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러스 에세이 - Mostly Mozart
임효빈
STL회원 / 前 대우고등기술연구원장
hyobinim@yahoo.com
2008년 어느 늦은 여름날 밤(8월 29일이었을 게다.) 모차르트 고향인 오스트리아의 음악도시 Salzburg 대극장(Grosses Festspielhaus)에서는 해마다 이곳에서 열리는 음악제 클라이막스 프로그램으로는 다소 예상을 벗어난 특이한 연주회가 열리고 있었다.
연주곡목은 우리가 너무나도 자주 듣는 Beethoven의 Triple Concerto와 Mussorgski의 ‘전람회의 그림’이지만, 교향악단과 지휘자의 이름이 좀 낯설었다. Venezuela에서 온 시몬볼리바르청소년교향악단(Simon Bolivar Youth Orchestra), 그리고 역시 Venezuela 출신인 1981년생의 20대 지휘자 Gustavo Dudamel이 그 주인공이다.
젊음과 음악성이 씨줄과 날줄로 밀도 있게 짜여져 융화된 숨 막히는 열연이 끝나자 30분 동안이나 계속되는 장내의 환호와 청중들의 뜨거운 기립박수가 이날의 감동적인 연주를 그대로 평가해주고 있었다.
연주와 지휘의 수준도 세계적인 이 음악제에 조금도 손색이 없으려니와 20세 안팎의 연주단원들 대부분이 Venezuela의 극빈 가정출신 청소년소녀들이라니… 이미 2006년부터 지금까지 스웨덴의 Gothenburg 교향악단 상임지휘자로 있으면서, Salzburg에서의 센세이션으로 2009년에는 LA Philharmonic 음악감독으로 발탁된 Dudamel 자신도 예외는 아니었다.
열 살 되던 해에 청소년음악교육진흥재단 El Sistema에 뽑혀 들어간 그는 바이올린과 작곡을 공부하다가 열네 살 때 Abreu 선생님을 만나 지휘공부를 한 끝에 18세에 이 청소년교향악단의 상임지휘자로 데뷔한다. 마치 20대 초반에 고향인 Salzburg 궁정악단 지휘봉을 잡았던 모차르트의 환생을 보는 듯했다.
남미의 석유부국으로 알려져 있는 Venezuela의 빈부 양극화 수준은 아이러닉하게도 너무나도 심각해서 저소득층의 청소년들은 정서교육은 고사하고 어려서부터 마약과 폭력의 범죄세계에 빠져들기가 일쑤였다.
아마도 Jose Antonio Abreu(1939~) 같은 청소년문화교육 선각자가 아니었다면 이 나라의 청소년 문제는 남미의 다른 이웃나라와 다름없이 국가적 두통거리로 남아 있었을지도 모른다.
경제학을 공부한 Abreu 박사는 일찍이 “음악이야말로 이 나라 청소년들의 사회적, 지적 성장의 핵심이며 지름길이 될 수 있다”라는 신념아래 1975년 El Sistema를 만들어, 정치가이자 대학교수로서의 평생을 청소년 문제에 올인한다.
Venezuela의 국부(國父) Simon Bolivar의 이름을 따서 시작한 청소년교향악단과 그가 직접 뽑아 키워낸 진흙속의 진주 같은 Gustavo Dudamel이야말로 유네스코를 비롯한 세계 각국의 교육문화기관들이 인정하고 있는 그의 수많은 업적의 꽃 중에 꽃이 아닌가 싶다.
Abreu는 말한다.
“불우한 어린이들이 음악을 배우고 즐길 수 있는 권리도 하나의 인권투쟁 과정이라고 보아야 한다. 이들 어린이들의 가슴속에 찬란한 기쁨의 존재의식을 심어주자. 그들에게 음악의 아름다움을 가르쳐, 음악을 통해 인생의 아름다움을 배우게 하자.”
2009년 스웨덴왕립음악원상 시상식에서 국왕 Carl Gustav 16세는 “Abreu 씨는 음악을 통해 빈곤한 어린이들의 삶도 숭고하게 향상시킬 수 있다는 새로운 가치관의 모델을 우리에게 보여주었다”고 최고의 명예로운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모차르트야말로 다름 아닌 신의 아들임에도, 인간은 그를 비참한 가운데 죽게 내버려 두었다… 신은 우리에게 그를 보내주었다가(30대의) 그를 다시 데려 갔다. 우리 인간들은 그를 감당할 자격이 없었지만, 그는 우리를 다른 세계로 데려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모차르트는 지금도 어디에나 우리와 함께 있다. 그만큼이나 그에 관한 아리송한 진실(?)도 부지기수다.
