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 & 사이언스

해리포터 ‘투명망토’ 입을 날 멀지 않았다

영국의 소설가 조앤 롤링의 대표작이자 영화로 제작돼 큰 인기를 누렸던 <해리포터>에는 우리의 눈과 귀를 놀라게 하는 마술이 많이 등장한다.

그 중에서도 가장 신기한 장면은 ‘투명망토’다. 마법학교에 입학한 해리포터가 선물로 받은 투명망토를 몸에 두르자 감쪽같이 사라져 버리는 모습은 잃어버렸던 동심을 일깨울 정도로 흥미로운 장면이다.

해리포터가 투명망토를 입고 학교를 누비던 것처럼 우리도 쉽게 몸을 숨길 수 있는 날이 올까?



빛도, 소리도 피해 가는 ‘메타물질’의 발전

2000년대 중반만 해도 물리학에서 투명망토는 상상 속에서나 가능한 기술이었다. 빛과 물질의 관계를 생각하면 도저히 현실성이 없었던 것이다.

빛은 어떤 물질을 만나면 반사하거나, 흡수되거나, 통과하게 된다. 그 덕분에 우리 눈은 사물의 형태와 색깔 등을 볼 수 있다.

그런데 물질이 눈에 보이지 않으려면 빛을 반사하거나 흡수해서는 안 된다. 빛을 조금이라도 반사하면 튕겨 나온 빛 때문에 금방 눈에 띄고, 빛을 약간이라도 흡수할 경우 주변보다 어두워져서 티가나기 때문이다.

물질이 빛을 모두 통과시키려면 우리 몸이 공기 같은 상태가 돼야 하는데, 그럴 가능성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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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투명망토는 어떻게 물질이 보이지 않게 만드는 것일까. 답은 간단하다. ‘물질이 빛을 피해서 지나가게 하는 것’이다. 물질이 빛을 만나지 않는다면 반사하거나 흡수할 일도 없으므로 마치 그 자리에 없는 것처럼 만들 수 있다.
 
이런 일이 가능하려면 투명망토는 빛을 꺾이게 만들어서 물체가 빛을 피하게 만들어야 한다. 마치 흐르는 시냇물이 돌을 만났을 때 돌 주변을 휘돌아 흘러간 뒤 다시 만나서 흐르게 하는 것처럼 말이다.
 
물론 이런 식으로 빛을 굴절시키는 물질은 자연에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과학자들은 자연의 한계를 넘어서는 이런 물질을 만들어내는 데 도전했다.

이 물질은 ‘메타물질’이라고 부르는데, 빛의 파장보다 구조 크기가 작은 인공적인 물질이다. 구조 크기가 빛의 파장보다 훨씬 작으면 빛은 그 구조를 하나로 인식하기 때문에 자연의 물질이 절대 할 수 없는 수준까지 심하게 빛을 꺾을 수 있다.

그러니 빛을 물질주위로 휘돌아가게 만드는 투명망토 재료로 충분한 것이다. 메타물질의 가능성은 영국 임페리얼대 이론물리학자 존 펜드리 박사로부터 시작했다.

레이더에 탐지되지 않는 전투기용 탄소 소재의 원리를 밝히는 과정 중 ‘미세한 수준에서 물질의 내부 구조를 인위적으로 바꿀 수 있다면 빛에 대한 성질도 조절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낸 것.
 
1999년 논문으로 발표된 이 아이디어는 2006년 5월 미국 듀크대 데이비드 스미스 교수에 의해 실현됐다. 레이더와 위성통신에 쓰이는 극초단파(Microwave)의 흐름을 바꿀 수 있는 메타물질을 만든 것이다.

스미스 교수가 만든 메타물질 속에는 전자극 초단파 왜곡장치가 들어 있어 특정 주파수의 극초단파를 굴절시킨다.

이후 투명망토 기술은 점차 발전해 2008년에는 굴절시킬 수 있는 빛의 파장 범위를 근적외선 영역까지 끌어올렸고, 어느 방향에서나 물체를 감춰주는 입체 투명망토도 나왔다.

