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 & 사이언스

Hot Agenda - 테라그노시스 기술 맞춤 치료 시대 연다

핫.JPG



진단과 치료가 동시에 가능한 첨단의학 기술이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다. 21세기의 의학혁명이라 일컬어지는 테라그노시스이다. 질병이 나타나는 환부에만 나노입자가 축적돼 약효가 발휘되도록 하는 이 기술은 현재 나노의학을 주도하고 있다.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은 ‘테라그노시스’를 2012년 ‘10대 미래유망기술’ 중 하나로 선정했다. 최근 들어 급속도로 개발되고 있는 테라그노시스는 정확히 어떤 기술일까?


글 김형자 과학칼럼니스트
bluesky-pub@hanmail.net

필자는 현재 과학칼럼니스트로 활동 중이며 주간조선, 월간조선, 월간중앙, 이코노미스트, 시사저널, 세계일보, Newton, 각종 사보와 대학신문 등의 매체에 과학 관련 글을 연재하고 있다.

또한 교육과학기술부,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 한국정보통신기술협회, 한국정보문화진흥원 등의 기관 저널에도 연재하고 있다.

저서로는 <구멍에서 발견한 과학>, <과학에 둘러싸인 하루>, <김형자의 과학이야기> 등이 있다.


테라그노시스란 무엇인가?

테라그노시스(Theragnosis)는 치료(Therapy)와 진단(Diagnosis)의 영어 단어를 합한 신조어이다. 형광물질로 질병을 조기에 진단하고 여기에 약물을 붙여 동시에 치료도 하는 신개념 진단·치료 기술을 말한다.

분자영상과 나노의학 두 기술을 하나의 기술로 접목해 몸속의 효소나 바이오마커(질병의 발생·진행과 연관되는 중요한 지표), 유전자 등이 어떻게 변하는지를 관찰함으로써 난치성 질병의 유무와 진행 상태를 판단한다.

암은 난치병이다. 모든 질병이 그렇겠지만 암은 조기 발견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조기에 발견할수록 완치율이 높아진다. 따라서 암을 정복하기 위해 치료용 신약을 개발하는 법도 있지만, 조기진단 기술을 발전시켜 초기단계에 수술을 하는 것이 최선이다.

이런 기술을 개발하려면 기계, 분자공학 등의 학문과 의학기술의 결합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 중에서도 나노기술은 융합기술의 중심에 서 있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나노진단(Nano Therapeutics), 나노치료(Nano Therapeutics) 등의 나노의학(Nano Medicine)이 그 예이다.

테라그노시스 기술을 활용하면 다양한 질병을 분자영상 기술로 조기에 진단하고, 나노소재를 이용한 치료제를 투여해 발견된 질병을 단기간에 치료할 수 있다. 치료 과정을 실시간으로 생생하게 관찰할 수 있어 의사가 환자 치유 정도를 모니터링하고 판단하는 데도 큰 도움이 된다.


세포 활동과 대사 상태를 분자 수준까지 검사할 수 있는 분자영상

의학이 덜 발달했던 시대에 의사들은 환자의 겉모습만 보고 병을 파악했다. 또 정확한 병변을 확인하기 위해 배를 가르고 직접 눈으로 봐야 했다.
 
신체에 해를 끼치지 않으면서 사람의 몸속을 샅샅이 살펴볼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20세기 의학기술은 인체 내부를 얼마나 정확히 파악할 수 있는가 하는 연구가 관건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덕분에 요즘은 MRI(자기공명영상촬영)나 CT(컴퓨터 단층촬영) 같은 다양한 첨단 영상의학 기기로 우리 몸속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확인이 가능하고 심장 등의 조직까지 쉽게 볼 수 있다.

X선이 발견되고 70년이 지난 뒤 ‘2차원 영상을 어떻게 3차원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으로 시작해 나온 것이 컴퓨터 단층촬영(CT)이다. 우리 몸을 칼로 가르지 않더라도 내부를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현재 컴퓨터 단층촬영 기술은 영상의학의 한 분야로 자리 잡았고, 암 진단을 포함한 다양한 질병 확인에 쓰이고 있다. 물리학의 X선이 전자공학과 컴퓨터공학과 만나 의학에 도움을 주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한 발 더 나간 기술이 ‘분자영상 기술’이다.

암 진단에 주로 사용되는 X선, CT, MRI 촬영은 종양 크기가 1㎝ 이상, 무게 1g 이상이 되어야 식별이 가능하다. 그러나 이때는 벌써 암세포 수가 이미 10억 개를 넘은 상태이며, 다른 정상 기관에도 전이가 일어날 수 있는 상태이다.

