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us Essay - R&D는 궁즉통(窮卽通)이 아니라 신바람통(通)이다
요즘 우리나라는 축구, 야구, 골프, 체조, 피겨스케이팅, 펜싱 등 스포츠 여러 분야에서 세계적 톱 수준을 달리고 있는데, 가수 싸이까지 세계 최고의 위치를 차지할 것 같다.
삼성, 현대, LG와 같은 기업들의 활약도 마찬가지다.
불과 십수 년 전만 하더라도 아시아에서 우승만 해도 카퍼레이드를 벌이며 환영식을 하곤 했는데, 이제는 세계적이란 단어를 붙이지 않으면 관심조차 없을 정도가 되었다.
저변 인구가 많은 것도 아니고, 강력한 지원이나 리더십이 있는 것도 아닌데, 참 잘한다. 한두 분야가 아니라 전 범위에서 잘한다. 어떻게 된 일일까?
최근 야구 열기로 전국이 뜨겁게 달아올라 있는데, 프로야구가 등장하기 전에는 고등학교 야구가 전 국민을 열광케 했었다.
필자가 고등학교 3학년이던 당시, 필자의 학교 야구부가 전국 대회에서 우승을 하는 등 대단히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당연히 학교 전체가 축제 분위기였고, 학생들은 거의 매일 야구 이야기만 할 정도였다.
이야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학교 차원에서 단체로 야구장에 응원을 하러 가고, 학생들 개인적으로도 수업을 빼먹으면서까지 야구장에 갔다.
이런 일은 대학 입학 지도를 맡은 고3 담임선생님들에게는 큰 걱정거리였다. 수업에 지장을 주는 것은 물론이고, 학생들이 야구에 관심을 두느라 공부를 게을리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해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대학입학 시험에서 학교 역사상 최고의 성적을 거두었던 것이다.
그 어느 해보다 수업도 적게 하고 관심이 야구뿐이었는데, 입학시험에서 최고의 성적을 거두었으니 가히 기적이라 할 만했다.
특별히 우수한 학생들이 입학한 것도 아니었으니 말이다. 이것 또한 어떻게 된 일일까?
필자는 분위기에서 답을 찾는다. 국가든 단체든 상승 분위기를 타면 과학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엄청난 힘이 솟아나 전혀 뜻밖의 결과를 내는 것을 우리는 흔하게 볼 수 있다.
바로 그런 분위기로 위의 사례를 설명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그런 분위기가 조성되면, 사람들의 에너지가 넘치고, 아이디어가 나오고, 힘들고 어려운 일에 도전하고, 괴로움도 극복해나간다.
이런 상태를 신바람 분위기라 하는데, 그런 사례는 주위에서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R&D에 신바람을 일으키자
머리로 일을 하는 R&D에서의 신바람 분위기 효과는 어떤 다른 분야보다 크게 나타난다.
연구원들이 신이 나서 일을 할 때는 이런저런 아이디어를 끊임없이 내면서 온갖 시도를 하고, 어렵고 복잡하고 힘든 일에 도전한다.
어떤 사안이든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다른 사람들과 지식과 경험, 노하우를 공유하면서 답을 찾아간다.
연구개발 효율성은 물론, 성과도 획기적으로 올라간다. 쪼들려 일할 때에 비하면 수십, 수백 배 효과를 낸다.
R&D 경영자들이 해야 할 일은 분명하다. 연구원들로 하여금 신바람이 나서 연구개발을 할 수 있게 해야 한다.
R&D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모르는 일’만 한다. 문제를 해결하여 알 만 해지면 다른 부서에 넘겨버리고, 다시 ‘모르는 일’을 찾아 도전해야 한다.
경쟁자가 먼저 좋은 결과를 내면 중도에 탈락되기도 하는 괴롭고 험난한 일만 한다. 이런 일을 하는 연구원들을 야단치고, 닦달하고, 긴장하게 만드는 것이 효과적일까?
쪼들리고 긴장하여 안절부절 못할 때는, 아이디어를 내기보다는 남탓을 하고 핑계를 찾기 마련이며, 힘들고 어려운 일에 도전하기보다는 회피하고 체념할 텐데 말이다.
신바람 분위기에서는 연구원들이 스스로 공부도 하고, 이리저리 알아보고,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면서 답을 찾으려 노력한다. 시간 가는 줄도 모른다.
쉬운 일에는 지겨워하며 오히려 더 어려운 일을 찾아 한다. 일이 많은 것을 고마워하며 복잡한 문제에 도전한다.
인프라든 환경이든 탓도 하지 않는다. 서로 협력하면서 아이디어를 모으고 지식과 경험을 공유한다.
R&D에서 가장 효율적이고 효과적인 방법으로 일한다. 신바람 분위기가 R&D의 핵심인 것이다.
그런데도 많은 R&D 경영자들은 연구원들을 야단을 쳐서 긴장으로 몰아넣고, 연구실은 불이 꺼지지 않아야 한다고 하면서 밤 늦게까지 연구원들을 붙들어 놓아 육체적으로 피곤하고 정신적으로 혼미한 상태로 몰아간다.
