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ISSUE 04

특별기획 - 새로운 혁신 패러다임 : 사용자 주도형 혁신의 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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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 추격형 혁신을 위해서는 공급자 중심의 혁신에서 사용자 주도형 혁신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이에 대한 가장 대표적인 예가리빙 랩(Living Lab)이라고 할 수 있다.

리빙 랩은 사용자들이 기술을 대하는 행동을 실시간으로 생활공간에서 파악하고 사용자들이 혁신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대표적인 사용자 주도형 혁신이다.

이 글에서는 유럽 리빙 랩(European Living Lab)의 특징과 개념 등 상세 내용을 알아보고 핀란드의 Human Tech Living Lab과 덴마크 Egmont Living Lab의 실 사례를 살펴보도록 한다.



들어가며

그동안 이루어진 추격형 혁신활동은 기술획득에 초점을 맞추어 왔다.
 
사회에서 이미 활용되고 있는 기술을 모방해서 구현하는 전략을 취했기 때문에 기술의 사회적 맥락에 대한 깊은 고려 없이도 추격전략은 일정한 성과를 낳았다. 그러나 외국 기술의 모방이 아니라 스스로 문제를 정의하고 새로운 기술궤적을 형성해야하는 탈 추격 상황이 전개되면서 과거와는 다른 접근이 요청되고 있다.

해결해야 할 문제는 어떤 것인지, 문제 해결에 활용할 수 있는 기술은 무엇인지, 기술의 사회 · 경제적 효과는 무엇인지, 기술이 구현되는 사회적 조건은 어떠한지에 대한 깊은 이해 없이 성공적인 기술개발이 추진될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하고 있다.

최근 중요한 정책 의제로 부상하고 있는 사회문제 해결을 위한 혁신도 새로운 접근을 필요로 하고 있다.

사회문제 해결형 혁신은 보건 · 복지, 안전, 환경, 에너지 영역에서 기술혁신을 통해 사회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활동이다.

이러한 혁신활동은 사회 · 기술적 측면을 동시에 고려하는 관점을 요구하고 있다.

사회문제 정의에서부터 시장 · 비시장을 포함한 다양한 전달체계를 통한 문제해결까지 사회적 측면과 기술적 측면이 동시에 고려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새로운 혁신활동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기술 중심의 접근을 벗어나 혁신의 사회적 맥락과 사용자의 잠재적 니즈를 파악해서 기술과 사회의 내용을 동시에 구성하는 활동이 필요하다.
 
사용자 경험 디자인, 사회-기술기획 등으로 표현되는 ‘수요 구체화(demand articulation)’ 활동이 효과적으로 이루어져야 새로운 궤적을 형성하는 탈 추격 혁신을 수행하고 사회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 보았을 때 사용자가 혁신활동에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사용자 주도형 혁신’은 탈 추격형 혁신과 사회문제 해결형 혁신에서 요구되는 수요 구체화 문제를 효과적으로 해결하는 하나의 안이 될 수 있다.
 
사용자의 주도하에 사용자와 전문가가 상호작용을 거쳐 기술을 개발하는 활동은, 혁신공급자가 주도하여 사용자의 잠재 수요와 사회적 맥락을 분석하는 접근보다 좀 더 현실에 근접한 정보와 지식을 제공해줄 수 있다.

더 나아가 사용자가 생활현장에서 축적한 국지적 지식을 효과적으로 조직화하여 기술개발에 활용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사용자가 혁신활동에 주도적으로 참여하는 것은 쉽지 않다.

혁신활동과 관련된 체계적인 훈련을 받은 것도 아니고 기술혁신과정에서 전문가와 소통할 수 있는 언어와 수단도 부족하기 때문이다.
 
사용자 주도형 혁신을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사용자들의 부족한 혁신능력을 보완해 주고 사용자 수요와 전문가 지식의 결합을 통해 새로운 아이디어를 구현할 수 있는 하부구조가 필요하다.

이런 유형의 하부구조는 기술공급자들을 지원하는 연구시설이나 장비 등과 같은 물리적 하부구조와는 다른 특성을 지니고 있다.

이는 사용자들이 혁신과정에 자신들의 지식과 니즈를 반영하고, 다양한 사용자들과 서로 의견을 교환하며, 전문가와의 소통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활동을 지원하는 기술 · 조직 · 지식 하부구조이다.

