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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e in Tech - 판타지와 과학 사이

판타지와 과학 사이

호빗 : 뜻밖의 여정

작년 12월에 개봉된 판타지 영화 <호빗 : 뜻밖의 여정>은 예전부터 국내외에서 큰 화제와 관심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감독을 맡은 피터 잭슨이나 원작소설의 작가 톨킨 모두 당대의 저명한 거장일 뿐 아니라, 두 사람의 작품으로서 몇 년 전에 흥행에서도 크게 성공했던 <반지의 제왕> 시리즈의 프리퀼 성격의 영화이기 때문이다.

영화의 이런저런 에피소드 외에도 소소한 과학이야기도 한번 살펴보자.


호빗족 빌보의 모험을 그린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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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호빗 족의 한명이었던 빌보 배긴스(마틴 프리먼 역)에게 어느 날 갑자기 마법사 간달프(이안 맥켈린역)가 찾아온다.

그는 빌보에게 동쪽의 에레보르 왕국을 되찾기 위해 함께 모험을 떠나자는 제안을 하는데, 그곳은 예전에는 난쟁이족의 영토였지만 무서운 용 스마우그에게 빼앗겨 황무지로 변한 땅이었다.

빌보는 모험이 그다지 내키지 않았지만, 간달프가 보낸 난쟁이족들과 휘말리면서 어쩔 수 없이 위험천만한 뜻밖의 여정을 떠나게 된다는 이야기이다.
 
14인의 원정대를 이끄는 리더는 난쟁이족들의 왕의 후손인 전설적용사 소린(리처드 아미티지 역)이다.
 
그들은 모험 와중에 고블린, 트롤, 오크족 등 흉악한 종족과 괴수들과 마주치며 위험에 빠지기도 하고, 간달프 이외의 다른 마법사와 요정족 등을 만나 여러 도움을 받기도 한다.

이처럼 험난한 여행의 과정에서 빌보는 그간 자신도 몰랐던 용기와 능력을 발견하면서 원정대와 소린에게 큰 힘이 되기도 한다.

또한 빌보는 고블린들과 싸우다가 일행과 떨어져 헤매던 중에 기이한 존재인 골룸을 만나게 되는데, 그와 수수께끼 대결을 펼치던 와중에 골룸의 대단한 보물이었던 반지 하나를 손에 넣게 된다.
 
원래 골룸이 가지고 있던 이 반지가 바로 후속 작품인 반지의 제왕에 등장하는 ‘절대반지’이다.


호빗족,
실제 인류의 진화와의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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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에 등장하는 여러 종족과 캐릭터들을 찬찬히 살펴보는 일은 매우 흥미가 있을 뿐만 아니라, 판타지, 신화라는 문학적 측면과 과학기술 측면에서 모두 의미가 있을 듯하다.

이 영화의 제목이자 주인공인 빌보가 속한 호빗(Hobbit)은 작은키에 친근한 느낌을 주는 종족이다.

호빗이라는 단어는 고대영어 즉 로한어의 ‘굴 파는 사람들’이란 뜻을 가지고 있는 ‘홀뷔틀란(Holbytlan)’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빌보 배긴스와 그의 조카로서 <반지의 제왕>의 주인공인 프로도 배긴스가 호빗족인데, 성인이 되어서도 보통 인간의 허리 정도까지만 자라는 것으로 나온다.

또한 발등에는 곱슬곱슬한 털이 나있고, 발바닥 가죽은 매우 튼튼해서 신발을 신지 않는 것도 중요한 신체적 특징이다. 영화에 나오는 호빗 빌보의 길다란 발은 실리콘으로 제작하여 연장했다고 한다.

그런데 인류의 진화 계통상 호빗족과 같은 작은 종족이 실제로도 존재했었다는 연구가 나와서 사람들의 놀라움과 관심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즉 2003년 인도네시아의 플로레스 섬에서 인류의 화석들이 발견되었는데, 키가 100cm 남짓으로 현대 인간의 반 정도밖에 되지 않아 이른바 호빗족이라 불리게 되었다.

현생 인류 중에서 가장 작은 편인 피그미족보다도 작은 이 인류 화석들의 정체에 대해 그간 여러 논란이 일기도 하였다.

즉 현생 인류이지만 왜소화 혹은 소뇌증에 걸린 것에 불과하다는 주장도 있었는데, 결국 여러분석을 통하여 현생 인류와는 다른 종인 것으로 판단을 내렸다.

