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러스 에세이 - 인재가 없는 것이 아니라, 인재로 키우는 노력이 없는 것
중소기업은 물론 대기업 경영진을 만나면 한결같이 듣는 소리가 있다. 요즘은 쓸 만한 인재가 없다는 것이다.
이공계 기피다 뭐다 하면서 우수한 일류대학 학생들이 산업 현장으로 오지 않는다고 한다.
특히 중소기업을 경영하는 분들은 삼성이나 현대 같은 대기업에서 일류대학 출신들을 싹쓸이 하는 바람에 자기들에게 올 인재가 없다고 이야기한다.
인재가 없어서 회사 문을 닫아야 할 지경이라고 하는 분도 많다. 대기업 경영진들의 인재 타령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다. 인재 부족으로 기업은 물론, 나라의 앞날까지 걱정해야 할 판이라고 한다.
이런 말들은, 일류 대학 출신만 인재이고, 2류나 3류 대학 출신은 인재가 아니라는 등식이 성립할 때만 맞는 말이다. 과연 맞는 말일까?
(나는 일류대학 출신에, 일류대학에서 박사까지 거쳤기 때문에 자격지심으로 이런 소리를 하는 게 아니라는 점을 분명하게 밝힌다.)
일류대학 출신만이 기업에 필요한 우수한 인재이고, 그렇지 않은 대학 출신은 우수함과는 거리가 먼 것일까?
요즘 대학 교수들은 확실하게 평준화되어 있어 일류건 2류건, 도시건 지방이건 대학에서 가르치고 배우는 것에는 차이가 거의 없다.
그런데도 일류대학과 2류대학 출신을 인재와 비인재로 나눈다면, 그 원인은 입학 당시의 수능점수 몇 점 차이에서 비롯되어야 한다는 말이 된다. 어림없는 말이다.
중소기업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보면, 월급도 적고 근무 강도는 높지만, 부지런하고 의욕이 넘치고 매우 능동적이다.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는 절박성에서는 오히려 더 우수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도 왜 이들은 인재 대우를 받지 못할까? 옛날의 수능점수 때문에? 이상하지 않은가.
인재 타령을 하는 사람들 중, 인재에 대해 딱 부러지게 정의하는 사람도 거의 없다. 출신학교나 학벌만 이야기할 뿐, 어떤 사람이 인재인지에 대해서 의견이 제각각이다.
상반된 말까지 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눈치가 빨라야 한다면서 한눈 팔지 않고 일하는 사람이 인재라고 하는가 하면, 묵묵히 맡은 바 일을 해야 한다면서 네트워크를 잘 형성하고 관리하는 사교적인 사람을 인재라고 이야기한다.
한 분야를 깊이 파고들어야 한다면서 이것저것 폭넓게 알아야 한다고 한다. 열정적이어야 한다면서도 냉정할 것을 요구한다.
한눈 팔지 않고 일하면서 이 부서 저 부서, 이 사람 저 사람 눈치를 보아가면서 눈치껏 일할 수 있을까? 묵묵히 자신이 맡은 바를 수행하면서, 다양한 계층,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어울리면서 네트워크를 유지 관리할 수 있을까?
관심 분야가 다르고 취향도 다른 사람들과 접촉하려면 자신도 그렇게 다양하게 행동해야 할 텐데 말이다.
열정적으로 일을 하려면 냉정하게 판단하기보다는 행동부터 해야 할 텐데, 열정적이면서 냉철할 수 있을까? 일류대학 출신자에게는 가능한 일이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불가능한 일일까? 그럴 리 없다.
인재의 기준부터 바로 세워야 한다. 기업에서 인재는 ‘일을 잘하는 사람’이다. 일을 잘하는 사람은 많은 것을 알고 있다.
자신 스스로 많이 알기도 하지만, 많이 알고 있는 사람을 많이 안다. 일류대학 출신이라고 해서 기업에서 필요한 것을 많이 아는 것이 아니다.