암으로 인한 사망은 대부분 암의 전이에 의한 것임을 감안해 볼 때 암의 조기진단이 필수적이다. 따라서 첨단 기능을 갖춘 영상기기를 이용해 검사하는 것이 좋다.

분자영상은 몸속 세포 활동이나 대사 상태 등 분자 수준에서 일어나는 일을 눈으로 볼 수 있게 해준다. 이를테면 환자의 몸 안에 있는 난치성 암세포의 위치와 구조를 눈으로 손쉽게 확인할 수 있게 3차원 영상으로 생생하게 보여주는 기술이다.
 
이렇게 작은 단위에서 생물학적인 변화를 보면 유전자 발현, 단백질 상호작용, 신호전달, 세포이동, 분자구조, 혈류, 대사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알 수 있다.

X선, CT, MRI 기술 등은 ‘양전자 방출 단층촬영술(PET)’과 결합하면서 보다 강력해졌다. 분자영상은 핵의학방사성 추적 영상, 광학 영상, 자기공명분광(MRS), 초음파 영상 등의 기술을 이용해 얻을 수 있다.

PET란 포도당에 방사성 동위원소를 붙인 뒤 몸속에 주입해 종양과 같은 질병 세포에만 붙도록 해 영상으로 보여주는 기술을 말한다. 종양의 세포 증식 정도나 산소 분압과 같은 종양세포 내의 변화를 측정할 수 있어 분자 수준에서 질병의 원인을 관찰할 수 있다.

다시 말해 CT, MRI 등 기존 의료 영상을 통해서는 몸 안의 장기구조에 이상이 있는지를 판별했다면, 분자영상은 몸속에서 어떤 활동이 일어나고 있는지에 대한 생물학적 변화 정보를 얻는 것이다.

지금까지의 기술은 분자가 어떻게 반응하는지에 대한 정보를 주지 않았다. 분자영상을 통해서는 신체 활동이 어떤 수준으로 일어나고 있는지에 따라 질병 유무를 진단할 수 있다.


나노입자를 이용한 나노의학은 암이 표적

나노의학은 질병이 진단되면 나노의학 기반의 융합소재를 투여해 암세포만 공격하는 치료를 한다. 이는 나노기술을 이용해 분자와 원자를 인위적으로 조작하거나 응용하는 첨단기술이다. 1나노는 10억분의 1m로 우리 눈으로 볼 수 없는 작은 물질을 다루는 과학이다.

일반적인 암환자의 치료는 통상적으로 흐릿하게 얻어진 암 위치의 사진을 토대로 이뤄진다. 그렇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환자의 몸을 절개해 종양 위치를 확인해야 치료가 가능하다. 하지만 나노기술을 도입하면 매우 손쉽게 진단과 치료가 가능하다.

예를 들어 암세포는 건강한 다른 세포에 비해 다량의 영양분 즉, 몸속의 포도당을 섭취한다. 이 포도당에 몸 밖에서 영상화가 가능하도록 추적물질을 붙여 주사한 뒤 환자의 몸을 촬영하면 고통스러운 수술 과정을 거치지 않고도 몸속의 암 위치와 크기를 정확히 진단할 수 있다. 그 후 나노캡슐에 항암제를 담은 다음 나노 자석을 달아 암세포에만 항암제를 전하는 기술이 연구 중이다.

한 때는 자동차가 기름으로만 간다고 여겼다. 기름을 사용하는 엔진과 전기모터를 함께 장착한 ‘짬뽕 자동차’가 나오면서 이런 인식도 바뀌었다. 하이브리드 시대가 열린 셈이다.

학문 간의 경계를 뛰어넘어 학문의 대통합을 이루어야 한다는 ‘융합’이란 단어가 나온 뒤 이러한 흐름은 더욱 뚜렷해졌다. 각 학문을 융합해 연구하다 보면 하나의 관점으로는 풀지 못했던 문제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거라 기대하기 때문이다.

첨단 산업일수록 ‘짬뽕 기술’을 쉽게 볼 수 있다. 나노기술(NT)이 대표적이다. 나노기술을 잘 활용하면 의학에 큰 도움이 된다.


선택부위만 치료해 부작용 없고 맞춤 치료도 동시에 가능

우리는 지금까지 암 치료에 많은 시간을 투자해 왔다.

항암제를 투입한 후 암세포가 얼마만큼 줄어드는지 엑스레이로 변화를 감지하기 때문에 눈으로 확인할 수 있을 만큼 암세포가 줄어들기 위해서는 약 1달 정도 기다려야만 한다. 또 지금의 암수술은 MRI 촬영 후 암세포가 몸속에 남아 있을 우려를 생각해 주위의 정상 세포까지 조직을 도려내 왔다.
 