이 글은 사용자 주도형 혁신활동의 특성을 살펴보고 이와 같은 혁신활동을 지원하는 하부구조의 특성을 리빙 랩(Living Lab)의 사례를 통해 살펴본다.


사용자 주도형 혁신의 특성

전통적인 기술혁신모델에서 사용자는 공급자인 기업들에게 자신들의 니즈를 알려주거나, 제품이 개발되면 그것을 자신들의 조건에 맞게 적응시키는 활동 정도를 수행하는 수동적인 수용자로서 파악되었다.

혁신의 성공 여부는 결국에는 시장에서 결정된다고 이야기되지만 시장에서 최종적으로 혁신제품을 구매하는 사용자가 기술혁신 관련 의사결정에서 차지하는 역할은 크지 않았다.

그러나 정보통신기술의 발전은 일반 사용자들이 자신들의 경험과 니즈를 적극적으로 기획 과정에 반영하고 시제품을 만들며, 관련 지식과 정보를 다른 사용자들에게 확산시키는 것을 용이하게 만들고 있다.

사용자들이 기술혁신과정에 주요 주체로서 참여하는 새로운 기술혁신패턴이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공개소프트웨어 개발, 동호회 공동체가 혁신의 주체가 되는 카약이나 패러글라이딩 등의 스포츠 관련 기술개발, 게임사용자들의 참여를 통한 게임의 개선 등이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사용자 주도형 혁신의 사례이다.

사용자 주도형 혁신활동은 사용자가 제품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는 활동에서부터 완전히 새로운 제품과 서비스를 창출하는 활동까지 다양한 모습을 지닌다.

경험 많은 사용자가 초기 사용자에게 기존 제품의 장점과 단점을 조언하는 활동, 기존 제품과 서비스를 새롭게 활용하는 방법을 제공하는 활동, 기존 제품을 개선하는 활동, 새로운 제품과 서비스를 창조하는 활동(예 : Linux)등의 스펙트럼을 지닌다.

사용자 주도형 혁신은 상업적 수익보다는 사용자의 필요나 관심에 기반을 둬서 이루어진다.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혁신활동을 수행하기 때문에 혁신의 결과물을 지식재산으로 보호하려는 경향이 약하고 사용자들로 구성된 공동체의 일원으로 혁신활동을 수행하는 경향이 있다.

지식재산권은 상대적으로 덜 중요한 이슈이며 어떤 사용자들은 GPL(General Public Licence)를 활용해서 혁신 결과물의 상업적활용을 제한한다.

그리고 다른 사용자들이 혁신활동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도구를 제작해서 공급하기도 한다.

사용자 주도형 기술혁신의 전형적인 예는 공개소프트웨어라고 할 수 있다.

공개소프트웨어는 소스코드가 개방된 기술로서 필요한 사람들은 누구나 자유롭게 개방된 소스코드를 무료로 사용하여 필요한 소프트웨어를 개발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배포도 할 수 있다.

공개소프트웨어의 개발은 소프트웨어를 개발하고 사용하는 공동체를 통해 이루어진다.

자신들이 필요로 하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면서 동시에 소비하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은 방식에서는 사용자가 곧 개발자가 될 수 있기 때문에 공개소프트웨어를 쓰는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개발자는 더 늘어난다.
 
또 사용자 자신이 개발자이기 때문에 자신이 필요로 하는 문제를 가장 잘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하게 된다.

결국 공개 소프트웨어 기술개발과정에서는 개발자와 사용자의 관계가 밀착되면서 수요의 니즈에 맞고 사용과정에서 창출되는 정보를 최대한 활용할 수 있는 맥락이 조성되는 것이다.

이렇게 사용자=개발자에 의해 소프트웨어 개발이 주도되고, 개발된 소프트웨어를 다시 사용자=개발자가 활용하여 또 다른 혁신을 추동하는 집합적 혁신(collective innovation)이 이루어지는 모습은 사용자 주도형 기술혁신체제의 전형적인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사용자 주도형 혁신은 기술개발 능력이 상대적으로 부족한 다수의 사용자가 참여하여 혁신활동을 수행하기 때문에 공급자 주도의 기술혁신과는 다른 하부구조와 모델이 필요하다.
 
리빙 랩(Living Lab)은 이를 잘 구현하고 있는 사례 중 하나이다.


