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 & 사이언스

Movie in Tech - 좀비와의 전쟁 <월드워Z>

96.JPG


‘월드워Z’는 전 세계 원인불명의 이변 속에서 누구도 살아남을 수 없는 인류 최후의 대재난을 그린 작품이다.
 
전 세계 출간과 동시에 대중과 평단의 호응을 얻으며 뉴욕타임즈, USA 투데이, 아마존닷컴에서 종합 베스트셀러 1위, 아마존닷컴에서 50주간 전쟁 부분 1위를 차지하며 밀리언셀러가 된 맥스 브룩스의 동명 소설(World War Z)을 원작으로 했다.
 
영화화를 두고 브래드 피트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판권 경쟁을 벌인 끝에 피트가 판권을 거머쥐었다는 사실이 알려져 화제를 모은 바 있다.



정체불명의 존재와 싸우는 세계대전

브래드 피트가 제작과 주연을 맡은 스릴러 영화 ‘월드워Z’가 최근 국내에 개봉되었다.

정체불명인 이상한 존재들의 무차별 공격으로 세계 각국의 도시는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하고, 가족과 함께 가까스로 위험에서 탈출한 전직 UN조사관 제리(브래드 피트 분)가 재난의 원인과 해결책을 찾아내는 임무를 부여받고 먼 길을 나서게 되는 게 영화의 큰 얼개다.

여기서 인간들을 사납게 공격하는 정체불명의 존재란 이른바 ‘좀비(Zombie)’이다.

‘월드워Z’의 원작소설은 베스트셀러로서 대단한 인기를 누렸는데, 원래 소설은 좀비와의 전쟁이 끝난 뒤 한 유엔 전문가가 작성한 전쟁보고서의 형식을 취하고 있었다.

미래의 어느 날, 전 세계에 바이러스처럼 퍼져간 좀비들로 인하여 인류는 순식간에 절멸의 위기상황에 빠지고, 세계 각국은 군대 등을 동 원해 좀비와 전쟁을 벌이지만, 그들을 막기에는 힘에 부치게 된다.

지금까지 좀비를 소재로 한 영화들은 숱하게 많았으나, ‘월드워Z’는 원작소설의 인기를 바탕으로 영화화 초기단계부터 큰 관심을 모아온 듯하다.

그러나 진지한 문제의식과 방대한 스케일, 독특한 형식으로 눈길을 끌어온 원작소설에 비해, 영화는 그다지 특별한 감흥을 주지는 못하는 것 같다.

좀비들이 개미떼처럼 몰려들면서 벽을 넘는 등의 일부 장면이 기억에 남는 정도이다.
 

97.JPG



좀비(Zombie)의 실체란 무엇인가?

그동안 많은 영화에 자주 등장해온 ‘좀비’라는 존재는 정말로 있는 것일까?
 
이제 좀비는 스릴러 영화에서만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생활 곳곳에서도 좀비라는 용어가 널리 쓰이고 있는 형편이다.

대기업이나 방대한 조직체에 묻혀서 무사 안일주의와 타성에 빠져 있는 직장인들을 이른바 ‘좀비족’이라고 말하는가 하면, 이와 유사한 맥락에서 ‘좀비경제’, ‘좀비기업’이라는 용어도 간혹 쓰인다.
 
심지어 컴퓨터 바이러스 등의 대규모 유포에 의해 주요 통신망이 마비되는 인터넷 대란 시에, 이에 동원된 컴퓨터들을 ‘좀비PC’라 지칭하기도 했다.

이처럼 다양한 의미로 쓰이는 좀비란 원래 부두(Voodoo)교의 주술사가 마술적인 방법으로 소생시킨 시체들을 일컫는 말이다.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신체가 썩어있는 시체로서 생명력과 의지가 없기 때문에, 주술사의 지배에 의하여 노예처럼 농장 등의 노역에 동원된다고도 한다.

좀비의 어원에 대해서는 부두교가 기원한 서아프리카의 언어에서 신의 이름으로부터 유래한 것이라는 설이 있다.
 
부두교가 가장 성행하고 있는 서인도 제도의 아이티에서는 예로부터 주술사들이 좀비들을 끌고 다니거나, 농장주들이 좀비들을 노역에 혹사시키는 것을 실제로 보았다는 목격담이 많이 전해지곤 했다.
 

98.JPG


좀비의 실체에 대해 연구한 일부 학자들에 따르면, 주술사들이 특수한 약물이나 환각작용을 지닌 독성분말 등을 사용해서 살아있는 사람을 가사 상태에 빠지게 함으로써 좀비로 만들 수 있다고도 한다.
 