이런 수술 방법은 뇌일 경우 위험하다. 뇌는 잘못 건드렸다가는 말을 할 수도 걸을 수도 없게 될 만큼 민감한 조직이다. 현재 사용되는 모든 항암 치료제는 암세포에 대해 항암 효과를 보이면서 동시에 정상 세포를 공격해 심각한 부작용을 동반한다.

하지만 분자영상과 나노의학이 접목된 테라그노시스를 이용하면 항암제가 암세포에 달라붙어 얼마만큼 암세포를 저해시키는지 효소의 활동을 실시간 영상을 통해 파악할 수 있기 때문에 빠른 대응을 할 수 있다.

테라그노시스를 통해 치료제를 내장한 다기능 형광 나노입자 단백질을 체내에 주입할 경우 딱 암 조직만 형광빛이 돈다. 활동이 활발한 암세포일수록 형광빛이 더욱 난다. 나노입자를 환자에 주입하면 암세포에만 축적되어 강한 형광빛을 발산해 영상으로 보여주고, 축적된 부위에서 약물을 방출해 부작용 없이 항암치료가 가능하도록 하는 원리이다.

형광빛은 항암제가 투여되면 사라진다. 약효가 환부에 집중되는 만큼 암 환자 등의 경우 약물 치료에 따른 부작용을 최소화하면서 치료 효과의 극대화가 가능하다. 형광조직만 떼어내면 되기 때문에 정상 세포까지 더 많이 도려낼 필요가 없다. 이 또한 바로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다. 빛이 사라진다는 것은 곧 암이 치료되고 있다는 의미이다.

이처럼 나노의학으로 개발되는 치료제는 몸 안의 암세포만 공격하기 때문에 부작용을 최소화하고 원하는 질병을 원하는 위치에서 치료할 수 있다.

또 테라그노시스를 이용해 진료를 하면 환자가 약을 복용했을 때 환자의 몸속에서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이를 잘 연구하면 맞춤형 치료가 가능하다.

나노입자들이 장기와 세포 단위에서 어떤 상호작용을 하는지에 대한 메커니즘은 아직 분명하게 밝혀지지 않고 있다. 앞으로 분자영상과 나노의학의 융합이 그것을 밝혀 새로운 치료시대를 열게 될 것이다.


신약개발에도 큰 힘 발휘

신약개발 분야에서도 테라그노시스 기술은 큰 힘을 발휘한다. 보통 신약 하나를 개발하려면 10년 이상이 걸린다는 게 업계의 ‘정설’이다.

예를 들어 기존에는 항암제를 만들 때 암을 유발하는 유전자나 단백질을 먼저 찾고 그에 맞는 치료제를 개발했다. 그런 다음 동물실험과 임상실험까지 거쳐야 제품으로 나올 수 있다. 시간이 10년 이상 걸리는 게 일면 당연하다. 비용도 천문학적으로 소요된다.

하지만 테라그노시스 기술을 응용하면 약물의 복용 전과 후 몸속의 치료효과를 간단한 영상을 통해 눈으로 추적할 수 있어 시간과 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

특히 신약개발에 있어 분자영상 기술은 중요하다. 생생한 영상으로 신약 후보물질의 효능과 신체에 미치는 영향 등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임상시험 결과에 대한 신뢰도도 높아질 수밖에 없다.

테라그노시스 기술을 통한 질병의 조기 진단이나 표적 치료 기술은 차세대 유망 고부가가치 창출 분야로 꼽힌다. 따라서 분자영상과 나노의학은 선진국을 중심으로 전 세계의 과학자들이 각축을 벌이며 연구 중이다. 2010년 질환 진단 시약·기기 시장의 규모는 150억 달러, 표적지향 항암제 치료제 시장규모는 600억 달러에 이르렀을 정도다.

우리나라도 이 분야의 선두주자에 속한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의과학연구센터 권익찬 박사팀은 암세포를 선택적으로 3차원으로 영상화할 수 있고 동시에 이를 치료할 수 있는 새로운 나노입자형 스마트 센서치료제를 개발해 다양한 임상시험 중이다.

몸속에서 약물의 이동과 치료 과정을 동시에 지켜볼 수 있는 테라그노시스 기반 기술을 개발한 것이다.

이 기술은 머지않아 암과 알츠하이머와 같은 난치성 질병을 정확하게 조기에 발견하고 환자에게 적합한 맞춤 치료와 예방을 가능하게 할 것으로 기대된다.