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vie in Tech - 다시 보는 체르노빌 원전 사고의 교훈, 다이어드 5
브루스 윌리스 주연의 유명 액션물인 ‘다이하드’ 시리즈의 다섯 번째 편이 최근 국내에 개봉되었다.
뉴욕 경찰로서 말썽꾸러기 같은 존재인 존 맥클레인(브루스 윌리스 분)이 가는 곳마다 테러 등 뜻하지 않은 사건에 휘말리다가 초인적 힘을 발휘해서 극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게 다이하드의 줄거리다.
이번에 개봉한 다섯 번째 편에는 1편 개봉 후 25년이 지난 현재 맥클레인의 변화된 모습과 체르노빌 원전 사고에 대해 다시 떠올려 볼 수 있는 내용이 담겼다.
화려한 액션과 미국식 영웅주의의 결합
다이하드 시리즈물은 화려한 액션과 볼거리, 그리고 미국식 영웅주의가 그럴듯하게 버무려진 오락 영화의 대표격이다.
이번 다섯 번째 다이하드는 ‘굿 데이 투 다이’ 라는 부제가 붙어서 주 무대를 러시아로 옮겼다.
존 맥클레인 형사는 아들 잭이 러시아에서 불미스런 사건에 휘말려 감옥에 갇혔다는 소식을 듣고 휴가 기간에 러시아로 날아간다.
그러나 아들을 만나러 가는 도중에 모스크바 시내에서 대형 폭탄 테러가 발생하고 격렬한 총격전이 전개되는 등 뜻밖의 상황이 발생하고, 이 와중에 맥클레인은 아들 잭과 극적으로 만나게 된다.
실은 아들 잭이 비밀리에 작전을 수행 중인 CIA요원이었는데, 맥클레인 부자는 무장괴한들의 공격에 대항하면서, 엄청난 음모가 개입된 사건을 힘을 합쳐서 함께 해결한다는 내용이다.
이번 다섯 번째 다이하드 역시 화려한 액션과 다양한 무기 등을 선보이고 있다. 구소련의 공격형 헬리콥터 Mi-24, Mi-26 등은 가공할 화력과 세계에서 가장 큰 헬리콥터의 위용을 보인다.
수많은 액션 영화에서 빠짐없이 등장하는 차량 추격전 역시 맥클레인 형사 특유의 저돌적이고 무모한 면모를 유감없이 과시한다. 거기에 예전 다이하드 시리즈에서도 자주 등장하였던 애틋한 가족애 역시 관객들의 감성을 자극한다.
즉 형사 업무에만 열중하느라 가족들을 제대로 돌보지 못해서 아들과도 겉돌기만 했던 맥클레인이, 아들과 함께 죽을 고비를 몇 차례 넘기는 과정을 겪은 후 부자지간의 유대감을 확인하고 서로 이해하게 되는 것으로 영화의 막을 내린다.
그러나 이번 다이하드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부분은, 이 영화의 무대가 러시아라는 점이다.
즉 구소련의 철의 장막 시대에 발생했던 원전 사고 및 이와 연관된 정치적 부패와 음모, 그리고 현재까지도 이어지는 범죄와 폭력 등이 영화에서 자주 등장한다.
몇 차례의 반전이 도리어 어설프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이 영화에 나오는 온갖 음모와 갈등은 과거에 발생했던 체르노빌 원전 사고와 깊숙이 연관되어 있다.
따라서 이 영화를 계기로 하여 체르노빌 원전 사고란 과연 무엇이었는지, 그리고 영화에서 묘사된 현재의 체르노빌 원전의 모습은 어떤지, 또한 최근 전 세계적으로 딜레마에 처한 원자력 발전 산업은 앞으로 어떻게 될지에 대해 살펴보는 것도 상당한 의미가 있을 듯하다.
체르노빌 원전 사고 돌아보기
오늘날까지도 사상 최악의 원전 사고로 꼽히는 체르노빌 원전 폭발사고는 1986년 4월 26일 오전 1시경에 발생하였다.
원자로에서 비정상적인 핵반응으로 열이 많이 발생해 냉각수를 증발시키고, 이때 발생한 수소가 원자로 내부에서 폭발을 일으킨 것이었다.