좀비를 만드는 이른바 ‘좀비 파우더’에는 복어의 독으로서 신경을 마비시키는 ‘테트로도톡 신(Tetrodotoxin)’이 함유되어 있다는 주장도 있는데, 좀비의 존재 여부와 그 정체에 대해서는 여전히 논란이 지속되고 있다.

좀비의 실체가 어떻든지, 영화나 대중매체에서 등장하는 좀비의 모습은 흉측하고 부패한 시체가 걸어다는 것으로 주로 묘사된다.
 
행동은 대체로 둔하고 느리고, 이미 죽은 시체이기 때문에 총이나 칼에 맞아도 끈질기게 움직이며, 정상적인 사람이 좀비에 물리면 그 역시 좀비가 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 영화에 나오는 좀비들도 대체로 이와 같은 공통적인 모습을 보이나, 시끄러운 소리에 반응하여 매우 재빨리 움직이기도 하고 좀비에 물린 사람이 불과 12초의 짧은 시간 내에 좀비로 변한다는 설정은 다소 독특하다.
 
또 일반적으로 영화 속의 좀비들은 부두교에서 유래한 좀비에 뱀파이어 등의 흡혈귀를 결합한 듯한 존재로 볼 수 있는데, ‘월드워Z’에서는 좀비가 마치 대유행의 바이러스처럼 급속도로 번져서 인류의 멸망마저 초래할 상황이 되었다는 것이 특징적이라 하겠다.


세계를 두려움에 떨게 한 바이러스의 공포
 

99.JPG


물론 이 영화에 나오는 ‘바이러스처럼 급속히 퍼지는 좀비’라는 설정은 과학적 측면에서 보면 무리가 너무 많다.

좀비의 실체 여부를 떠나서도, 좀비에 물려 ‘좀비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이 잠복기도 없이 매우 짧은 순간에 좀비로 변한다는 것을 비롯해서, 좀비 바이러스의 정확한 정체나 기원을 밝혀내지도 못한 채, 단순히 다른 바이러스나 세균을 이용하여 ‘좀비 백신’을 만든다는 설정도 지극히 허술하다고 하겠다.

억지로 비유하자면 광견병에 걸린 개에 물려서 전파되는 인수(人獸)공통 전염병인 ‘광견병 바이러스’가 영화의 좀비 바이러스에 다소 가깝다고 볼 수도 있지만, 구체적인 실체는 상당히 다르며 물론 광견병에 걸린 사람이라고 해서 다른 사람을 물어서 바이러스를 전파시키지는 않는다.

영화 속의 좀비 바이러스와는 감염 경로나 실체 등이 전혀 다른 양상이기는 하지만, 특정 바이러스나 세균이 급속히 대유행(Pandemic)을 해서 인류를 위협해온 역사적 사례는 물론 있으며, 아직도 그러한 잠재적 위협이 사라졌다고는 볼 수 없다.

흑사병이라고도 불리는 페스트가 중세 이후 유럽에서 가끔씩 대유행할 때에는, 갑자기 인구의 3분의 1 이상이 줄어든 나라들도 있을 정도로 엄청난 희생자를 낸 바 있다.

영화의 서두에서 잠시 언급되지만, 제1차 세계대전 직후에 창궐한 스페인 독감은 더욱 심각하였다.

1918년에서 1919년 사이에 주로 참전 군인들에 의해 전염된 스페인 독감은 전쟁으로 인한 사망자보다 더 많은 인명 피해를 낸, 인류 역사상 최악의 전염병이다.

전 세계 인구의 5분의 1 정도가 감염되고 전체 사망자 수만 최소 2천5백만 명에서 5천만 명까지로 추산되므로, 흑사병보다도 더 많은 희생자를 기록하는 악명을 떨친 셈이다.

‘바이러스(Robin Cook’s Virus)’나 ‘아웃브레이크(Outbreak)’ 등의 영화에 등장한 바 있는 ‘에볼라 바이러스(Ebola virus)’는 급속한 감염과 매우 높은 치사율 등으로 흔히 에이즈보다 더 무서운 전염병이라 일컬어지곤 한다.
 
에볼라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유행성 출혈열의 증세를 보이며, 감염 후 일주일 이내에 90%에 가까운 치사율을 보인다.
 
