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기술(NET)인증 기술

줌인리포트 - 연구개발은 모닝텍의 생명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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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 정인수(프리랜서)

사진_ 황남수(창해스튜디오)

플랜트 장비와 제철장비, 그리고 방산탑과 같은 대형 장비만 취급하던 모닝텍에게 탈진 인젝터는 마치 거인에게 쥐어진 장난감 같다.

그러나 조선산업의 불황으로 쓰러질 뻔한 모닝텍을 살리고 있는 놀라운 기술이다.

내년도 조선산업이 다시 살아나고 아울러 탈진 인젝터가 상품화되면 모닝텍은 그 이름만큼 밝고도 기쁜 날을 맞이할 것으로 보인다.

민순규 대표를 만나 모닝텍의 희망을 들어보았다.


사명을 모닝텍으로 바꾼 이유는?

한창 추위가 기승을 부리는 겨울, 화신플랜트를 찾아 경남 김해시한림면 안하농공단지에 들어섰다. 추워서일까, 아니면 불황 탓일까.

바람이 차갑게 불어와 농공단지는 을씨년스럽기까지 하다. 마침내 민순규 대표의 차가 한 건물 앞에 멈췄다.

화신플랜트 간판은 없고 ‘모닝텍’이라는 이름이 건물 옆에 걸려 있었다.

“회사 이미지가 너무 무거워 이름을 바꿨습니다.”

‘플랜트’라고 하면 중장비 기계나 건설이 언뜻 떠오르는데, 모닝텍은 왠지 가벼우면서도 산뜻한 느낌이 나서 바꿨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민 대표의 아픔과 희망이 한꺼번에 숨어 있다.

본래 화신플랜트는 조선산업에 쓰이는 장비를 주력으로 제작하고, 최근에는 제철설비와 제강, 가스산업의 방산탑, 산업용접 자동화설비를 많이 다루어왔다.

이중 조선에 사용되는 장비는 1987년 창업 후 회사를 키워온 분야로 STX조선과 STX중공업의 협력업체로 지정되는 등 자신 있는 부문이었다.
 
물론 우리나라가 세계 최강 조선국가로 올라서는데 작은 힘이나마 보태왔다. 그러나 몇 년 전부터 상황이 바뀌었다.

유럽경제가 지속적으로 위축되며 조선산업이 급추락하고 만 것.
 
IMF는 짧았고 그나마 작은 일거리라도 있었지만 지금은 몇 년째 주문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어떻게든 이겨내야지요.”

어렵게 말을 잇는 민순규 대표의 엷은 미소 속에서 아쉬움이 진하게 묻어났다.

그러나 마냥 경기가 살아나길 기다릴 수만은 없는 일이다. 그래서 몇 년 전부터 꾸준하게 투자한 것이 있으니 바로 탈진 인젝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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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장등지에서 발생하는 먼지를 제거하는 장비인데 그간 다뤄온 장비에 비하면 정말 아담하게만 보인다.

조선산업에 사용되는 무빙 셀터나 지방에 도시가스를 공급하는 중간기지 역할을 하는 방산탑은 크기도 크고 가격도 수천만 원에서 수억 원이나 되지만 탈진 인젝터는 한 손으로도 들을 정도로 작고 가격도 2 ~ 3만 원밖에 안 되는 것.

고가의 대중량 장비에서 저가의 소중량 기기로의 변화, 이것이 바로 회사를 화신플랜트에서 모닝텍으로 바꾸게 한 계기이다.

민 대표 또한 마치 무거운 짐을 어깨에서 잠시 내려놓은 듯 ‘거래처에서도 좋아해요. 저도 모닝텍, 하고 부르면 기분이 좋습니다. 밝고 경쾌한 아침에 작은 기쁨을 느끼는 듯해요.’라며 웃는다.


“나는 사장이 되겠습니다.”

학창시절 선생님이 “넌 꿈이 뭐니?”하고 물으시면 민 대표는 “사장님이요.”라고 대답했다.

물론 아무것도 모르던 시절의 이야기이다.

경남 산청의 작은 촌구석에서 태어나 가난을 친구처럼 삼아왔기에 맛있는 것 많이 먹고 좋은 것 살 수 있게 돈을 벌고 싶었고, 그러려면 사장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일찍부터 한 것이다.

어렵게 고등학교를 나와 대한조선공사에 취업을 했는데, 이것이 조선산업과 인연을 맺은 계기였다.

대한조선공사는 조선산업계에서는 사관학교라고 불리는 조선업 인재양성소로 민 대표도 그곳에서 열심히 배워 후에 대우조선으로 옮겼다.

그때까지는 회사를 차릴 생각은 전혀 없었다.
 
그러나 상사와 함께 사우디 제철플랜트 건설현장으로 파견된 뒤 생각이 바뀌었다.

“플랜트 제작 현장에서 1년 정도 근무하고 보니 이것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귀국 후에 회사를 차리기로 결심했지요.”

1987년 민 대표는 부산시 사상구 모라동에 화신산업을 세웠다. 당시 회사를 차리려고 집까지 다 팔았다.

이것이다 싶으면 과감하게 모든 것을 거는 것이 그의 성격을 엿볼 수 있다.