궁즉통(窮卽通)이라 하면서 극단으로 몰아가기도 한다. 없는 능력이 야단을 친다고, 그저 늦게까지 일을 시킨다고 갑자기 생기는 것이 아님을 알 텐데도 그냥 그렇게 한다.
신바람 효과를 몰라서 그럴까, 그렇게 만드는 방법을 몰라서 그럴까.
신바람 분위기는 월급을 많이 주면 된다고 하면서, 어쩔 수 없다고 하는 리더가 많다.
그렇지만 월급을 적게 받는 사람이라고 늘 풀 죽어 일하는 것도 아니고, 또 많이 받는 사람이라고 항상 신명나게 일하지 않는 것을 보면 월급과는 큰 관련이 없다.
신바람은 개인 성향에 좌우되는 것이라서 관리하기 어렵다는 사람도 있는데, 기분이 좋을 때 흥이 나는 것은 성격에 관계없이 누구나 똑같은 것임을 생각하면 이 또한 맞는 말이 아니다.
환경 탓을 하는 경우도 있는데, 모든 환경이 부족하고 열악할 수밖에 없는 창업 초기 업체에서도 신명 나게 일하는 사람이 많은 것을 보면 환경과도 큰 관계가 없다. 모두가 신바람에 대해서 깊이 고민하지 않고 하는 소리다.
신바람은 칭찬, 신뢰, 소통으로 가능하다
신바람 분위기를 만드는 일, 의외로 쉽다. 돈도 들지 않고, 시간도 들지 않고, 특별한 노력도 필요 없이 할 수 있는 방법이 얼마든지 많다. 칭찬을 해보라.
칭찬을 받으며 주눅이 드는 경우가 있는가?
사소한 일이라도 칭찬을 받으면 즐겁고, 즐거운 말을 들으면 신바람이 난다.
R&D는 실패나 실수, 시행착오의 연속이고, 성공을 하면 끝이 난다.
성공할 때만 칭찬한다고 하면 칭찬할 일이 거의 없는 것이 R&D 속성이다.
설사 성공했다 하더라도 예정보다 늦었다고, 비용을 많이 썼다고 야단칠 수도 있으니, 결과만 보고 칭찬한다면 R&D에서는 칭찬할 일이 거의 없다.
중간 과정의 작은 성과도 칭찬할 수 있고, 시행착오나 실수 · 실패를 한 것도 노력을 한 결과이니 칭찬할 수 있다.
R&D야말로 늘 칭찬할 수 있는 분야다. 성과를 위해서, 효율을 위해서라도 칭찬을 하고 감사해 하면 된다.
연구개발자들을 믿어주는 것도 신바람 분위기를 만드는 방법 중 하나다.
고의적으로 실패나 실수, 시행착오를 하는 연구원은 없다.
뭔가 잘하려고 했는데, 여의치 않아 실패도 하고 실수도 하고 시행착오도 하는 것이다.
그런 노력에 대해 상사나 동료들이 인정을 하고 믿어주는데, 남 탓을 하고 핑계를 대고 일을 회피하려 할까.
신바람이 나서 일을 할 것이다. 믿어주고 격려하는 일, 돈이 드는가, 힘이 드는가. 성과를 위해서, 효율을 위해서라도 인정하고 믿어주어야 한다.
왁자지껄 떠들며 일하게 하는 것도 신바람을 일으키는 방법이다.
이것저것 떠들다 보면 맺힌 것도 풀리고 스스로 해결책도 찾게 되며, 신바람이 절로 나게 마련이다.
잡담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시행착오나 실수, 실패까지 공식석상에서 말할 수 없는 사소한 일까지 진솔하게 이야기하여 R&D에 아주 효과적이다.
왁자지껄 떠들며 일하게 하라. 떠들며 일하게 하는 것, 비용이 드는가, 힘이 드는가, 마음만 먹으면 될 일이다.
상사가 밝은 표정만 지어도 일하는 분위기가 좋아진다.
찌푸린 상사 앞에서 어떻게 기발한 아이디어를 내고 어려운 일에 도전하겠는가. 밝은 표정만으로도 신바람 분위기를 만들 수 있다.
R&D는 신바람통(通)이다
R&D에서 실패나 시행착오는 성공으로 가는 징검다리다.
실패, 실수, 시행착오의 징검다리를 걷고있는 모습을 보는 경영자 마음이 편할 리 없겠지만, 그 다리를 걷고 있는 연구원들은 더 괴롭고 힘들고 어렵다.
그 다리를 효과적으로 또 효율적으로 건너가게 할 수 있도록 신바람 나는 분위기를 만들어 주어야 한다.
그렇게 만드는 일, 돈도 시간도 들지 않는다.
신바람으로 일하게 하는 일, R&D 경영자가 반드시 해야 할 과업이다. R&D는 궁즉통이 아니라, 신바람통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