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 - 위기돌파를 위한 산업계의 기술혁신
2008년 금융위기에서 시작된 글로벌 경기침체는 유럽 재정위기로 이어지면서 불황 국면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미국의 재정절벽 해소와 중국의 순조로운 정권교체로 인해 불확실성의 상당부분이 해소되었으나, 그리스를 비롯한 EU의 재정불안 등 아직도 암초가 남아있는 상태다.
이런 난관 속에서도 우리 경제는 3년 연속 수출 세계 7위, 2년 연속 무역 1조 달러, 세계 8위 달성이라는 성과를 거뒀다.
세계 무역규모가 급격히 줄어든 가운데 거둔 성과로 특히 대기업의 수출이 전년 대비 2.4% 감소한데 비해, 중소기업의 수출은 상대적으로 증가(3.2%)해 또 하나의 성과로 평가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브랜드 자산가치도 1조 6,000억 달러로 세계 주요 39개국 중 9위를 기록했다.
인터브랜드가 발표한 ‘2012 세계 100대 브랜드(Best Global Brands 2012)’에서 삼성전자가 세계 9위, 현대자동차 53위, 기아자동차가 87위에 이름을 올리며, 세계시장에서 우리기업의 브랜드 가치가 꾸준히 상승되고 있음을 재확인했다.
그러나 2013년을 맞는 우리 기업들의 고민은 어느 때보다 크다. 지난해 1월부터 10월까지의 수출물량은 전년 동기 대비 5.2% 증가에그쳤는데, 이는 2011년 같은 기간의 증가세인 11.5%에 비하면 절반 수준이다.
올해 수출의 둔화를 걱정하는 이유다. 특히 중소기업의 수출이 늘었다고는 하지만, 전체 수출 중 중소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30%대에 머물러, 우리 중소기업의 글로벌 경쟁력 제고는 아직 먼 길임을 실감하게 했다.
무엇보다 큰 고민은 앞으로 성장을 지속하기 위한 동력이 부족하다는 데 있다. 자동차와 스마트폰을 위시로 수출 경쟁력을 이어가고 있지만, 이 뒤를 떠받칠 뚜렷한 후보 산업이 없다.
녹색산업이 대안으로 떠올랐으나 경기침체가 장기화되면서, 좀처럼 시장이 열리지 않고 있다. 각광을 받았던 전기자동차, 스마트그리드, 태양광 등이 모두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올해 산업기술계는 중소기업의 기술경쟁력 제고와 함께 새로운 성장동력을 위한 기반기술 확보가 여전히 중요한 이슈가 될 전망이다. 또한 이는 새로 출범하는 정부가 가장 심사숙고해야 할 문제일 것이다.
우리 기업의 R&D 위축 경계해야
우리나라 2011년 총 연구개발비는 49조 8,904억원(450억 달러 수준)으로, 전년대비 13.8%(6조 356억원) 증가했다. 국내 총생산(GDP) 대비 연구개발비 비중은 4.03%로 전년도 3.74% 보다 0.29%p 증가했으며, 이스라엘(4.40%)에 이어 세계 2위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주체별로는 기업이 38조 1,833억원(76.5%), 공공연구기관과 대학이 각각 6조 6,733억원(13.4%), 5조 338억원(10.1%)을 사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2011년도 기업이 사용한 전체 연구개발비 38조 1,833억원 중, 대기업의 연구개발비는 28조 3,462억원으로 전년대비 4조 1,333억원(17.1%)이 증가하여 기업 전체 연구개발비의 74.2%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이는 우리나라의 총 연구개발비 상승의 주요인으로 분석되었다. 제조업 분야의 연구개발비는 33조 4,254억원으로 전년대비 4조 6,880억원(16.3%↑)이 증가하였으며,
서비스업 분야의 연구개발비는 3조 3,801억원으로 전년대비 4,189억원(14.1%↑)이 증가하여 기업 전체 연구개발비의 8.9%를 차지하였는데, 이는 주요국과 비교할 때 다소 낮은 수준으로 분석되었다.
걱정스러운 것은 올해 산업계의 R&D 투자는 예년만 같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 때문이다. 한국산업기술진흥협회가 기업부설연구소를 보유한 표본기업 550개사를 대상으로 「2013년도 연구개발 투자계획」을 조사한 결과, 2013년도 R&D 투자와 연구원 채용 증가세가 크게 둔화될 것으로 나타났다.
조사에 따르면 올해 R&D 투자를 전년보다 확대할 계획인 기업은 26.0%로, 2008년 글로벌 경제위기 이후 그 비중이 가장 낮게 나타났다. 연구원 채용을 확대하겠다는 응답도 24.7%에 불과하여 그 비중이 크게 감소했다.
기업유형별로는 대기업의 경우 R&D 투자를 확대하겠다는 응답이 34.0%로 나타난 반면, 중소기업은 26.7%, 중견기업은 18.9% 순이었다.
연구원 채용규모를 확대하겠다는 기업 비중도 대기업(38.3%), 중소기업(25.0%), 중견기업(16.8%)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현상은 경제여건에 대한 부정적 전망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기업들은 향후 경제환경이 현재보다 악화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으며, 경기불황이 장기간 지속될 것으로 내다봤다.
실제 조사기업의 96.4%가 우리나라의 현재 경제환경이 불황이라고 응답했으며, 절반 이상인 52.3%의 기업이 올해 경기가 더욱 악화될 것으로 예상했다. 경기 회복 시기 또한 늦을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다.
2015년 이후에나 회복할 것이라는 응답은 32.6%, 당분간 회복하기 어렵다는 응답도 32.1%로 나타났다.
심각한 문제는 기업의 R&D투자 여력이 위축되면서, 향후 신사업 추진에 걸림돌로 작용할 것이라는 우려다.