회사는 매해 부쩍부쩍 커갔다. 처음에는 조선 플랜트 부문 기계만을 생산하다, 제철설비와 제강, 방산탑, 크레인 등을 제조하게 되었으며, 산업용접 자동화설비까지 사업영역을 확장하였다.

2006년은 제2의 창업기로 조달청 조달업체로 등록되었으며, 기계설비 공사에도 진출하였고, 회사도 중후하게 성장해 사명도 화신플랜트로 바꿨다.

2008년에 이르러서는 직원만 해도 200명이나 되었고, 매출도 50억 원이나 올리는 어엿한 중소기업으로 올라섰다. 사장이 되겠다는 어린 시절의 꿈을 이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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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원들과 함께 파이팅을 외친다.)


연구개발은 멈출 수 없는 것

그리고 난 후, 5년. 그동안 도대체 어떤 일이 있었는지 말로는 다 표현하기 어렵다. 부쩍 줄은 직원 수가 지난 시절을 대신 알려주고 있다.

IMF가 짧고 강렬하게 지나가는 태풍이었다면 유럽발 경제위기는 조선산업을 헤집고 간 역대 최강급의 태풍이다.
 
회사 이름을 걸고 아직 살아 있다는 것이 신기할 정도이다. 그럼에도 멈추지 않은 것이 있으니 연구개발이다.

다른 부서는 다없앴어도 기술연구소만은 여전히 건재해 소장 이하 연구원 몇 명이 오늘도 연구개발에 몰두하고 있다.
 
그 대표작품이 바로 집진기용 필터 탈진 인젝터 기술로 2012년 4월에 지식경제부 신기술인증을 받았다.

공장마다 먼지나 악취를 제거하는 집진기가 설치되어 있는데, 이 집진기에 쓰이는 탈진 인젝터를 획기적으로 개선한 기술이다.

“현재 대부분의 공장에는 독일에서 생산된 기계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국내 업체들이 OEM방식으로 수입해 판매하는 건데, 이게 바로 그겁니다.”

함께 인터뷰에 응한 정성열 전무는 둥그스름한 물건을 하나 책상위에 올려놓는다. 마치 작은 비행접시처럼 생겼다.

아홉 개의 조각을 용접하거나 볼트 너트로 이은 것이다. 한 개당 가격은 7만 원 정도.

정 전무는 또 하나의 인젝터를 올려놓으며 “우리 회사에서는 이렇게 단순화시켜서 제조원가도 적게 들고, 성능도 우수합니다.”라고 설명한다.

독일산이 아홉 조각을 붙여 만들지만 모닝텍은 세 조각으로 만들어서 가격은 2~3만 원대로 낮출 수 있고, 성능은 실험 결과 기존 인젝터에 비해 2~3배나 높다고 밝힌다.

설명을 듣다보니 문득 의문이 생긴다. 대형 장비로 승부하다 이렇게 작은 부품을 만들어서 어떻게 지난 시절을 되찾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이게 작아 보여도 한 공장에 들어가는 개수가 적게는 수십 개에서 대형 공장의 경우는 수만 개나 됩니다.

지식경제부에 의해 신기술인증을 받아 제품화하면 최고 20%까지는 납품을 지원받을 수 있지요. 우리 회사가 재도약하는데 큰 힘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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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전무는 주변에서 합작으로 사업화하자는 러브콜도 여러 번 받았지만 보다 완벽한 제품을 만들기 위하여 올해 말까지는 연구개발에 더욱 박차를 가할 생각이라고.

회사 살리기에 마음이 바쁜 민 대표도 정 전무의 의견을 받아들여 일단 제품의 완성도를 높이기로 했단다.

“연구개발은 회사의 생명줄입니다. 우리 회사가 아직 살아 있다는 증거이고, 또한 희망이 있다는 증거입니다.
 
이것 말고도 두세 가지 프로젝트를 연구 진행하고 있는데, 그중 하나는 이 탈진 인젝터 기술 못지않은 뛰어난 기술입니다. 내년쯤에는 둘 다 사업화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희망을 이야기해서인지 민 대표의 표정이 훨씬 밝아진다.


분위기를 바꾸고 운명도 바꿨다

인터뷰를 마치고 사진을 찍느라 공장으로 들어섰다. 그가 바라본것은 공장 한쪽에 놓여 있는 탈진 인젝터 실험 장비.

각종 전시회에 나가 인기를 독차지했다는데, 곧 완벽한 제품 모습을 보여줄 계획이란다.

“앞으로 플랜트는 안 하실 건가요?” 기습적으로 물어보았다.

“왜요? 해야죠. 그것은 제가 살아온 길입니다. 버릴 수 없죠. 또 내년도에는 조선산업이 살아날 것으로 전망됩니다.

경기가 살아나기전에는 설비투자부터 하게 되는데, 아마도 올해 말, 늦어도 내년 초부터는 서서히 주문량이 늘어날 겁니다. 그때까지 잘 견디는 것이 저의 목표입니다.”

민 대표는 다시 한 번 각오를 단단하게 다졌다. 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지금까지 산 인생을 싹 바꿔보고 싶을 때가 있다.

화신플랜트에서 모닝텍으로 바꾼 것은 단순히 회사 이름 하나 바꾼 것이 아니다.

분위기를 바꾸었으며, 운명을 바꾸었다. 모닝텍, 그 밝고 명랑한 아침처럼 회사의 앞날에 기쁨이 충만하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