가령, 주옥같은 600여 곡의 작곡과 함께 ‘요술피리’ 공연 대박으로 성공의 절정을 이루고도, 최후의 작품이 되고 만 ‘레퀴엠’을 완성하지 못한 채 35세로 요절한, 타살설을 비롯한 118가지나 되는 수많은 추측을 낳은 그의 죽음의 직접적인 원인은 그가 평소에 좋아하던 돼지숯불고기를 설익은 채 먹고 당시 비엔나에서 유행하던 치명적인 선모충증(腺毛蟲症)병에 걸렸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아니, ‘돼지고기’라니, 유명세를 타던 프랑스의 어느 반골작가가 성적(性的) 사랑스러움이 빼어난 여인들을 빗대어 농짓거리로 끄적거렸던 어휘가 아닌가? 집안이 모두 크리스천 아니 정확하게는 독실한 가톨릭이던 그가 그런(?) 돼지고기를 먹고 죽었다니.
그러나 그가 과연 종교적이었을까? 교회로부터 미사의식에 어울릴 만한 작품과 노랫말을 주문받고 그 사례금의 댓가로 자신을 표현할 기회를 얻은 속세의 작곡가일 뿐이었다는 믿기지 않는 가설만 해도 그렇다.
그가 결국에는 정통 기독교리와는 다소 괴리가 있는 프리메이슨으로 변신하여 남긴 여러 편의 프리메이슨 의식용 걸작품에 대해서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또는, 1984년도에 히트한 영화 ‘아마데우스’에서 질시의 화신(化身)으로 섬뜩하게 묘사된 Antonio Salieri는 현실에서는 모차르트의 절친한 선배이자 동료로서 한 때는 공동작곡을 시도하던 긴밀한 관계임에도, 19세기 초 러시아 문학작품(Pushkin의 희곡 ‘Mozart 와 Salieri’에서 Salieri는 Mozart를 독살한다)에 의해 왜곡되고 Rimsky-Korsakov가 같은 제목, 같은 줄거리의 오페라로 작품화하는 통에 돌이키기 어려운 사후 명예훼손의 피해자가 되어 버렸다.
각설하고, 맨하튼 한복판 New York Philharmonic Orchestra가 자리 잡고 있는 Lincoln Center에서 1966년 이래 해마다 빠짐없이 한 달 동안 열리는 여름음악제 - 이름하여 ‘Mostly Mozart Festival’.
처음에는 모차르트의 Eine Kleine Nachtmusik의 뉘앙스를 풍기는 ‘Serenades of Summer Nights’ 시리즈로 시작한 이 프로젝트는 모차르트 본인의 작품은 물론이고, 그와 같은 시대를 살았던 음악가들, 그에게 영향을 준, 또는 그의 영향을 받은 모든 음악가들을 재조명하는 세계 최대의 모차르트 행사의 하나로 새로운 문화전통이 되고 있다.
모차르트(1756~1791) 탄생 250주년을 기념한 2006년 여름 특별프로그램은 음악의 진수(眞髓)에 목마른 모든 현대인들에게 모차르트의 참모습을 재현시켜준 그야말로 Mostly Mozart의 응축된 결정판이었음은 말할 나위도 없다.
폐교해야 할 정도로 학생 수가 줄어든 충청도 벽촌 어느 초등학교에서 최근에 과외활동으로 시작한 관현악단의 화음이 입소문을 타고 알려지자 전국에서 역(逆)전학해 오는 기현상이 일어나고 있다는 흐뭇한 이야기 뒤에는 문 닫을 뻔 했던 학교를 살려낸, 이름도 예쁜 ‘물향기 엘 시스테마 교향악단’을 이끌고 있는 젊은 여교사의 헌신이 있다.
지난 여름에는 장애부모를 가진, 집에 작은 피아노 한대 없는 기초수급가정의 17세 소녀가 청소년피아니스트 등용문이라고도 할 수 있는 독일 Etlingen 피아노콩쿨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벌써부터 세계무대에 등장하고 있는 한국형 나어린 모짜르트
들이 메말라가는 이 땅의 문화토양에 애오라지 맑은 샘물을 길어다 붓고 있는 것 같아 자못 대견할 뿐이다.
여러해 전 국내 어느 대기업 중앙연구소에서는 달마다 연구원 개개인의 선택과 희망에 따라 예술의전당에서 열리는 KBS 정기연주회를 감상하도록 주선하기도 하고, 연구원들의 가족들까지 참여하는 사내음악회를 열어 친목과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배려하던 사례가 화제가 된 일이 있었다.
어느 기업조직이라도 쉽게 카피해 볼만한 따뜻한 복지 차원의 제스츄어가 될 수 있지 않을지? 아름다운 음악은 언제 어디서나 들린다. 통화대기 중에, 화면배경용으로, 달리는 차 안에서, 신생아들은 엄마뱃속에서부터 태교용으로 말이다.
꼭 모차르트가 아니라도 좋을 것이다. 음악으로 개운하게 아침잠에서 깨어나고 즐거운 음악을 들으며 일하다가 따뜻한 음악 속에 편히 잠드는 그런 일상생활을 넘어 우리는 아마도 천상(天上)에까지 음악과 함께 하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 음악은 온 세상의 공통언어이자, 모든 사람들의 마음을 이어주는 마술의 끈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