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 & 사이언스

PLUS ESSAY - 창조경제 달성을 위한 연구인력의 복지향상

163.png


과학기술에서 복지를 논하게 된 것은 최근의 일이다. ‘복지’보다는 ‘특혜’와 ‘우대’라는 수식어가 주를 이루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다양한 특혜와 우대가 있었지만, 이는 전체집단보다 선별된 일부 연구인들에게 주어진 경우가 많았다.

따라서 이제는 전체 연구인을 대상으로 한 ‘복지’를 심도 있게 논할 필요가 있다.

박근혜정부의 핵심공약은 창조경제다. 그리고 이를 실행할 핵심주체는 과학기술인(ICT 포함)이다.

그만큼 현 정부에서 과학기술 연구인의 중요성은 매우 크다. 필자는 이러한 상황을 “과학기술 연구인에게는 기회요 위기다”라고 표현하곤 한다.

그만큼 임무가 크고, 성공과 실패에 대한 책임을 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런 연유에서 연구인들의 복지향상은 창의적인 연구생태계 조성을 위한 기본조치일 뿐 아니라 창조경제 성공을 위한 출발선임을 강조하고 싶다.

과학사를 되돌아보면, 연구인들은 자기 몸을 희생하여 새로운 발견을 이뤄낸 경우가 적지 않다.

평생 라듐과 우라늄 등 방사능을 연구하던 퀴리는 노벨상을 두 번이나 받았지만, 당시 방사능의 위험을 몰랐고 결국 방사능 피폭이 원인이 되어 백혈병으로 사망했다.
 
지금도 미지의 진실을 밝히는 많은 연구인들은 밝혀진 위험과 밝혀지지 않은 위험에 맞서며 일하고 있다.

끊이지 않는 연구실 사고와 인명사고를 막기 위해 지난 2006년 「연구실 안전환경 조성에 관한 법률」01 이 제정되고 시행되었지만 8년이 지난 지금도 사고는 뚜렷한 감소세를 보이고 있지 않다.

연구실에는 신물질 창출, 융합연구, 생물학적 위험물질, 화학 및 물리 물질 및 장치 설비 등 안전관리가 필요한 다양한 요소들이 상존하고 있고, 연구투자가 늘어나고 새로운 연구가 많아질수록 새로운 사고의 발생가능성은 높아질 수밖에 없기 때문일 것이다.

연구자가 스스로 위험을 무릅쓰고 연구에 몰두할지라도, 잠재적 자기희생의 여건에서 일하는 연구인들을 위해 안전과 복지를 강구하는 것은 그 연구의 이득을 취하는 국가와 기업과 사회의 책임이다.

연구자를 위해 과학기술인 공제회가 있고, 병역특례, 고위직 및 개방직 공무원 이공계 우대 등 이공계 복지향상을 위한 다양한 정책을 펼쳐오고 있다.

정부의 ‘창의적 과학기술인재대국을 위한 「제2차 과학기술인재 육성·지원 기본계획(안)」(2011~2015)’에는 연구몰입환경 조성 등의 연구복지 관련 정책이 들어있다.

그러나 과학기술인들의 복지에 대한 평가는 그다지 좋지 않다. 중앙일보 설문조사02 에 따르면 이공계 종사들 72%가 ‘낮은 보수 및 이공계 무시풍토를 이유로 한국을 떠나고 싶다’고 했다.
 
사실상 연구몰입환경 조성은 아직도 뚜렷한 진전을 보이고 있지 않고, 절반에 가까운 비정규직 연구원의 문제는 연구인력의 직업불안과 창의성 실추의 원인이 되고 있는 것이다.

지난 20년간 과학 분야 노벨상 수상자 137명 중 66명(48%)이 30대 시절의 연구성과로 수상했다.
 
그러나 한국의 젊은 연구인들은 이 나이에 비정규직 연구원이라는 불안정한 신분으로 연구에 임해야 한다는 사실이 슬픈 현실이다.

이공계 박사의 비정규직비율은 이공계 종사자의 자기불만과 학생들의 이공계 진입 기피의 결정적 이유가 되고 있다(산업기술연구회 소속 출연연의 경우 2008년 대비 2012년 정규직은 7.0% 증가하였고, 비정규직은 24.1% 증가하였다).

일부 대학 및 중소기업의 비정규직 연구인들은 4대보험이나 퇴직금도 없는 경우가 많다.

창의력이 가장 뛰어난 연령대에 있는 고급인력이 안정적 직업환경·연구환경을 가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고급과학기술인력 양성에는 10~12년이라는 장기간이 소요된다는 점에서, 이들이 비정규직이라는 비창의적 여건에서 고군분투하는 모습은 안타깝기 그지없다.