빛뿐 아니라 소리까지 투명하게 만드는 ‘침묵망토’에 관한 연구결과도 나왔다. 소리도 빛처럼 물체에 부딪쳐 울리는 것이므로 투명망토처럼 물체 주위에서 휘어지도록 만들면 시끄러운 소음 등을 차단할 수 있다.

2008년 6월 스페인의 발렌시아 폴리테크닉대 산체스 데헤사 교수팀은 컴퓨터 모의실험으로 2차원에서 음파를 숨길 수 있다는 것을 밝혔다. 중국 우한대에서도 음파을 통과시키는 메타물질을 개발하고 있다.

가장 최근에 나온 투명망토 기술은 우리나라 과학자가 주도했다. 연세대 김경식 교수와 듀크대 스미스 교수가 이끈 국제공동연구진은 0.9mm 크기의 실리콘 고무튜브를 이어 붙여 200cm² 크기로 만든 ‘스마트 메타물질’을 만들어 2012년 11월 20일자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Nature Communications)’에 발표했다.
 
스마트 메타물질은 탄성이 있고 모양이 바뀌어도 굴절률이 자동으로 변해 물체를 숨기는 기능을 유지했다. 이 물질로 투명망토를 만들어서 입고 움직여도 투명효과가 유지된다는 뜻이다.

고무튜브를 현재보다 수십 만분의 1 정도로 작게 만들면 가시광선에서도 투명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으로 예상돼 투명망토가 현실화될 날을 앞당긴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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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소나노튜브로 신기루 현상을… 광학위장 기술도 쓰여

메타물질 외에 다른 방법으로 투명망토에 도전하는 연구도 있다. 탄소나노튜브에 열을 가해 빛을 굴절시키는 것이다.

2011년 10월 미국 댈러스대 나노테크연구소에서는 이런 방법으로 물체를 숨기는데 성공했다.

연구진은 탄소나노튜브 종이에 전기로 열을 가했고, 이 열기로 주변의 빛을 굴절시키는 ‘광열편향’ 현상을 만들었다. 광열편향 현상은 지면이 너무 뜨거워지면 공기와 온도차가 커져 빛의 굴절이 일어나는 현상이다.

쉽게 사막에서 볼 수 있는 ‘신기루 현상’이나 뜨거워진 아스팔트의 아지랑이를 떠올리면 된다.
 
탄소나노튜브는 탄소 원자가 육각형으로 결합해 원통형을 이룬 물질인데, 탄소 분자의 결합이 매우 단단해 강도가 크고, 열전도성도 우수해 미래 소재로 각광받고 있다.
 
연구진은 탄소나노튜브 종이를 물에 담그고 전기로 가열해 탄소나노튜브 종이가 사라지는 실험에 성공해 탄소나노튜브로 투명망토를 만들 가능성과 투명도와 불투명도를 조절할 수 있다는 것도 보여줬다.

메타물질이나 탄소나노튜브가 아니라도 이미 활용되고 있는 투명화 기술로는 ‘광학위장(Optical Camouflage) 기술’을 들 수 있다.

이는 투명하게 보이려는 물체의 무늬와 색을 주변과 똑같이 만드는 것이다. 이 기술은 카메라 같은 전자 광학기기를 최대한 활용하면 가능하다.

숨겨야 할 물체에 카메라와 스크린을 달고, 카메라로 주변 환경을 계속 촬영하면서 그 영상을 실시간으로 스크린에 전달하는 방식이다. 이렇게 하면 주변 환경과 똑같은 화면이 나오는 스크린 뒤에물체나 사람을 숨길 수 있다.
 
물론 이 방법에는 장비와 전력 등이 들기 때문에 언제 어디서나 실현하기는 어렵다.


군사, 기계, 재해 방지, 생명연구 등 쓰임새 무궁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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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체가 감쪽같이 사라지는 투명망토가 등장한다면 우리 생활은 어떻게 달라질까? 가장 먼저 떠올릴 수 있는 분야는 군사기술이다.