그런데 이 원자로는 불이 붙기 쉬운 흑연을 감속재(減速材)로 사용하고 있어서 수소 폭발이 더욱 증폭되었고, 설상가상으로 원자로의 격납용기조차도 설치되어 있지 않은 후진적인 원전이었기 때문에 폭발과 함께 엄청난 양의 방사성 물질들이 그대로 누출되는 최악의 사태를 빚게 되었다.
폭발사고 이후 발생한 화재의 소화 작업에 나선 원전 직원 및 소방원 수십 명이 심각한 방사선 피폭으로 사망하였고, 원자로 주변 30km 이내에 사는 주민 9만여 명은 삶의 터전을 버리고 멀리 이주할 수밖에 없었다.
이 사고의 정확한 피해규모는 아직도 논란이 되고 있지만, 인근의 방사능 낙진 및 후유증으로 인한 암 발생 등의 피해자가 최대 27만 명에까지 이르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사고의 피해를 키운 구소련의 낙후된 원자력 발전 기술도 큰 문제로 지목되었지만, 사고의 원인은 체르노빌 원전 관리자들이 운영규칙을 어기고 안전절차를 무시한 데에서 비롯된 어이없는 인재(人災)였다는 점이 더욱 세상을 놀랍게 만들었다.
즉 전기 기사가 원전이 불시 정지했을 때 터빈의 관성을 이용해 전기를 생산할 수 있는지 시험해보겠다는 황당한 생각에서, 핵분열의 제어봉을 제거하고 비상 노심 냉각을 차단하여 시험하다가 결국 원자로의 노심이 녹아내리고 폭발사고로 이어진 것이다.
사고 직후부터 체르노빌 원전 소장 및 구소련 당국은 사고 발생 사실을 은폐하고 안일하게 대처했을 뿐 아니라, 나중에 피해 상황 등도 턱없이 축소 발표하여 갖가지 의혹을 산 바 있었다.
영화 속의 허와 실
영화에서는 핵연료와 자재 등을 빼돌려서 사익을 취해온 원전 관리자들의 부정부패가 원전 사고의 원인인 듯 묘사하고 있는데, 체르노빌 원전 사고가 황당한 인재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비교적 그럴듯한 영화적 상상력이라 하겠다.
영화 속에서 정치범을 구출하고 악의 세력을 응징하고자 체르노빌까지 간 맥클레인 부자의 활약이 펼쳐지면서, 지금은 폐허가 되어 방치된 원전 건물 곳곳에서 쫓고 쫓기는 추격 장면과 총격전 등이 자주 등장한다.
현실의 체르노빌 발전소는 어떨까?
체르노빌 원전 인근은 다량의 방사능 누출로 인하여 토양이 오염되어 농작물 재배도 불가능하고, 동식물들은 유전자 변형으로 갖가지 기형이 속출한 바 있어서 아직도 출입이 통제되고 있다.
또한 사고가 발생한 원자로는 이후 구소련 당국이 몇 년에 걸친 작업으로 석관구조물을 덮어서 일종의 ‘콘크리트 무덤’처럼 되어 있는 형태이다.
원전 부근은 여전히 방사능 수치가 매우 높기는 하겠지만, 26년의 세월이 흘렀으므로 이제는 영화에서처럼 방호복을 입고 원전 관련 건물에 출입하는 것은 가능할 수도 있을 것이다.
다만 영화에서 악당들이 방사능 수치를 측정해가면서 원전 내부를 둘러보던 중, 독특한 화합물을 살포했더니 방사능 수치가 급격히 감소해서 결국 방호복을 벗어도 될 만한 상태가 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것은 현실과는 거리가 매우 먼 영화적 허구에 불과하다.
현재 어떠한 화합물로도 오염된 부분의 방사능 자체를 줄일 수는 없으며, 방사능과 방사성 물질들의 특성상 앞으로도 그런 특수한 화합물이 나오기를 기대하기는 대단히 어려울 것이다.
만약 방사능을 줄이거나 중화시키는 그런 특수한 화합물이 있다면, 혹은 머지않아 그런 물질을 만들 수 있다면 세계 원자력발전 산업에는 그야말로 구세주와 같은 선물이 될 것이다.