실제 이번 조사에서 기업들은 기존 시장의 한계로 인해 R&D를 통한 신사업 진출이 필요하지만, 투자여력 부족으로 단기 위주의 R&D 활동을 추진하고 있다고 응답했다.
이번 조사에서 1년 미만 단기과제 비중은 40.2%로 지난 2009년의 같은 조사결과인 34.7%에 비해 오히려 높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신사업 추진과 관련해서는 인재 확보 면에서도 사정이 여의치 않다. 지난해 산기협이 중앙일보와 함께 주요그룹사의 CTO(Chief Technology Officer)를 대상으로 미래산업의 핵심 기술인력 확보현황을 조사한 결과, 거의 모든 기업에서 충분한 인력을 확보하지 못했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또한 이 때문에 미래사업 준비에 차질을 빚고 있다는 응답도 83%에 달했다.
인력난의 이유에 대해서는 대학이 산업에서 필요로 하는 능력을 갖춘 인재를 양성하지 못한다는 대답이 주를 이뤘다. 즉 인재의 미스매치가 심각하다고 진단하고, 따라서 국가적 차원에서 대책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글로벌 기업의 R&D는 빠른 회복세
2013년도 우리 기업의 R&D 투자세가 다소 꺾일 것으로 전망되고 있는 가운데, 글로벌 기업들의 R&D 투자는 금융위기 당시의 마이너스성장에서 벗어나 빠른 회복세를 보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EU의 ‘2012 Industrial R&D Investment Scoreboard’에 따르면 2011년 글로벌 1,500대 기업의 R&D 투자는 전년대비 7.6% 상승하면서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 수준을 회복했다.
1,500대 기업의 총 R&D 투자는 5,107억 유로에 달했다. 이중 100대 기업은 2,916억 유로를 투자해 1,500개 기업 총투자의 57%를 차지했다.
또한 100대 기업 중 75개 기업이 전년대비 R&D 투자가 증가했으며, 이 중 43개 기업은 두 자리 수 증가를 기록하는 등 뚜렷한 증가세를 기록했다.
미국과 유럽 그리고 일본을 제외한 기타 국가의 기업들은 전년 대비 11.3% R&D 투자를 늘리면서 강력한 성장세를 보였다.
반면에 일본기업의 경우 R&D 투자 증가율이 1.7%에 불과했는데, 이는 2011년 지진피해 등의 여파에 의한 것으로 보인다.
한편 토요타자동차가 77억 유로를 R&D에 투자해, 2년 만에 세계 1위에 복귀했으며, MS가 한 계단 오른 2위에 랭크됐다. 우리 기업은 삼성이 전년대비 두 계단 상승한 세계 5위에 이름을 올렸고, 뒤를 이어 LG가 36위, 현대자동차가 82위로 100위권에 랭크됐다.
이를 포함해 총 35개 한국 기업이 1,500대 기업에 포함됐다. 올해 글로벌 기업들의 R&D 투자 증가추이는 미국 산업연구협회 (IRI)의 조사결과(2013 R&D Trends Forecast)를 통해서 유추해 볼 수 있는데,
이 조사에 따르면 조사기업의 29%가 올해보다 R&D투자를 늘리겠다고 응답해, 우리 기업 조사결과인 26%보다 높게 나타났다.
물론 EU의 재정위기로 인해 유럽 기업들의 R&D 투자 또한 긍정적 기대가 쉽지 않은 상황이지만, 전체 추세로 볼 때 올해 글로벌기업의 R&D 투자는 안정 속에서 상승 추이를 이어갈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신정부, 산업기술계 활력 제고에 초점 둬야
이처럼 글로벌 기업들이 속속 R&D 투자를 정상화시키면서, 올해부터 전 세계적으로 기술혁신 경쟁이 다시 이어질 전망이다. 이는 우리 기업에게 큰 도전이 될 전망이다.
특히 올해 우리 기업들이 R&D에 대해 다소 소극적으로 나설 것이라는 전망이 대두되면서, 이에 대한 경계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상태다.
따라서 새롭게 출범하는 신정부의 과학기술 정책에 이런 문제에 대처할 수 있는 방안이 담겨야 한다는 지적이 힘을 얻고 있다.
지난 1998년 외환위기 당시 기업의 R&D 투자가 크게 위축되어 성장잠재력에 큰 타격이 되었던 일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1997년 국내 총 R&D 투자의 73%를 차지했던 산업계의 비중이 1998년에는 69%까지 떨어지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었다.
당시 국가 전체 R&D투자는 1년 사이 12조원에서 11조원으로 8,000억원 이상 감소되었고, 2000년에 이르러서야 겨우 회복세로 돌아선 바 있다.
다행히 그동안 우리 기업이 기초체력을 착실히 다졌기 때문에, 외환위기 당시의 상황이 재현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그러나 투자감소로 인해 벌어졌던 갭을 비교적 빠르게 회복했던 1990년대에 비해, 지금은 기술의 발전 속도가 매우 빨라 추격이 어렵기 때문에 오히려 R&D 투자 감소의 충격여파가 더 장기화될 수도 있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기업의 R&D 투자 의욕을 고취하고 국가경쟁력을 지속적으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기업의 다양한 규모와 수요에 맞추어 기존의 조세, 자금, 인력 등 정책수단을 다양화 하고 지원제도 간 연계를 강화하는 등 정부의 R&D 지원제도가 지속적으로 강화되어야 한다.
아울러 대학, 연구기관의 연구역량과 성과를 기업이 원활하게 활용할 수 있도록 공급자 중심에서 수요자 중심의 R&D 시스템을 재정립하기 위한 중장기 전략을 수립할 필요가 제기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