사용자 주도형 혁신과 리빙 랩(Living Lab)

리빙 랩 개념은 MIT의 W. Mitchell 교수가 제시했다. 그는 IT기술과 센서기술을 바탕으로 사용자들이 기술을 대하는 행동을 실시간으로 생활공간에서 파악하는 장소를 리빙 랩으로 정의했다.

연구자가 사용자를 관찰하고 실험을 통해 가설을 검증하는 공간으로 리빙 랩을 설정한 것이다.

이러한 개념은 도시 거주자가 도시계획과 설계에 참여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형성되었다.

MIT는 2004년 아파트를 지정해서 거주자들의 행동을 관찰할 수 있는 PlaceLab을 설치, 신기술과 디자인을 일상생활 공간에서 실험하고 평가하는 연구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다.

한편 유럽연합은 Mitchell 교수의 리빙 랩 개념을 이어받았지만 미국과 달리 사용자 참여와 혁신생태계 조성에 대한 관점을 강화하면서 유럽 리빙 랩(European Living Lab) 운동을 전개했다.

유럽은 사용자들이 제품개발 초기 단계부터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개방형 혁신을 추구하는 혁신생태계로서 리빙 랩을 파악했다.

미국의 경우 전문가가 IT를 통해 사용자들의 행태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고 분석하는 측면이 강조되어 사용자는 관찰 대상으로서의 의미가 강했다.

이에 반해 유럽연합은 최종 사용자는 단순한 관찰 대상이 아니라 혁신 활동의 중요한 주체로 본다.

유럽연합의 리빙 랩은 상향식으로 전개된 일종의 사회운동으로서 사용자 참여, 혁신 친화적 환경, IT 하부구조 구축, 중소기업 활성화가 강조되는 북구지역의 전통을 확장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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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 유럽 리빙 랩의 기본 개념)

출처 : European Commission, Information Society and Media(2009)


사용자 주도형 혁신을 위한 기술 · 지식 하부구조

리빙 랩에서 최종 사용자는 관찰 대상이 아니라 산학연, 정부와 상호작용하면서 혁신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지식을 함께 창조하는 주체이다.

이 때문에 리빙 랩에서는 사용자의 참여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한 혁신적 사용자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경우가 많다.

관찰대상을 넘어 혁신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조건을 형성하는 것이다.

이는 사용자들이 서로 공유할 수 있는 공통의 지식기반을 구축하는 활동으로서 사용자들의 공동체적 의식을 강화하고 혁신능력을 심화시킬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한다.

또한 최종 사용자의 아이디어를 적극적으로 반영하여 혁신활동을 수행할 뿐만 아니라 다양한 주체들의 아이디어를 활용하기 때문에 개방형 혁신의 특성을 지니고 있다.


실제 생활과 연계된 공간

리빙 랩에서는 사용자들이 살고 있는 실제 생활공간에서 아이디어를 제안하며 그것을 사용하고 피드백하는 활동이 이루어진다.

이 때문에 생활공간에 구성되어 있는 여러 물리적 · 사회적 맥락을 바탕으로 기술개발이 이루어져 이론화되고 일반적인 기술이 아니라 ‘맥락화된 기술’이 개발된다.

사용자가 생활하는 사회가 랩(society as a laboratory)으로서 기능하여 혁신활동을 수행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사용자 참여를 통해 혁신의 불확실성을 낮추는 공간

리빙 랩에서는 최종 사용자가 참여를 통해 자신들의 미래를 설계하고 경험할 수 있는 실험적 학습(experimental learning)을 수행한다.

이와 함께 정책담당자들은 기술이 구현되기 전에 그것이 가져오는 효과를 현장에서 검토하여 관련 규제와 정책을 개선할 수 있는 기반을 제공한다.

이런 측면에서 리빙 랩은 새로운 내용을 갖는 사회 · 기술시스템을 구성하고 실험해 보는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작업을 통해 리빙 랩은 ‘기술 아이디어 도출 및 개발’과 ‘제품 구현 및 시장 진입’ 사이에 존재하는 간극을 줄이는 역할을 수행한다.

즉 응용연구 수행자, 사용자, 기업들이 참여하는 프로토타입 개발, 실증활동을 포괄하고 있다.

이런 측면에서 리빙 랩은 상용화 전 단계의 골짜기(Chasm)를 건너는 데 도움을 준다.

특히 기술을 실증하고 구체화하는 능력이 취약한 중소기업에게 많은 도움을 줄 수 있다.