현재 군사적으로 쓰는 스텔스 전투기 등을 투명하게 만들어 레이더망뿐 아니라 사람 눈에도 보이지 않도록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기술을 응용해 소리를 감출 수 있는 침묵망토가 개발되면 잠수함을 찾는 데 쓰는 음파탐지기도 무력화된다. 투명망토와 침묵망토가 있다면 누구도 감히 넘볼 수 없는 군사력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투명망토 기술은 군사적인 부분에만 국한되지는 않는다. 항공기나 자동차 등 기계에 투명망토 기술을 적용하면 지금보다 조종이 훨씬 쉬워질 수 있다.

가령 항공기 몸체의 투명도를 조절할 수 있다면, 조종사는 이륙과 착륙을 할 때 지금은 볼 수 없는 영역까지 훤히 볼 수있다.

보조날개가 제대로 돌아가는지, 착륙장치가 잘 작동하는지 쉽게 파악할 수 있게 되면 한층 안전하게 비행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자동차의 경우도 마찬가지며, 각종 기계를 작동할 때도 눈에 보이지않아 해결하지 못했던 문제를 해결하는 데 큰 도움을 줄 것이다.

파장을 꺾을 수 있는 기술은 초소형 휴대전화를 탄생시키는 데도 응용될 수 있다. 미국 샌디에이고 캘리포니아대의 톰 드리스콜 연구원은 미국 듀크대, ETRI(한국전자통신연구원)의 도움을 받아 다양한 파장의 전파를 굴절시킬 수 있는 메타물질 기술을 개발했다.
 
이 메타물질을 안테나에 사용하면 안테나 주변의 전파를 반사시키지 않고 굴절시켜 더 효율적으로 모을 수 있다.

이 기술이 상용화되면 그동안 전파를 잘 모으기 위해 크기를 줄일 수 없었던 안테나를 작게 만들 수 있어 초소형 휴대전화를 만드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지진이나 파도 같은 자연현상을 피하는 데도 투명망토 기술이 쓰일수 있다. 프랑스 프레넬 연구소의 스테판 에녹 박사는 2009년 7월 투명망토처럼 원형고리로 건물을 감싸면 지진파가 고리를 통해 휘어져간다는 것을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확인해 발표했다.

땅속에 있는 건물 기초를 지름 10m의 플라스틱 고리로 둘러싸면 고리 내부에는 지진의 피해를 일으키는 표면파가 전달되지 않는다는 것. 원형고리의 크기를 줄여서 자동차나 기계에 응용하면 진동을 줄이는 데도 이용할 수 있다는 게 과학자들의 전망이다.

투명망토의 원리를 소리 파장에 응용해 소리의 방향을 틀 수 있는 침묵망토는 도심의 소음이 집이나 사무실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막을 수 있다.

또 콘서트홀 건축도 효과적으로 바꿀 수 있다. 기존 콘서트홀은 소리가 막히지 않도록 만들기 위해 기둥을 세우지 못하므로 건축비용이 훨씬 많이 든다. 그러나 침묵망토 기술이 개발되면 기둥 뒤로도 소리가 흘러가게 할 수 있기 때문에 기둥을 세워도 된다.

투명망토 기술과는 조금 다르지만 생물 표본을 투명하게 만드는 기술도 진행되고 있다. 일본 이화학연구소 미야와키 아츠시 박사팀은 특별한 수용성 시약(Sca/e)을 만들어 표본을 손상시키지 않고 조직을 정밀하게 관찰할 수 있게 만들었다.

이 용액을 활용하면 생물의 생생한 3차원 구조를 파악할 수도 있다. 빛의 기본적인 성질을 이해한 과학자들에게 투명망토는 현실에 나타날 수 없는 천덕꾸러기였다.

그러나 메타물질이라는 아이디어에서 출발한 과학자들은 연구를 시작한 지 20년도 안 돼 불가능할 것 같은 일들을 가능하게 만들고 있다. 이런 추세라면 머지않아 가시광선영역을 모두 피하고 자유롭게 휘어지는 메타물질이 개발될지 모른다.

이런 연구를 하는 과정에서 나온 아이디어는 우리를 곧 SF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세상 속에 살게 만들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