더구나 연구인들은 직장을 옮길 때에도 「산업기술의 유출방지 및 보호에 관한 법률」,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 때문에 운신의 폭이 좁다.

고급과학기술자들이 더 좋은 대우를 찾아 직장을 이동할 수 없는 경우가 발생한다.

보상체계와 지적재산권 보호에서 연구자 친화적 대책도 필요하다.

일자리 편중 해소를 통한 연구일자리의 확대도 절실하다.
 
한국은 전체 일자리 중 과학기술분야 일자리 비중이 18.6%에 그치고 있다(미국 32.3%, EU 30%).

또한 연구인력이 대부분 대학 및 공공연구소를 선호하여 80% 내외의 고급인력이 여기에 편중되어 있는 것도 문제다. 대기업 소속은 18% 정도이나, 중소기업은 인력난에 허덕이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이러한 인력의 편중과 일자리의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해서, 대기업은 과감한 R&D투자 및 이의 중소기업 연계를 통한 연구직 일자리 확충에 힘써야 할 필요가 있다.

기초·원천분야의 연구개발 투자가 2007년 9.6조 원에서 2012년 16.2조 원으로 69% 증가하였으나 연구개발을 연계한 일자리 창출은 답보상태다.

이를 위해 정부와 기업은 급변하는 기술시장의 정확한 예측으로 연구인력의 수요공급을 최적으로 조절할 필요가 있으며, 또한 출연(연)의 인력활용 유연성 증가를 위해 기타공공기관 지정을 탈피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쉽지는 않겠지만, 연구인들이 대학 및 출연(연) 또는 대기업만 선호하고 중소기업을 기피하는 모습도 개선될 필요는 있다.

창의성이란 때로 의외의 상황에서 발현되기도 하거니와, 중소기업이 가진 장점을 살린다면 더 많은 기회를 얻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중소기업 연구직에 대한 정부의 파격적인 지원도 고려해볼 만하다.

특히 비정규직 문제 등 연구자들의 문제는 소위 기득권 연구인들의 협력도 필요한 사안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과학기술 연구계 스스로도 전체의 복지를 위해서 서로 무엇을 양보하고 나누어야 하는지에 대하여 고민하는 자세도 필요하다는 것이다.

스스로 해법을 찾는 것 또한 창의적 태도이기 때문이다.
 
정부의 정책과 회사의 조치만을 바라는 소극적 자세보다는 문제를 스스로 해결해보려는 적극적인 자세로 과감한 변화를 시도해야 한다.

많은 과학기술인들이 진리탐구와 인류의 삶의 질 개선이라는 좋은 뜻으로 과학기술계에 입문했을 것이다.
 
이들이 진정한 긍지와 자부심으로 창의성을 발휘하게 하는 일은 참으로 가치 있는 일이다.
 
그 속에 우리 미래의 등불이 될 소망이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본다면, 연구인 전체의 사기진작과 복지를 위해서는 단순히 고급인력에 국한하지 않고 전 생애에 걸친 관리가 필요하기도 하다.

과학을 하기 시작하는 초등학교에서부터 연구인이 되고, 취업을 하고, 연구현장을 퇴직한 이후에 이르기까지 근본적인 복지생태계를 조성해주는 일이야말로 복지의 완성이 아닐까 싶다.

무엇보다 연구현장에서 전체 연구자가 인격적인 대우와 필요한 복지혜택을 받고 안정적이고 창의적인 분위기에서 연구할 수 있도록 하는 것, 이것이 바로 연구몰입환경이며 창조경제의 출발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이스라엘 과학자 아나 요나트는 2009년 노벨화학상 수상한 이유를 “아무도 주목하지 않던 리보솜(세포내 단백질 복합체) 연구를 20년 동안 꾸준히 지원한 바이츠만 연구소의 연구철학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연구인들에게 연구몰입의 기쁨은 그 어떤 사회적 보상보다 크다.

연구인의 복지향상은 창의성의 샘이 마르지 않는 생태계에 주안점을 두어야 할 것이다.
 


01 연구실은 대학(4년제 대학, 전문대학 및 기능대학), 연구기관(정부출연연구기관, 국공립연구기관, 특정연구기관), 기업연구소 등(기업부설연구소 및 일반 법인 연구기관)의 과학기술분야 연구실을 말한다.

02 ‘국내 과학자 72% 한국 뜨고 싶다’, 중앙일보 1면, 2012년 9월 1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