리빙 랩 사례

핀란드의 HumanTech Living Lab

Lutakko는 스키장과 레저단지, Himos는 컨퍼런스 센터가 유명한 곳으로, 서비스 수요를 탐색하고 새로운 서비스를 개발하기 위한 리빙 랩이 개설되었다.

이 리빙 랩은 Lutakko와 Himos 지역을 대상으로 서비스 디자인 방법론을 활용해서 사용자 주도형 혁신환경을 조성하고 서비스 혁신을 추진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각각 Lutakko Living Lab과 Himos Experience Lab으로 명명되었으며 사용자 니즈조사, 새로운 아이디어와 비즈니스 모델이 개발 · 시험되고 있다.

대학, 기업, 거주자, 관광객, 공공조직이 참여하여 새로운 유형의 비즈니스 모델과 기술을 개발하고 시험 · 평가하며 수행한 프로젝트로는 iLutakko, Sauna from Finland 등이 있다.
 
iLutakko는 Lutakko 지역에 있는 주민과 고객, 서비스 공급자가 참여하는 아이디어 창출 커뮤니티로 소셜미디어를 개방형 혁신과 아이디어 창출을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

‘Sauna from Finland’는 브랜드 개발을 위한 크라우드 소싱사업으로서, 리빙 랩과 지역개발조직이 지역의 사우나에 대한 사진과 스토리텔링을 수집하여 사용자 주도형 콘텐츠를 개발하는 프로젝트이다.


덴마크의 Egmont Living Lab

이 리빙 랩은 보조기술 영역에서 사용자 주도형 혁신을 구현하는 방법을 연구하는 HandiVision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설립되었다.

이 프로젝트에는 기업, 장애인 관련 기관, 연구기관이 참여하고 있다.
 
특히 혁신의 전 과정(제품개발에서 제품 시험, 기존 제품 개선까지)에 장애인 사용자를 참여시킴으로써 보조기술 개발을 좀 더 효율적 · 효과적으로 추진하는 방법을 탐색하고 있다.

HandiVision 프로젝트에서는 장애학생을 위한 Egmont 학교를 리빙 랩으로 지정하고 ‘혁신적 사용자 과정’을 운영하여 학생들에게 참여적 설계와 소통방법을 교육하고 있다.

Egmont 학교는 고등학생들이 4 ~ 10개월 정도 머물면서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다양한 분야를 공부하고 경험을 쌓는 기숙학교다.

덴마크 장애인 단체가 설립했으나 일반 학생들도 재학하고 있으며 장애학생들의 사회 복귀를 목표로 하고 있다.

이 랩을 통해 조이스틱을 탑재한 전동 휠체어가 개발되었다.

혁신적 사용자 강의의 일환으로 Egmont학교 장애학생들은 Aabentoft라는 전동휠체어 회사를 방문하였고 이 자리에서 학생이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 게임을 할 수 있는 조이스틱이 부착된 휠체어에 대한 아이디어를 제안했다.
 
이 제안을 받은 회사는 사업가능성을 보고 프로토타입을 제작했으며 장애학생들이 제품을 시험하는 과정을 거쳤다.

이때 인류학자가 참여하여 학생들이 게임을 어떻게 수행하는지 관찰하고 제품 개선 활동을 수행했다.

사용자 주도형 혁신은 탈 추격 혁신과 사회문제 해결형 혁신을 수행하는 데 필요한 새로운 혁신 모델이다.

그동안 우리나라는 산학연과 같은 공급자의 혁신활동을 촉진하기 위한 제도와 하부구조구축에 정책의 초점을 맞추어 왔다.
 
이는 선진국을 따라잡기 위한 효과적인 전략이었고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새로운 궤적을 개척해야 하는 탈 추격 상황과 사회문제 해결을 위한 혁신활동이 요구되는 상황에서는 사용자 측면의 혁신활동을 촉진하기 위한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

사용자들은 혁신활동을 전문적으로 수행하는 기업과 연구조직과 비교해 볼 때 자원이 빈약하고 혁신활동 참여 능력과 수단도 충분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따라서 사용자 주도형 혁신활동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사용자의 능력과 기술을 보완하는 하부구조가 필요하다.

리빙 랩과 같은 하부구조는 사용자 주도형 혁신을 활성화하고 혁신을 통해 문제해결 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는 좋은 수단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