다르다.
따라서 생각할 수 있는 모든 문제에 대한 엄격하고 체계적인 시험과 검증이 필요하다.
효성 기술원은 여기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한다.
‘생산 공정에서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우리는 도박사(Gambler)가 아니라고. 만에 하나, 신기술을 적용했다가 공정 자체를 멈춰야 한다고 생각해 보세요. 책임은 결국 연구소가 아니라 생산에 있습니다. 결국 새로운 기술이 실험실에서 아무리 완벽하게 검증됐다고 하더라도, 생산에서는 해소할 수 없는 불안이 있습니다. 결국 설득을 위해서는 기술적 완성도를 최대한 높여야 하고, 인프라는 불가결합니다.’
이러한 이유로 효성 기술원은 시험생산 시설뿐 아니라, R&D 인프라를 구축하는데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
폴리케톤(Polyketone)을 위한 1,000톤 규모의 시험생산 시설을 비롯한 다양한 인프라가 계속해서 구축되고 있으며 이 인프라들은 Great idea들의 성장을 위한 토양이 되고 있다.
3) DH 공정 백금촉매로 살펴보는
‘효성식 중장기 R&D의 길’
Point_ 긴 안목으로 백금촉매(기술), DH공정(제품), DH공정+프로필렌(사업)으로 이어지는 중장기 R&D의 길을 구축한다.
프로필렌을 생산하는 DH공정(프로판탈수소 공정)은 美 UOP社가 거의 독점하고 있다.
국내외의 PP(폴리프로필렌) 생산업체들도 대부분 UOP의 공정을 사용하고 있으며 효성도 예외는 아니다.
당연히 공정에 사용되는 촉매도 UOP 제품을 쓴다.
이 공정에서의 국내 기술력이라고 하면, 표준적으로 1년 8,000시간 지속되는 공정을 수백 시간 늘리는 오퍼레이션(Operation) 기술 정도에 불과하다. 기반 기술이 없는 것이다.
하지만 효성이 이런 기술 종속에서 벗어나, 중장기적으로 DH공정 자체에서 지속가능한 경쟁우위를 확보하기 위해 시발점으로 삼은 기술이 DH공정에 사용되는 ‘프로판탈수소 반응용 고효율 백금촉매 기술’(HDC-100~300) 시리즈이다.
보통 수년 동안 효성의 DH공정에 소요되는 촉매는 수백억 원에 이른다. 새로운 촉매가 실패할 경우 촉매 금액뿐 아니라 공정을 정지하는데 따른 손실까지 추가되는 고위험(High-Risk) 기술인 것이다.
UOP 제품에 비해 높은 효율을 지닌 효성 기술원의 백금촉매기술은 사실상 효성식 DH공정을 위한 첫걸음이다.
전 세계에 UOP의 DH 공정을 사용하면서 자체 촉매를 사용하는 기업은 효성이 유일하다.
결국 이것은 긴 안목의 DH공정 사업을 위한 시발점인 것이다. 여기에 셰일가스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면서 프로필렌을 기존 납사(Naphtha)를 이용하지 않고 프로판에서 바로 추출할 수 있게 된다면 ‘저원가 프로필렌’이라는 또 다른 ‘길게 갈’ 사업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R&D 관리의 핵심 ‘위에서 아래까지’
R&D위원회 효성은 2006년도에 R&D위원회를 신설하여 효율적이고 전문적인 연구개발을 위해 노력하고 있음.
R&D위원회는 매년 2회 정기적으로 개최하며, 최고 경영진인 CEO, COO, CTO, 해당 사업부 PG장, PU장들이 참석하여 연구 개발에 대한 전략, 성과, 투자 등 제반사항을 심의, 조정 및 결정함으로써 연구 개발의 효율성을 제고하고 있음.
1) 경영진의 무관심이 중장기 R&D의 비효율을 부른다
Point_ 무관심은 위에서 아래로 확산된다.
R&D 현장에서 아무리 노력을 기울여도 전사적인 관심이 부족하면 중장기 R&D는 삐걱거리지 않을 수가 없다.
많은 R&D 인력이 ‘경영진의 관심’을 R&D의 첫 번째 성공요인으로 이야기하는 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경영진의 무관심은 일반적으로 R&D 예산 축소로 이어진다.
예산이 축소되면, 당연히 중장기 R&D가 가장 먼저 피해를 입는다.
예산, 인력이 줄어들고 많은 중장기 R&D가 중단된다.
그리고 이제 의욕(Motivation)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결국 경영진의 무관심이 R&D 의사결정자, R&D 중간관리자, 연구원이 모두 ‘중장기 R&D란 할 게 못 된다’라는 체념, 그리고 무관심으로 이어지는 연쇄작용을 일으키는 것이다.
R&D에 대한 전폭적인 신뢰도 결과가 좋지 않기는 매한가지다. R&D란 어차피 이해하기 힘들고, 관리하기 어려우니 R&D 인력에게 맡겨야 한다는 식의 사고는 위험하다.
R&D 조직 어디에선가 도덕적 해이(Moral Hazard)가 나타나고, 생산성과 효율성이 여기저기서 조금씩 떨어지기 시작한다.
R&D 관리자를 교체해도 떨어지는 성과는 좀처럼 회복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관리자들이 ‘어차피 나도 교체될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효성은 중장기 R&D의 성공을 위한 마지막 장치는 바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다.
경영진으로부터 시작하는 무관심의 확산과 도덕적 해이를 막고, 연구원의 의욕을 유지시키기 위한 효성의 방법은 무엇일까?