대학에서 배운 것은 대학별로 크게 차이가 나지도 않고 또, 실제 현업에서 다루는 업무와는 크게 다르기 때문이다.
자신 스스로 알고 있는 것보다 더 효과적인 것은, 네트워크 사람을 잘 활용하는 것이다. 따라서 인재의 기준 중 하나는 네트워크를 어떻게 관리하고 어떻게 활용하는가가 될 것이다.
이런 점에서 지방대학이나 2, 3류대학 출신자들이라고 해서 뒤처질 일이 아니다. 이런 인맥 관리의 중요성을 일깨워주고 관리하도록 한다면 기업에 필요한 진정한 인재가 될 것이다.
일을 잘하는 사람은 일 처리를 잘한다. 일을 과학적으로 또 체계적으로 한다. 일 처리와 관련해서는 일류대학이나 그렇지 않은 대학이나 다를 게 전혀 없다.
어느 대학에도 일 처리 관련한 커리큘럼조차 없으니 말이다. 석사나 박사 과정을 거쳐도 다를 게 없다. 일 처리 관련해서는 학교 출신만으로는 도저히 판가름할 수 없다.
때문에 일 처리 관련하여 제대로 배우고 익히게 한다면 대학 출신에 관계없이 기업에 필요한 인재가 될 것이다. 회사에 와서맡은 일에 대해서 많이 알게 하는 것, 당연히 회사의 몫이다.
실제 업무 관련한 일은 학교에서 배운 바와 매우 다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사람을 채용하면 전문지식을 시스템적으로 교육하지 않고, 곧바로 현업에 투입한다.
기본적인 지식조차도 가르치지 않고 현장에 투입하는 경우도 많다. 아는 것 없이 일을 하니 제대로 성과를 낼 수 없고, 시간도 많이 걸리고 돈도 많이 든다.
회사가 할 일을 하지 않고 인재 타령만 하고 있는 것이다. OJT(On the Job Training) 이상으로 학습하게 하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전문지식은 제대로 커리큘럼을 만들고, 전문 인력을 동원하여 배우도록 해야 한다. 구태여 외부 전문강사를 부를 이유도 없다.
사내에 더 잘 알고 있는 사람을 활용하면 된다. 또한 많이 알고 있는 사람들과 교류하여 네트워크를 구축할 수 있도록 다양한 채널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이런 일은 중소기업은 물론, 대기업에서도 본인 스스로 하기는 매우 어렵다. 경영자가 챙겨주어야 한다. 인재로 키우는 것은경영자의 몫이라는 말이다.
일 처리를 잘하도록 하는 것 역시 당연히 회사의 몫이다. 일 처리 관련하여 학교에서 배운 바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힘이 장사인 사람이 호미로 일을 한다면, 아무리 허약한 체질이라도 포크레인으로 일하는 사람을 이길 수 없다.
Patent Map, Design of Experiment, TRIZ, Technology Tree, Technology Roadmap과 같은 포크레인 급 능력을 갖추게 하면 일 처리 능력은 비약적으로 향상될 수 있다.
이런 일 처리 능력은 학교에서 배운 바가 전혀 없으니 회사에서 가르쳐야 하고, 따라서 그런 능력을 갖춘 인재로 키우는 것은 당연히 경영자의 몫이 되는 것이다.
많이 알면서 일 처리를 잘하는 사람이 성과를 많이 낼 것은 분명한 일이다. 이런 사람이 인재다. 이런 인재는 얼마든지 육성할 수 있다.
일류대학 출신이 아니라도, 가방 끈이 길지 않더라도 인재로 키울 수 있다. 인재 육성은 돈이 드는 게 아니라 오히려 돈을 절약할 것이며, 시간이 드는 게 아니라 시간을 단축할 것이다.
인재가 없다고 한탄할 일이 아니다. 인재로 키우려는노력만 있으면 인재는 얼마든지 양성할 수 있다.
윤석열 R&D 경영연구소 대표
/ 前 삼성정밀화학 C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