1967년에 아프리카 콩고 지역의 에볼라 강에서 처음 발견되었으며, 이후로 콩고와 수단 등지에서 가끔씩 집단 발병하여 수백 명 이상의 사망자를 내곤 하였다.
 
다만 역설적이게도, 너무 높은 치사율 때문에 바이러스가 널리 확산되지는 못했던 것이 천만다행이다.


바이러스의 진화와 연구

한편 바이러스와 세균의 입장에서 볼 때, 인간을 거의 다 죽게 만드는 것이 그들에게도 결코 유리하지 않을 수 있다.
 
만약 숙주인 인간이 모두 죽어서 더는 기생하여 살 곳이 없어진다면, 그들 또한 공멸할 수밖에 없다.

발견 초기에만 해도 ‘신의 형벌’이라 불리며 극심한 공포의 대상이었던 에이즈 바이러스는, 이제는 그다지 치명적이지 않은 만성 질환의 하나 정도로 여겨지고 있다.

물론 치료 방법 등이 발달한 덕분이기도 하겠지만, 에이즈 바이러스 역시 자신들의 생존에 유리한 방향으로 진화해 온 것으로 볼 수도 있다.

바이러스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그들이 인간을 너무 많이 죽게 하지 않도록 조절하는 것처럼 보인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에볼라 바이러스처럼 똑똑하지 못하거나, 바이러스와 세균들이 끊임없이 진화하는 과정에서 돌연변이 등으로 전혀 새로운 무기를 갖춘 신종이 출현했을 때는 문제가 달라질 수 있다.

미처 면역력과 대응력을 갖추지 못한 인류가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도 있는데, 페스트나 스페인 독감 등도 그런 경우일 것이다.

최근에는 인수공통 전염병들이 늘면서 인류에게 더 큰 고민을 안겨주고 있다. 동물로부터 감염되는 전염병은 이미 200가지가 넘는 것으로 분류된다.

몇 년 전부터 빈발하는 조류 인플루엔자는 스페인 독감과의 관련성 때문에 더 큰 위협으로 다가온다.

처음에는 돼지 인플루엔자로 불리다 명칭이 바뀌기는 했지만, 신종 플루 역시 사람, 조류, 돼지의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들이 유전자적으로 결합된 것이다.

다행히도 신종 플루는 독성이 그다지 강하지 못하여 사망자가 그다지 많지는 않았으나, 이들이 다시 변이를 일LIFE으켜서 더욱 독성이 강하면서도 사람 간에 전파가 가능한 바이러스가 출현할 가능성도 충분하다.

오래전에 사망한 스페인 독감 감염자의 폐에서 독감 바이러스를 채취하여 재생시키는데 성공했던 몇 년 전의 연구에 따르면, 스페인 독감의 H1N1 바이러스는 인체에 치명적인 변종 아미노산들을 현 조류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인 H5N1과 일부 공유하고 있었다고 한다.

즉 지난 스페인 독감은 ‘사람 간에 전염이 가능한 조류 인플루엔자의 일종’이나 거의 마찬가지였다는 주장인 셈이다.

또한 바이러스는 아니지만, 한때 온 나라를 촛불시위 물결로 몰아넣은 적이 있는 광우병 역시 상당한 위협이다.

광우병으로 인한 사망자가 아직 그다지 많지는 않으나, 그 병원체가 바이러스나 세균처럼 기존에 알려진 것이 아니기 때문에 더욱 우려된다.

아직 완벽히 밝혀지지는 않았으나 광우병의 병원체는 프리온(Prion)이라 불리는 단백질의 일종으로서, 유전자를 지니고 있지 않은 단백질 입자가 감염성 질병을 일으킨다는 것은 기존의 생물학적 상식으로 볼 때 대단히 이해하기 힘든 일이다.
 
따라서 확실한 예방책이나 백신 등을 만들기는커녕, 병의 실체와 메커니즘조차도 아직 제대로 모르고 있는 셈이다.

이와 같은 각종 바이러스와 신종 전염병의 위협에 대비를 철저히 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일부 바이러스 재난 영화에서 보여주듯, 정부가 중요한 정보들을 숨기거나 무턱대고 안전하다고 강변하는 것은 전혀 현명한 태도가 아니다.

도리어 나중에 더 큰 재앙과 혼란을 자초할 가능성이 크다.

차라리 각종 정보와 문제점 등을 솔직히 공개해 국민의 이해를 구하고, 함께 해결책을 찾아 나아가는 합리적인 ‘위험 커뮤니케이션’이 최선의 방법일 것이다.
 

100.JPG

101.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