원전 작업 시에 일상적으로 사용한다면 일인당 피폭 제한 등에 구애받지 않고 방사능의 공포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일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건설 과정을 둘러싸고 우리나라에서도 큰 사회적 갈등을 빚은 바 있는, 대규모의 방사능 폐기물 관리시설 즉 방폐장 등도 전혀 필요 없게 될 것이다.
원자력 발전의 앞날과 과제
원자력 발전과 관련해서는 사회적 논란이 뒤따르는 경우가 적지 않다.
우리나라에서도 원자력 발전의 지속 여부, 새로운 원전이나 방폐장 건설 등을 둘러싸고 논쟁이 되풀이되면서 극단적인 대립과 갈등을 낳곤 하였다.
더구나 불과 2년 전인 지난 2011년 3월, 일본에서는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발생하여 세상 사람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고, 이후 우리나라를 비롯한 전 세계 원자력 산업은 다시 한 번 딜레마와 위기에 직면해 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체르노빌 사고처럼 바로 다수의 사망자를 발생시키지는 않았으나, 지속적으로 누출된 방사능 물질의 총량은 체르노빌 사고에 못지 않을 것으로 추정되며, 후쿠시마 사고의 INES(국제원자력사고등급)는 체르노빌과 같은 7등급인 최고 등급이다.
비록 대형 쓰나미라는 자연재해로부터 비롯되기는 하였으나, 구소련과 달리 안전에 관한 한 철저하기로 유명한 일본에서 다시 대형 원전 사고가 발생했다는 사실은 원자력 발전의 안전성 및 타당성을 의심하기에 충분하게 만들었다.
일본 당국 역시 사고 이후로 적지 않은 사실을 은폐하거나, 사고 수습에도 위기관리 리더십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고 우왕좌왕하여 큰 실망과 불안감을 안겨주었다.
체르노빌 및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계기로, 반원전운동, 즉 원자력 발전을 지구상에서 아예 추방하자는 운동도 다시금 활기를 띠고 있다.
이를 계기로 독일과 덴마크를 비롯한 유럽 일부 나라들은 ‘탈 원전’을 선언하면서 신규 원전을 건설하지 않을 뿐 아니라, 일정 기한 내에 가동 중인 원자력 발전소도 모두 폐쇄할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우리나라 역시 원전을 반대하는 목소리가 작지는 않으나, 이미 총 발전량의 30% 정도를 원자력 발전이 차지하는 현재, 과연 원전을 대체할만한 확실한 현실적 대안이 있는지는 매우 미지수이다.
이른바 ‘신재생 에너지’의 비중 및 장래 활용 가능성도 우리는 유럽 각국들에 비해 크게 떨어지는 수준이며, 에너지 문제를 완벽히 해결할만한 대안으로 꼽히는 ‘핵융합 발전’은 한국형 핵융합로(KSTAR) 등을 시험 운용하면서 개발하고 있으나, 언제나 실용적인 발전이 가능할지는 아무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의 현실적 여건상, 당분간 원자력 발전이 불가피하다면 보다 만전을 기하여 대중들의 불안감을 해소하고 원전에 관한 원만한 사회적 합의를 이루어 나아가야 할 것이다.
원자력 안전 문제에 있어서 기술적인 측면도 물론 중요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원활한 ‘위험 커뮤니케이션’과 위기관리 리더십이다.
우리나라 대중들이 일부는 과도하게 원자력 발전에 대한 공포와 거부감을 지니고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이는 대중들의 전문지식 부족만을 탓해서는 안 될 것이다.
과거 혹은 현재에도 원자력 관련 당국이 솔직하고 합리적으로 주민들의 이해와 동의를 구하기 위해 충분히 노력해 왔는지 반성할 부분도 적지 않다.
몇 년 전, 미국산 쇠고기의 안전성 문제를 둘러싸고 정부가 위험 커뮤니케이션에 실패하여 적지 않은 혼란과 사회적 비용을 치른 교훈을 잊어서는 안 된다.
원자력 발전은 고도의 기술공학의 결정체이자, 한편으로는 사회적 수용성과 합의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부문이라는 사실을 명심하여, 국민과 정부는 원만하고 합리적인 ‘원자력 리더십’을 정립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