이인류는 약 100만 년 전에 그곳에 이주했던 호모 에렉투스(Homo erectus)의 후손으로 추정되며, 그 섬 이름을 따서 호모 플로레시엔시스(Homo florensiensis)라고 명명되었다.


영화 속 트롤과
실제 특허괴물(Patent Tro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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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종족의 하나인 트롤은 원래 북유럽 신화에서 유래된 오래된 캐릭터이다.

북유럽의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의 전설에 따르면, 거인족의 후예로 힘이 무척 세고 몸집도 큰 괴물로서 사람과 가축들을 잡아먹기도 하지만, 무시무시하고 흉포한 괴물이라기보다는 사람들에게 당하기도 하는 좀 어리숙한 존재로 묘사된다.

이 영화에서도 트롤들은 덩치는 크지만 행동이 느리고 머리도 좋지 않은 아둔한 괴물로 나온다.

트롤과 관련해서, 최근 과학기술계와 산업계에서 주목해야 할 대상으로서 ‘특허괴물(Patent Troll)’ 이라는 것이 있다. 이는 일반적으로 제품을 생산하거나 판매는 하지 않고, 특허소송만으로 수익을 내는 특허전문기업을 지칭한다.

이들은 일반 기업들처럼 실질적인 생산이나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특허 등의 지식재산권을 갖거나 행사하는 것이 아니라,

특허들을 보유만하면서 침해 기업들을 대상으로 소송을 제기함으로써, 승소하여 로열티를 받거나 화해하는 과정에서 배상금, 합의금등을 챙기는 방법으로 수익을 낸다.

이 용어는 미국의 반도체 회사인 인텔(Inte)이 1998년 ‘테크서치’라는 무명의 회사로부터 소송을 당했을 당시, 인텔 측의 변호를 맡았던 변호사가 테크서치를 가리켜서 ‘특허괴물(Patent Troll)’이라고 비난한 데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최근에는 인터렉츄얼 벤처 사(IV : Intellectual Ventures) 등의 세계적인 특허괴물 회사들이 수많은 특허들을 매입하고 국내 대기업들을 대상으로 거액의 로열티를 요구하는 경우가 잦아지면서,

특허괴물에 대한 대응책과 지식재산권 관련 대안 등이 시급히 요구되고 있다.


골룸,
그리고 절대반지와 투명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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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의 거의 마지막 부분에서 등장하는 매우 흥미로운 캐릭터로서 ‘골룸(Gollum)’이 있다.

골룸은 원래 호빗족의 일원으로서 스미골(Smeagol)이라는 이름의 착한 이였지만, 친구를 죽이고 사우론의 절대반지를 차지한 이후로 반지에 중독되어 정신과 육체가 모두 망가진 비극적인 캐릭터이다.

흉측한 모습의 이 캐릭터는 기침을 할 때마다 ‘골룸, 골룸…’ 소리를 내어서 골룸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는데, 타인에 대한 악랄한 증오와 자기혐오, 그리고 환희와 자기애 등이 순간적으로 교차하는 자기분열적인 모습이다.

즉 ‘지킬박사와 하이드’처럼 하나의 개체 안에 선과 악이 극단적으로 공존하는 캐릭터인데, 골룸을 인용한 정신분석학, 심리학 논문들이 여럿 나올 정도로 정신분열적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하겠다.

한편 빌보가 골룸과 수수께끼 대결을 펼치다가 골룸의 보물인 절대 반지를 손에 넣고 그의 소굴을 빠져가는 과정에서 우연히 반지를 낀 빌보의 모습이 투명해지면서 골룸에게 보이지 않게 되는 장면이 나온다.

다른 판타지 영화인 ‘해리포터 시리즈’에서도 몸을 감추는 투명망토가 간혹 등장하곤 하는데, ‘투명인간’을 만드는 기술은 최근 연구가 진전되면서 실제로도 어느 정도 구현이 되고 있다.

일본의 대학 등에서는 실제로 카메라 등을 이용하여 뒤의 배경이 보이는 것처럼 만드는 방식을 활용하였는데, 이는 실제 현실과 가상 물체가 합쳐진, 일종의 증강현실(Augmented Reality)과 비슷한 원리이다.
 