그 답은 단순하지만 효과적이다. 바로 ‘CEO부터 시작하는 전사적 참여’이다.
2) 가장 위에서, 가장 아래까지 R&D에 대한 ‘공감대’를 구축한다
Point_ CEO부터 팀장까지 모두가 참여하는 R&D 위원회를 통해 과제선정과 평가과정을 통해 R&D의 방향을 정한다.
효성은 2006년도에 ‘R&D 위원회’를 신설했다.
매년 두 번 개최하는 이 위원회에는 CEO, COO, CTO, 사업부장 등 주요 의사결정자들부터 R&D 팀장급들까지 회사의 주요 인력이 모두 참여한다.
R&D 전략과 성과, 투자와 같은 전사적 문제뿐 아니라 각 팀의 R&D 과제의 현황과 성과와 같은 팀 단위 문제가 모두 여기서 논의된다.
CEO가 직접 팀 단위 과제의 기술적 타당성과 사업화 가능성에 대해 질문하고, 답변을 받는다. 가장 위에서 아래까지 모두가 참여해 R&D의 핵심문제들을 결정하는 것이다.
효성의 신규 Project 발굴 및 점검은 ‘스테이지 게이트(Stage Gate)’를 통해 이루어지며, 그 이후 발전된 정식 Project의 점검 역할을 R&D 위원회에서 수행하게 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Great idea’, ‘중장기 R&D idea’들은 대부분 기각된다.
‘Good idea’들만이 살아남아 포트폴리오를 구축하고, 제품과 사업을 구축하게 된다.
효성의 R&D 위원회는 이런 문제들에 대해 답을 제시한다.
R&D 위원회에 효성의 ‘Great idea’를 장려하는 문화적 토양이 더해질 때, 아이디어를 장기간에 걸쳐 책임지고 수행할 연구원과 관리할 연구자, 지원할 임원이 명확해진다.
과제는 내게 주어진 것이 아니고 우리가 만든 것이 된다.
여기에서 ‘우리’란 CEO를 포함한 사원 전체이다.
목표와 책임, 지원(Support)이 명확해진다.
이제 연구원에게 남겨진 것은 수행, 그리고 몰입뿐이다.
시사점
수십 년간 깨지지 않는 시장점유율과 높은 매출, 영업이익률을 가져다주는 ‘지속가능한 경쟁우위(Sustainable Competitive Advantage)’와 ‘중장기 R&D’는 모든 기업의 간절한 바람이다.
그러나 그만큼 중장기 R&D는 어렵다. 우선 성공하기가 어렵고 지속가능한 우위를 지닌 제품과 사업을 창출하기란 더욱 어렵다.
장기 저성장기 불황 속에서 기업들은 살아남기 위한 방법으로 중장기 R&D를 약화시키거나 없애는 전략을 택하고 있다. 모두의 목표가 성장이 아닌 생존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장기 R&D를 약화시키고 성공적으로 살아남은 기업은 극소수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결국 기업의 지속성장을 위한 답은 ‘중장기 R&D’에 있고, ‘해야 할 것인가’가 아닌 ‘어떻게 할 것인가’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효성 기술원의 중장기 R&D는 이 ‘어떻게(How)’를 위한 중요한 힌트를 제시한다.
무엇보다 ‘길게 갈’ 기술을 찾는 것이다. 모든 기술이 오래 팔 수 있는 제품, 길게 가는 사업을 창출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수십 년 동안 지속가능한 경쟁 우위를 원한다면 토대가 될 기술과 연구테마를 찾는데 전력을 기울여야 한다.
물론 여기에서 끝이 아니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이듯, 그런 기술을 포트폴리오와 제품, 사업으로 구축해 나가야 한다.
그리고 이런 기술을 R&D 현장에서 만들어 내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이 ‘Great Idea’다.
많은 연구소에서 ‘Good Idea’들이 ‘Great Idea’들을 밀어낸다.
그러나 이래서는 현상 유지의 틀을 벗어날 수 없다.
설익은, 혹은 실현 불가능해 보이는 아이디어들을 장려하고 키우는 문화를 정착시켜야 한다.
조직 전체가 Great Idea를 창출하려고 노력할 때, 중장기 R&D의 불씨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런 아이디어와 기술을 살려가기 위한 효성식의 두 가지 기법도 주목할 만하다.
CEO부터 팀장까지 전원이 참여해 전략부터 구체적인 과제까지를 함께 만들어가는 참여형 R&D 의사결정 조직 ‘R&D 위원회’는 경영진의 관심, 연구원의 책임의식, 동기부여의 세 가지 측면에서 확실한 효과를 가지고 있다.
또 하나는 긴 안목의 투자와 인프라 확충이다.
모든 R&D는 예산, 인력, 시간, 설비가 필요하다.
이 네 가지 토양 없이 Great Idea들은 기술과 제품, 사업이 될 수는 없다.
효성은 이 단순하지만 중요한 원칙을 조직 내의 R&D 투자 체계에 관철시키고 있다.
불황이니까 중장기 R&D를 포기해야 할까? 생존과 중장기 R&D는 정말 양립할 수 없는 명제일까? 많은 기업이 ‘Yes’라고 답하는 가운데, 효성 기술원은 ‘No’라고 이야기한다.
타이어코드에서, 스판덱스, 백금촉매에 이르기까지 효성은 중장기 R&D를 통해 실제 성과를 창출했다.
그 중장기 R&D 방식이 향후 다양한 공정, 소재 제품군에서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 주의 깊게 지켜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