이런 기술을 구현하려면 망토를 입은 사람의 뒤를 촬영할 비디오카메라, 카메라의 이미지를 증강시킬 컴퓨터, 이미지를 투사하는 프로젝터와 반사장치 등의 다소 복잡한 장비와 시스템이 필요하게 된다.

최근 미국에서는 투명망토를 실현시킬 단서를 제공할만한 특수물질들을 개발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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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명 메타물질로 불리는 이 물질은, 반사되는 가시광선의 방향을 제어해서 물체를 어느 정도 투명하게 보이게 하는 것이 가능하다.

미국의 한 대학 연구진은 나노컵이라 불리는 메타물질을 이용하여 빛을 제어하는데 성공했는데, 나노컵의 입자들이 동일한 방향으로 반복적으로 정렬되어 있어서 안으로 들어온 빛이 모두 한 방향으로 나가게 된다고 한다.

따라서 반사광이 사람 눈에 들어오지 않게되어 물체가 보이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얼마 전에는 미국의 다른 대학에서 빛의 굴절 원리를 활용하는 새로운 메타물질을 개발했다고 한다.

아주 얇은 두께의 그물망과 나노미터 굵기의 은선으로 메타물질을 만들어서 빛을 굴절시키는 방식이다.

물체에 도달한 빛이 굴절되어 주위를 돌아서 뒤쪽으로 통과한다면, 사람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마찬가지가 된다.

그러나 이들 메타물질들의 투명 정도가 아직 만족스러울만한 수준은 아니어서 안보이게 하고 싶은 물체가 불투명하게 눈에 띄는 상태라고 한다.

또한 몇 년 전에는 마이크로파 단위의 전자기파가 물체에 닿으면 그 방향을 바꿀 수 있는 메타물질을 개발하는 데에 성공한 바 있으나, 이 역시 가시광선보다 파장이 긴 마이크로파만을 대상으로 한 것이어서 투명물질의 개발과는 여전히 거리가 있다.

증강현실을 융합시킨 기술이든, 메타물질 등을 이용하여 투명망토를 만드는 기술이든, 이런 기술이 실용화될 정도로 발전한다면 응용할 수 있는 분야는 매우 넓다.

즉 내시경 등을 통하지 않고도 환자의 신체 내부를 볼 수 있다면, 의사의 진료와 수술 등에도 매우 유용하게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아군의 모습을 철저히 감춰서 적군의 눈에 띄지 않게 한다면 전투 시에 크게 유리할 것이므로, 군사적인 목적으로도 이런 기술이 연구되고 있다(‘투명기술’ 관련 자세한 내용은 본지 Hot Agenda 코너를 참고해도 좋겠다).


첨단과학기술을 이용한
48프레임의 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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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판타지와 과학 사이를 오가면서 이 영화를 감상하는 재미도 쏠쏠하겠지만, 48프레임을 사용한 HFR(High Frame Rate) 시스템으로 제작된 이 영화의 생생한 화면을 즐기는 것 또한 첨단과학기술의 또 하나의 승리라 하겠다.

즉 기존의 보통 영화는 초당 24프레임인데, 프레임 레이트란 사람의 눈에 보여지는 이미지의 숫자를 의미한다.

48프레임으로 촬영한 이 영화는 초당 이미지 숫자가 보통 영화보다 두 배나 많기 때문에 당연히 기존의 영화에 비해 화질이 뛰어나고, 피사체의 움직임 역시 훨씬 부드럽고 자연스럽다.

특히 스마우그와 맞서는 난쟁이족의 전투 장면을 비롯하여 광대한 평원에서 오크족의 추격 장면, 고블린의 지하 동굴에서 벌어지는 필사의 탈출 장면 등 움직임이 빠른 동적인 장면에서 HFR 시스템의 진가가 더욱 드러난다고 하겠다.

그런데 이러한 영화 촬영기술의 발전이 한편으로는 제작진에게는 비용의 증가뿐 아니라 새로운 과제와 부담을 안겨줄 수도 있다.

예전에 HDTV가 대중화 될 무렵, 선명한 화면으로 인하여 배우의 분장 등에 예전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과 비용을 들여야만 했던것과 마찬가지이다.

즉 TV건 영화건 뇌의 잔상효과를 이용하는 것은 마찬가지인데, 프레임이 늘어나고 화면이 선명해질수록 사람 뇌를 속이기가 더욱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역시 궁극적으로는 첨단과학기술의 힘을 더욱 빌릴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